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르도안의 모스크 정치, 다음 행보는

입력
2020.08.09 12:00
25면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중앙) 터키 대통령이 '금요 기도일'인 지난달 24일(현지시간) 박물관에서 모스크(이슬람 사원)으로 전환한 아야 소피아에서 이슬람 신자들과 함께 기도를 올리고 있다. 이스탄불=AP연합뉴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중앙) 터키 대통령이 '금요 기도일'인 지난달 24일(현지시간) 박물관에서 모스크(이슬람 사원)으로 전환한 아야 소피아에서 이슬람 신자들과 함께 기도를 올리고 있다. 이스탄불=AP연합뉴스


아야 소피아는 비잔틴 제국에서 오늘날 터키에 이르기까지 1,500년에 달하는 역사를 오롯이 새긴 세계문화유산이다. 아야 소피아는 537년 비잔틴의 유스티니아누스 황제가 그리스정교회의 성소로 건축하면서 시작되었다. 1453년 오스만 제국의 술탄 메흐메드 2세는 난공불락의 요새로 간주되었던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한 이후 아야 소피아를 모스크로 변경하였다. 1935년 세속주의자 케말 아타튀르크에 의해 모스크에서 박물관으로 변신한 아야 소피아는 7월 10일 터키의 에르도안 대통령이 모스크로 개조한다는 행정명령에 서명하면서 다시 모스크로 돌아갔다. 아야 소피아에서 첫 이슬람 예배는 로잔조약 체결 기념일인 7월 24일 열렸고, 이후 이드 알 아드하(희생제) 기간에는 많은 무슬림들이 특별 예배에 참가했다.

이처럼 모스크로 변한 아야 소피아를 둘러싸고 도처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제기되었다. 유네스코는 아야 소피아를 일방적으로 모스크로 변경했다며 깊은 유감을 표명했다. 미국 국무부도 터키 정부의 결정에 실망한다는 성명을 발표했고, 터키와 갈등 관계인 그리스 등 여러 국가에서 우려를 나타냈다. 특히 프란치스코 교황은 깊은 슬픔에 잠긴다고 말했고, 유럽연합과 러시아의 교회 지도자들까지 비판을 서슴지 않았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전 세계적 논란을 감안해 영어와 아랍어로 터키 정부의 입장을 밝혔다. 영어 메시지는 아야 소피아의 지위야말로 터키의 주권적 권리에 속하는 것으로 터키의 국내법과 역사적 권리에 따라 정당하게 결정되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또한 모스크로 전환된 이후에도 아야 소피아의 문은 내외국인, 무슬림과 비무슬림 모두에게 열려 있음을 강조했다. 터키 당국은 아야 소피아 내의 기독교 성화는 모두 보전될 것이며, 예배 시간을 제외하고 모든 방문객들에게 개방될 것이라고 했다.

반면 아랍어 메시지는 주로 전 세계 무슬림들을 대상으로 아야 소피아의 모스크로의 회귀가 갖는 의미를 전달하고 있다. 특히 이목을 끄는 것은 이번 조치가 알 아끄사 모스크의 해방을 위한 예고가 될 수 있다는 대목이다. 또한 “아야 소피아의 부활은 전 세계 각지의 무슬림들이 어두운 시대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새로운 시작”이라며, 무슬림들뿐만 아니라 억압받고, 박해받고, 이용당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주는 것이라고 역설하였다.

알 아끄사 모스크는 메카의 그랜드 모스크, 메디나의 예언자 모스크와 함께 무슬림들에게 가장 중요한 모스크로 간주된다. 꾸란에는 예언자 무함마드의 하늘 여행이 기록되어 있다. 무슬림들은 예언자 무함마드가 부라끄라는 천마를 타고 하룻밤 사이 메카에서 예루살렘에 위치한 알 아끄사 모스크까지 여행한 것으로 믿고 있다. 그런데 유대인들 역시 알 아끄사 모스크가 세워진 땅을 성지로 간주한다. 이 곳은 본래 솔로몬 왕이 성전을 세웠던 곳으로 유대인들은 '성전산(Temple Mount)'이라 부른다. 2000년 9월 당시 리쿠드당의 당수이던 아리엘 샤론이 알 아끄사 모스크를 방문했다가 팔레스타인인의 민중봉기인 제2차 인티파다가 촉발되었다는 사실은 양측 간 첨예한 대립의 단면을 보여 준다.

현재 알 아끄사 모스크의 관리 권한은 별도의 이슬람 재단인 예루살렘 이슬람 와끄프가 갖고 있다. 하지만 무슬림들은 이스라엘이 알 아끄사 모스크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려 한다는 의구심을 갖고 있다. 간혹 이스라엘 당국이 출입을 통제하는 경우가 있으며 허가 받지 않은 일부 유대인들이 알 아끄사 모스크 내부로 진입하면서 마찰을 빚기도 한다.

이런 가운데 에르도안 대통령은 아야 소피아의 지위를 논하면서 알 아끄사 모스크를 연계함으로써 모스크 부활의 정당성을 높이고자 했다. 이런 관점에서 압둘 하디 아왕 말레이시아 이슬람당 대표는 알 아끄사 모스크에 침묵하는 국가들은 아야 소피아의 지위를 비난할 자격이 없다는 말로 에르도안 대통령의 손을 들어주었다. 이슬람주의 노선을 강화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 에르도안 대통령이 앞으로 알 아끄사 모스크와 같은 이슬람 세계의 대의를 어떻게 다루어 나갈지 궁금하다.

김강석 단국대 GCC국가연구소 전임연구원
대체텍스트
김강석한국외대 아랍어과 교수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

댓글 0

0 / 25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 저장이 취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