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도 비워야 넓어진다

입력
2020.08.07 16:00
18면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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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를 제법 많이 했다. 대학 때부터 지금까지 기숙사, 하숙, 자취방을 옮겨 다녔고 신혼집 이후로도 몇 번은 옮겼다. 그 때마다 짐정리를 하면서 드는 생각이 있다. ‘언제 이렇게 짐이 많아졌지?’. 버리고 정리하면서 살자고 다짐해놓고, 이사 때면 또다시 깨닫는 것이다. 알게 모르게 쌓아 놓다보니 새로운 것들을 들여놓을 공간이 부족했다. 당연히 집은 좁아진다.

마음도 그렇다. 우리는 자꾸 무언가를 쌓아둔다. 붙잡고 집착한다. 고집스런 생각들, 불편한 감정들을 흘러가도록 두지 못하고 연연한다. 그러면 현재의 것이 들어갈 틈이 없다. 새로운 생각, 새로운 감정, 또 타인의 의견을 받아들일 공간이 없다. 마음이 순환하지 못한다.

고집, 또 생각과 감정에 대한 집착은 ‘지금, 여기’를 볼 수 없게 만든다. 아무리 아름다운 풍경 앞에 있어도 보이지 않고, 좋은 사람들과 함께 있어도 즐기지 못한다. 지금 눈앞에 펼쳐지는 일들을 받아들이지 못하게 한다. 나와 다른 의견을 받아들이지 못하기에 입체적인 시각을 갖지 못한다. 자연히 타인과 자주 갈등을 일으키고 삶에 대한 만족도가 낮다. 비우지 못하는 사람들의 어쩔 수 없는 운명이다.

자기주장만 고집하며 타협이 되지 않는 사람을 보고 흔히 ‘속이 좁다’는 말을 한다. 그런데 태생부터 마음이 넓은 사람, 좁은 사람은 없다. 기왕이면 넓은 집에 살고 싶은 것처럼, 누구나 넓은 마음으로 살고 싶어 한다. 집을 넓게 쓰듯 넓은 마음으로 살아가고 싶다면 적절히 비울 수 있어야 하는데,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첫째는 편안해야 한다. 욕심과 불안 때문에 물건을 버리지 못하듯 불안한 마음은 무엇도 놓아주지 않으려 한다. 편안해져야 비울 수 있다. 굳이 고집을 부리지 않아도 안전하고 평안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면 붙잡고 있을 이유가 없다. 남북관계가 좋지 않을 때 비상식량부터 사는 사람, 또 코로나 사태로 휴지를 사재기 했다는 소식을 봐도 그렇다. 불안하면 자꾸 모으고 소유하려든다.

두 번째, 흘러가는 것을 흘러가도록 허용해야 한다. 사실, 마음은 애쓰지 않아도 항상 흘러간다. 감정은 시시때때로 변하고, 생각도 변화한다. 외부로부터 새로운 자극이 들어오기 때문에 내면이 영향을 받는 탓이다. 그런데 불편한 감정을 붙잡고 있고, 기존의 생각을 버리지 못해 새로워질 기회를 놓쳐버린다. 내 마음이 그저 흘러가도록 내버려두기만 하면 되는데도 말이다. 순환할 수 있도록 스스로를 새로운 환경에 노출시키는 것도 좋다. 부부싸움을 한다고 가정해보자. 분노에 사로잡혀 있을 때 휴지기를 가지고 잠깐이라도 바깥바람을 쐬면 그 감정의 단계는 몇단계 낮아진다. 분노 감정을 강화시키는 상황을 벗어나 새로운 공기가 유입되도록 했기 때문이다.

어린아이를 보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아이들은 붙들고 있는 게 없어서 무엇이든 쏙쏙 흡수한다. 내적공간이 넓다. 그리고 가볍다. 새 스케치북처럼 뭐든지 그려 넣을 수 있다. 쥐고 있는 게 많은 어른들만이 무거운 마음을 이끌고 살아간다. 쥐고 있는 것들이 자신을 괴롭히고 있다는 것도 모른 채.

마치 이사를 앞두고 있는 것처럼 생각과 감정을 적절히 비워내며 살아가야겠다. 어쩌면 마음은 물리적인 집과 달리 한계없이 넓어질지도 모를 일이니.





김혜령 작가ㆍ상담심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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