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 노무현, 바보 김부겸

입력
2020.08.09 16:00
26면

노무현 따라 지역주의 도전해온 김부겸
이번엔 노무현처럼 친척 사상시비 직면
보수세력도 아닌 盧지지자들이 연좌제라니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 당 대표에 출마한 김부겸 전 의원. 오대근 기자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 당 대표에 출마한 김부겸 전 의원. 오대근 기자


민주화 이후 치러진 첫 총선인 1988년, 부산의 한 무명 변호사가 정계에 입문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다. 그는 5공청문회에서 곧 스타로 떠올랐다. 영광도 잠시, 그는 고난의 길에 들어간다. 자신을 정치로 이끈 대부인 김영삼 전 대통령이 1990년 독재세력과 3당통합을 한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은 김 전 대통령을 따라가지 않았고 이후 김 전 대통령의 텃밭인 부산에서 계속 낙선해야 했다. 그러다가 1998년 종로 보궐선거에서 어렵게 당선, 여의도로 돌아왔다. 그러나 2000년 종로를 버리고 적지인 부산으로 내려가 낙방했다. ‘바보 노무현’의 신화가 만들어진 것이다. 그는 이 신화의 덕으로 2002년 민주당 대선후보로 비약할 수 있었다. 이 대선에서 노 전 대통령은 또다시 고난에 부딪혔다. 경쟁자인 이회창 측에서 노 전 대통령 장인의 좌익경력을 시비 걸고 나온 것이다. 노 대통령은 이에 “그럼 아내와 이혼해야 한다는 것이냐”고 반박했다. 이는 사람들의 가슴을 움직였고 결국 대통령에 당선됐다.

노 전 대통령은 정치적 대부인 김영삼 전대통령만 따라가지 않은 것이 아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1992년 대선 패배 후 정계를 은퇴했다가 1995년 정계복귀하며 새정치국민회의라는 당을 만들어 야당을 분열시키자, 그는 개혁적인 소장의원들과 같이 이 당을 따라가지 않고 ‘꼬마민주당’을 지키다가 낙선한 뒤 소장 정치인들과 때를 잘못 만난 ‘여름 난로, 겨울 부채’라는 의미의 ‘하로동선(夏爐冬扇)’이라는 고기집을 했다. 이때 같이 했던 동지 중 한 명이 김부겸 전 행정안전부장관이다.

일찍이 스타의 길을 걸었던 노 전 대통령과 달리, 김 전 장관은 원내 진출을 못 하고 고생하다가 2000년 경기도 군포에서 승리해 금배지를 달았다. 일단 원내 진출을 하자, 그는 탄탄한 의정활동과 지역구 관리로 3선의원이 됐다. 그러나 2012년 자신의 선거구를 던져 버리고 부산 이상으로 보수의 아성인 대구로 내려갔다. 그 결과는 낙선이었다. ‘바보 노무현’에 이어 ‘바보 김부겸’이 탄생한 것이다. 그는 실망하지 않고 대구를 지켰고 대구시장 선거에서도 떨어졌지만, 세번째 도전인 2016년 총선에서 드디어 승리했다. 그것도 경기도지사를 지낸 거물 정치인 김문수를 누르고 말이다. 노 전 대통령도 넘지 못한 지역주의의 벽을 그는 넘어선 것이다. 그러나 그 역시 박근혜 탄핵에 따른 대구의 방어적 분위기와 거물 정치인 표적 공천을 이기지 못하고 이번에는 낙방하고 말았다.

대신 그는 더불어민주당 당권에 도전했는데 이번에도 노 전 대통령과 비슷한 상황에 부딪쳤다. 그의 경쟁자들의 지지자들이 그의 처남이 운동권에서 뉴라이트로 전향해 논쟁적인 <반일종족주의>라는 책을 쓴 이영훈 전 서울대 교수라는 사실을 시비 걸고 나선 것이다. 노 전대통령이 대선에서 친척의 사상으로 시비를 당한 뒤 18년 만에 김 전 장관 역시 똑같은 시비를 당하고 있다. 충격적인 것은 2002년 대선에서 노 전 대통령을 공격한 것은 반대정당이자 보수진영이었다면, 이번 공격은 오히려 같은 당, 특히 노 전 대통령의 정신을 이어 받은 ‘민주개혁 정당’지지자, 노 전 대통령의 지지자에 의한 것이라는 점이다. 좌파에 대한 연좌제는 틀린 것이지만, 우파에 대한 연좌제는 괜찮다는 것인가?

노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이렇게 행동하는 것은 노 전 대통령을 모독하는 것이다. 김 전 장관은 노 전 대통령처럼 “이혼하란 말이냐”라고 반발하고 있지만, 반향이 18년 전 같지 않은 것 같다. 이를 바라보며, 우리의 정치가 어느 면에서는 2002년보다 오히려 후퇴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든다. 바보 김부겸의 실험이 과연 노 전 대통령처럼 해피엔딩으로 끝날 수 있을까?

손호철 서강대 명예교수(정치외교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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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철서강대 명예교수(정치외교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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