누가 지금 한국 사회를 위협하고 있나... 동성애인가, 보수 개신교인가

입력
2020.08.21 04:30
수정
2020.08.21 09:47
21면

편집자주

이제 페미니즘은 거역할 수 없는 흐름이 됐지만, 이론과 실천 모두 여전히 어렵습니다. ‘바로 본다, 젠더’는 페미니즘 시대를 헤쳐나갈 길잡이가 돼줄 책들을 소개합니다. 손희정 문화평론가가 '한국일보'에 4주마다 금요일에 글을 씁니다.

<7> 아이리스 고틀립 '뷰티풀 젠더'

15일 서울 종로구 동화면세점 앞에서 열린 정부 및 여당 규탄 관련 집회에서 사랑제일교회 전광훈 목사가 발언하고 있다.연합뉴스

15일 서울 종로구 동화면세점 앞에서 열린 정부 및 여당 규탄 관련 집회에서 사랑제일교회 전광훈 목사가 발언하고 있다.연합뉴스

난리가 났다. 8ㆍ15 광화문 집회 때문이다. 주최 측이 집회 인원을 거짓으로 신고한 데다, 코로나19 방역 수칙을 전혀 지키지 않은 탓에 후폭풍이 대단할 것으로 예상된다. 와중에 집회에 참석한 사람들은 마이크를 잡고 성소수자 혐오 발화와 가짜뉴스를 늘어놓았다. 집회 후에는 SNS 대화방을 중심으로 ‘퀴어축제를 막아야 한다’는 메시지가 돌았다.

환난의 중심에 있는 보수 개신교는 지난 5월 이태원 발 코로나19 확산 당시 성소수자들을 싸잡아 비난했다. 하지만 성소수자 커뮤니티는 자발적으로 클럽 방문자 명단을 방역 당국에 제출하고, 당사자를 대상으로 상담을 진행했으며, 검사를 독려했다. 낙인이 이토록 심한 나라에서도 성소수자들은 사회 구성원으로서 책임을 다했다. 오히려 혐오선동에 가장 적극적으로 앞장섰던 한국기독교총연합회 회장 전광훈(현재는 직무정지상태)의 사랑제일교회는 현재 조사대상자 명단을 누락하고 은폐한 혐의로 보건복지부로부터 고발을 당한 상태다.

이제 한 가지는 분명해졌다. 한국사회의 안전과 보건을 위협하는 건 다름 아닌 반 동성애를 외치를 보수 개신교라는 사실 말이다. 반면 성소수자는 “당신의 일상 속에 있는” 평범한 동료 시민이다.

뷰티풀 젠더ㆍ아이리스 고틀립 지음ㆍ노지양 옮김ㆍ까치 발행ㆍ235쪽ㆍ1만8,000원

뷰티풀 젠더ㆍ아이리스 고틀립 지음ㆍ노지양 옮김ㆍ까치 발행ㆍ235쪽ㆍ1만8,000원

인식의 변화는 시작됐지만, 성소수자, 즉 LGBTQ+(동성애자, 양성애자, 트랜스젠더, 성정체성을 탐색 중인 사람 등을 이르는 말)는 여전히 낯선 존재다. 살면서 지겨울 정도로 비(非)성소수자로 사는 법을 배우는 것에 비해, LGBTQ+의 삶에 대해서는 거의 접할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다.

예컨대 우리는 부모가 “분홍신(혹은 파란신)을 준비하세요”라는 소리를 듣는 순간부터 ‘시스젠더(의학적으로 지정된 성별과 성별정체성이 같은 사람) 이성애자의 삶’을 익히기 시작한다. 분홍신을 안고 태어난 아이는 5년 내에 “아니, 여자 애가 되가지고는”이라는 소리를 듣게 될 터고, 아무리 늦어도 8년 안에는 “남자 친구 있니?”라는 실없는 질문을 받게 될 터다. 어떤 의사도 “외부 생식기는 의학적으로 음순으로 식별되지만, 성별과 성적지향에 대해서는 알 수 없습니다”라고 말하지 않는다.

이런 상황이라 성소수자 당사자들도 스스로에게 이질감을 느낀다. 성소수자 앨라이(성소수자를 지지하는 비성소수자)가 되고 싶은 이들 역시 ‘잘 모르기 때문’에 의도치 않게 성소수자를 차별하는 언행을 하게 될까봐 두려울 수 있다. 그래서 우리에겐 '뷰티풀 젠더' 같은 친절한 안내서가 필요하다.

'뷰티풀 젠더'는 트랜스젠더 페미니스트 아이리스 고틀립이 그리고 쓴 아름다운 그림책이다. 고틀립은 이 책이 ‘젠더’라는 어려운 개념의 이해를 돕는 젠더 입문서이고, 혼자 공부를 시작하기에 좋은 교재이며, “나와 사람들의 이야기”이자, 세계라는 미로 속에서 ‘내가 누구인지’ 탐색 중인 사람들에게 “확신과 용기를 주는 책”이라고 말한다.

영국의 유명 록가수 데이비드 보위(왼쪽) 는 특정한 성적 성향에 얽매이지 않은 채 남성성의 틀을 과감히 깬 최초의 슈퍼스타였다. 세계적인 여성화가 프리다 칼로(가운데)는 스스로를 양성애자라 명명하며, 경계자의 삶을 자처했다.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트랜스젠더 배우이자 다큐멘터리 영화 감독으로 활약하는 라번 콕스는 유색인 트랜스 여성의 권리 옹호를 위해 특히 앞장 서고 있다. 까치 글방 제공

영국의 유명 록가수 데이비드 보위(왼쪽) 는 특정한 성적 성향에 얽매이지 않은 채 남성성의 틀을 과감히 깬 최초의 슈퍼스타였다. 세계적인 여성화가 프리다 칼로(가운데)는 스스로를 양성애자라 명명하며, 경계자의 삶을 자처했다.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트랜스젠더 배우이자 다큐멘터리 영화 감독으로 활약하는 라번 콕스는 유색인 트랜스 여성의 권리 옹호를 위해 특히 앞장 서고 있다. 까치 글방 제공


책은 다양한 퀴어 용어를 설명하고, 남성중심적 사회에서 벗어나기 위해 남성이 실천해야 할 일들을 조언하며, 미투 운동의 의미를 강조하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중간 중간 데이비드 보위, 프리다 칼로, 라번 콕스 등 다양한 퀴어 셀레브리티를 소개하면서 성소수자에게 구체적인 얼굴을 부여한다. 훌륭한 ‘퀴어 페미니즘’ 입문서다.

무엇보다 '뷰티풀 젠더'는 재밌다. 물론 페미니즘 입문서는 늘 지적 자극을 주기 때문에 흥미롭다. 다 아는 내용일 것 같지만, 읽어보면 매번 새롭다. 지난 20년간 수많은 입문서를 읽었는데도 여전히 그렇다. 왜일까. “다 알고 있다”는 것이 착각이기 때문이다.

가부장제에 길들여진 사고방식이란 공기와도 같아서, 몸에서 빼낸다고 해도 금방 다시 폐와 피와 살을 가득 채운다. 그러니 새로 배운 것도 금방 잊게 된다. 다른 한편으로, 페미니스트 상식은 계속 변화하고 갱신된다. 그런 유연함이 페미니즘의 특징이다. 과거에 배운 것에서 멈추지 말아야 하는 이유다. '뷰티풀 젠더'는 2020년 8월, 지금으로서는 최신의 페미니스트 상식선이다. 알고자 하는 당신에게, 이 책을 권한다.


손희정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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