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퍼X'의 패권은 또 언제까지?

입력
2020.08.11 04: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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캡사이신 경쟁 (8.11)

캡사이신 경쟁의 새로운 차원을 연 2013년의 캐롤라이나 리퍼. 4년 뒤 2배나 더 매운 '페퍼X'가 등장했다. 위키피디아.

캡사이신 경쟁의 새로운 차원을 연 2013년의 캐롤라이나 리퍼. 4년 뒤 2배나 더 매운 '페퍼X'가 등장했다. 위키피디아.


인도차이나 일부 지역 주민들이 대형 거미 타란툴라를 먹게 된 게 폴포트 치하의 굶주림 때문이었던 것처럼 일부 음식 문화에는 슬픈 배경이 있다. 역한 냄새로 유명한 북구 스웨덴의 통조림 식품 수르스트뢰밍(Surstroemming)은 염장 소금이 부족해 세균 발효에 맡겨둘 수 밖에 없어 만들어진 음식이다. 그런 사연들과 함께 세월을 타고 자리잡은 음식은, 한국 남도의 삭힌 홍어처럼 민족적 지역적 문화적 유전자를 판별하는 기준이 되기도 한다. 근래에는 소위 '먹방'을 넘어 '괴식(怪食)'으로 도드라지려는 이들도 적지 않다.

고추나 후추, 마늘 등의 매운 맛- 엄밀히 말하면 통각-은, 누구 말처럼 세계인이 즐겨온 '자비로운 마조히즘(benign masochism)'이지만, 특정 문화권에서는 캅사이신이나 알리신 성분의 약성과 무관하게 내도록 된 핵심 조미료다. 괴식가들은 누가 더 매운 걸 먹느냐로 군비 경쟁하듯 겨루곤 한다.

맵기 기준은 미국 약리학자 윌버 스코빌(Wilbur Scoville)이 고안한 스코빌 척도(SHU)가 주로 쓰인다. 단위량의 매운 맛을 희석하는 데 필요한 설탕물 비율을 나타내는 스코빌 척도는 매울수록 높다. 할라피뇨가 2,500~1만SHU이고 청양고추는 4,000~1만2,000SHU 정도다.

2013년 8월 11일 세계기네스협회는 미국 한 식품회사 연구원 에드 커리어(Ed Currie)가 육종한 '캐롤라이나 리퍼(Carolina Reaper)'를 164만 1,183SHU의 최강 고추로 인정했다. 감식가들은 독극물 수준의 맛 속에서 '과일의 단맛과 시나몬과 초콜릿 향'을 찾아내기도 했다. 4년 뒤 노팅엄트렌트대 연구진이 248만SHU의 신종 고추 '드래곤의 숨결(Dragon's Breath)'을 선뵀다. 하지만 불과 몇 달 뒤 에드 커리어가 318만SHU의 절대강자 '페퍼X(PepperX)'를 내놓으면서 '숨결'은 이내 멎었다. 200만 SHU는 폭동 진압용 페퍼스프레이의 기준이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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