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작 자신은 허리디스크 재활 중'... 물에 빠진 시민 구한 두 영웅

입력
2020.08.14 17:15
수정
2020.08.14 17:43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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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의인상' 받은 이제권ㆍ이경환씨

장마가 시작된 지난 6월 부산에서 급류에 휩쓸린 시민을 구한 이제권씨. 이씨 제공

장마가 시작된 지난 6월 부산에서 급류에 휩쓸린 시민을 구한 이제권씨. 이씨 제공


지난 6월24일 오후 4시 부산 연제구 온천천 시민공원. 한 60대 여성이 당황하며 어쩔 줄 몰라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건너편에서 운동하던 이제권(43)씨가 그 모습을 우연히 보고 주변을 살폈더니 개천으로 또 다른 여성이 물에 휩쓸려 내려가는 중이었다.

개천의 평소 수위는 1m에서 1m 50cm 남짓. 성인이 개천의 땅을 딛고 일어서면 물에 잠기지 않는 수위라 이씨는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3~4초 후 바로 물에 뛰어 들었다.

"'살려달라'는 소리도 안 지르고 팔을 허우적거리지도 않아 처음엔 큰일이 아닌 줄 알았어요. 그런데 짦은 순간 더 지켜보니 떠내려가면서 물을 먹어 소리도 지르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어요. 바로 개천에 뛰어 들었고 까치발을 들고 서니 제 코가 잠기더라구요." 이씨는 긴박했던 상황을 이렇게 들려줬다. 당시 부산엔 장마가 시작돼 173cm인 이씨의 키를 훌쩍 넘어설 정도로 개천 물이 급속히 불어난 상태였다. 이씨는 "개천 물이 그렇게 불어 난 건 10년 만에 처음 본다"고 했다.

비가 오는 개천 인근을 걷다 발을 헛디뎌 급류에 휩쓸린 60대 여성을 구조해 '119의인상'을 최근 받은 이씨를 14일 전화로 만났다. 119의인상은 위험에 처한 다른 사람의 생명을 구한 국민에게 소방청이 주는 상이다.

개천에 빠져 힘들어하는 노인을 이씨는 들어 안고 물 밖으로 나왔다. 정작 구조자에게 너무나도 위험한 일이었다. 이씨는 추간판 장애(허리디스크)로 수술을 받았다. 다리 마비 증상이 와 응급실에 실려 갈 정도로 몸이 안 좋은 상태에서 받은 수술이라 재활을 위해 일까지 그만둔 터였다. 이씨는 "너무 급박해 (허리) 생각할 겨를 없이 그냥 나도 모르게 개천으로 뛰어 들었다. 물에서 안은 거라 그렇게 힘든지 몰랐다"고 말하며 멋쩍어했다. 이씨 덕분에 목숨을 구한 노인은 안정을 찾은 뒤 사위와 함께 이씨를 찾아 "고맙다"고 거듭 인사를 건넸다고 한다.

장마가 시작된 지난 6월 서울 한강에 빠진 시민을 구한 이경환씨. 이씨 제공

장마가 시작된 지난 6월 서울 한강에 빠진 시민을 구한 이경환씨. 이씨 제공


이날까지 전국에 걸쳐 장마는 52일째 이어지며 큰 인명 피해를 낳았다. '역대급 장마'에 50여명이 숨지거나 다쳤고 실종됐다.

서울에 사는 이경환(41)씨도 재난을 딛고 일어서도록 다른 사람에게 용기를 준 '작은 영웅'이다. 이씨도 부산에 사는 이씨와 같은 날 서울 한남대교 북단 한강에서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시민을 구조해 함께 119의인상을 받았다.

이씨는 본보와의 통화에서 "오전 6시께 보광나들목 인근을 운동차 달리고 있었다"며 "강쪽에서 '살려달라'는 소리가 났고 그쪽으로 사람들이 몰려 있어 바로 가보니 한 사람이 물에 빠져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옆에 있던 긴 나뭇가지를 들고 들어가 구조해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이씨가 구한 시민은 20~30대로 보이는 남성이며, 때마침 현장에 도착한 119구조대가 시민을 응급차로 이송했다.

평범한 회사원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이씨는 "물에 빠진 분을 구조하니 눈을 쉽게 못 뜨고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며 "3년 전 바다를 갔을 때 파도에 휩쓸려 떠내려 간 분을 도운 적이 있는데 어떤 사명감에서가 아니라 그냥 너무 위급해서 한 일"이라고 119의인상 수상을 수줍어했다.

양승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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