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붕 위 소는 끌어내렸지만… 동물 재난대책은 걸음마

입력
2020.08.10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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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 호우로 전남ㆍ경남 등 축산 농가 피해 커
수많은 소ㆍ돼지 등?숨져, 일부 지붕에 올라 살아
농장동물 재해보험 말고 재난 관련 대책은 없어

10일 전남 구례군 구례읍의 한 마을에서 소방대원들이 축사 지붕에 올라갔던 소를 크레인을 이용해 구조하고 있다. 집중호우와 하천 범람으로 물이 차오르면서 떠올라 지붕으로 피신했던 일부 소들은 건물 지붕이 붕괴되며 떨어졌다. 뉴스1

10일 전남 구례군 구례읍의 한 마을에서 소방대원들이 축사 지붕에 올라갔던 소를 크레인을 이용해 구조하고 있다. 집중호우와 하천 범람으로 물이 차오르면서 떠올라 지붕으로 피신했던 일부 소들은 건물 지붕이 붕괴되며 떨어졌다. 뉴스1


남부지방에 내린 집중 호우로 경남 합천군을 비롯 전남 나주, 구례군, 곡성군 등에서는 축사가 물에 잠기는 등 축산 농가의 피해가 컸다. 차오르는 물에 소와 돼지 등 농장동물은 축사를 빠져나가지 못해 목숨을 잃었고, 겨우 축사에서 벗어나 물이 흘러가는 대로 휩쓸리고, 발버둥 쳐 살길을 찾던 일부 소들은 축사 지붕이나 주택 지붕을 딛고 버텨 살아남았다.

중장비와 대형트럭 동원... 지붕 위 소 구출

물은 빠졌지만, 지붕 위에 오른 소들이 오도가도 못하면서 주민들의 애를 태웠다. 주민 김인호씨는 피해복구를 위해 만든 ‘섬진강 수해 극복을 위한 구례대책위원회’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우사지붕에 올라가 밤을 새운 소들은 아직도 겁에 질려 울어대고 새끼들은 쓰러져 제대로 울지도 못한다”며 “한 마리라도 더 살려내려는 주인들은 이리저리 뛰어다니는데 소들의 절망적 울음소리를 들어야 하는 농민들의 마음은 또 얼마나 찢어질까”라며 상황을 전했다.

10일 오전 전남 구례군 구례읍의 한 마을 주택 지붕 위에서 119대원들이 소를 구조하고 있다. 이 소는 주변 축사에서 사육하는데 최근 폭우와 하천 범람으로 물에 떠다니다가 지붕 위로 피신, 이후 물이 빠지면서 땅으로 내려오지 못하고 머물러 있었다.연합뉴스

10일 오전 전남 구례군 구례읍의 한 마을 주택 지붕 위에서 119대원들이 소를 구조하고 있다. 이 소는 주변 축사에서 사육하는데 최근 폭우와 하천 범람으로 물에 떠다니다가 지붕 위로 피신, 이후 물이 빠지면서 땅으로 내려오지 못하고 머물러 있었다.연합뉴스


소방서와 주민들은 트랙터나 굴삭기 등 중장비를 동원하고, 축사 일부를 허물어 비스듬한 길을 만들어 소를 끌어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구례에 거주하는 윤주옥 지리산사람들 대표는 “구례한우협회와 주민, 지역 봉사자들이 중심이 되어 대형 카고 트럭 등을 동원해 소들을 끌어내렸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주인을 찾지 못한 소들이 여전히 길가 등 여기저기에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번 수해에서 일부 소들은 살아남았지만 남은 생도 건강하게 보낼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수의사는 연합뉴스에 불어난 강물과 빗물을 들이켜 폐렴 증세를 보이는 소들에 해열제 주사를 놔주고 있지만, 더는 손쓸 방법이 없다며 안타까워했다.

2019년 4월 4일 고성 산불 당시 농장 동물과 함께 목줄에 묶인 채 미처 대피하지 못한 반려동물의 피해가 발생했다. 이번엔 경남 합천, 전남 구례ㆍ나주 등 축사가 많은 지역에 집중 호우가 발생하면서 동물 가운데 유독 소의 피해가 컸던 것으로 보인다.

전남 구례군 문천면에 있는사성암 오르는 길가에 송아지 한 마리가 길바닥에 앉아있다. 섬진강 수해 극복을 위한 구례대책위원회 제공

전남 구례군 문천면에 있는사성암 오르는 길가에 송아지 한 마리가 길바닥에 앉아있다. 섬진강 수해 극복을 위한 구례대책위원회 제공


반려동물의 경우 고성 산불 등을 계기로 재난대처법을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이후 농림축산식품부가 올해 초 발표한 동물복지 5개년 계획에 반려동물 대피가이드라인, 대피시설 마련 등이 포함되어 있지만 아직 구체적으로 진행된 것은 없는 상황이다.

농장 동물도 동물보호법 대상...재난시 인도적 대처 방안 필요

농장 동물의 경우에는 재산으로서의 가치가 있기 때문에 농가들이 만약 가축재해보험에 가입했다면 이번처럼 폭우로 가축이 폐사하는 피해를 입었을 때 보상을 받을 수 있다. 가축재해보험은 풍재·수재·설해(태풍, 홍수, 대설 등), 화재, 지진, 질병(보험목적물별 질병규정에 따름) 등으로 인한 축산농가의 피해를 보장해 주기 때문이다. 축종별 보장내용이 다른데 보통 소는 가입금액 한도 내 손해액 60~80%, 돼지는 80~95% 등 60~100% 보장된다고 한다.

하지만 동물권 단체들은 보상을 떠나 농장동물도 ‘동물보호법’의 보호 대상이라고 말한다. 이형주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 대표는 “폭염, 지진, 홍수 등 재난재해 시 반려 동물뿐 아니라 농장 동물의 피해도 반복되고 있다”며 “농장동물 역시 '배고픔, 불편함, 질병, 두려움, 활동의 부자유로부터의 자유' 등 동물의 5대 자유를 누릴 대상에 포함되므로 재난 재해 발생 시 이들을 인도적으로 대처하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전남 구례군에서 홍수로 인해 축사가 물에 잠기자 탈출한 소들이 도로로 나와 있다. 섬진강 수해 극복을 위한 구례대책위원회 제공

전남 구례군에서 홍수로 인해 축사가 물에 잠기자 탈출한 소들이 도로로 나와 있다. 섬진강 수해 극복을 위한 구례대책위원회 제공


한편 해외의 경우에도 정부나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농장동물의 재난 대처법은 마련되지 않은 상황이다.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미국을 강타했을 때 수천 마리의 반려동물이 목숨을 잃은 것을 계기로 미국연방비상관리국(FEMA)은 반려동물를 어떻게 대피시킬 지를 대피 요령에 포함시켰다. 반면 여전히 농장 동물은 보호 대상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고 현지 동물단체들도 지적하고 있다.

다만 동물보호단체들이 농장 동물 대피 가이드라인 등을 만들어 농장주들에게 위기 대응 계획을 숙지하고 따를 것을 권고하고 있다. 국제동물보호단체 휴메인소사이어티인터내셔널(HSI)은 평소 화재 확산을 막기 위한 축사 관리나 대피법, 사료 등을 구비한 ‘재난키트’ 등을 마련할 것을 조언하고 있다.


고은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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