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만나며 집을 짓는다

입력
2020.08.06 22:00
23면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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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는 건물을 짓는 동안 많은 사람을 만난다. 일단 설계를 시작하며 구조기술사, 설비전문가, 토목전문가와 협의를 거친다. 구조기술사는 이 건물이 지진에도 끄떡없게끔 튼튼하게 만들어 주는 일을 한다. 안전에 관한 일이기에 아주 보수적이며 깐깐하다. 설비전문가는 배관과 정화조 등 건물의 보이지 않는 부분들이 원활하게 작동되도록 계획해 준다. 설계도면을 보내면 알아서 용량 체크를 척척 해준다.

건축 허가를 받을 때는 공무원을 만난다. 그 지역에 짓는 모든 건물은 건축과 공무원을 통해야 하므로, 법규 적용, 대지 상황, 누가 민원을 많이 넣는지 등을 꿰뚫고 있다. 이들은 많이 알고 있어선지, 많이 시달려서인지 방어적인 경우가 많다. ‘다치지 않는 자세’라고 하는 게 맞겠다. 애매한 부분이 있어 물어봐도 “글쎄요, 접수하시면 검토해 보죠”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간과했던 부분을 친절하게 알려줄 때는 공무원에게서 광채가 나는 것 같다.

서류 작업이 끝나면 현실이 닥친다. 이제부터는 ‘예산’의 윤곽이 나온다. 견적전문가(이런 직종도 있다!)와 공사전문가가 기다리고 있다. 행복했던 건축주의 얼굴에 그늘이 드리워지는 시간이다. 언제나 견적은 예산을 초과한다. 숫자 하나를 잘못 입력해도 수천만 원이 왔다 갔다 하므로 정확하고 신중하게 임해야 한다. 공사전문가는 뺄 곳이 어디 있냐며 남는 게 없다고 앓는 소리를 한다. 이해는 하지만 그래도 줄여야 한다. 재료를 바꾸고 규모도 줄이면서 예산에 가깝게 다가간다.

건설회사가 결정되면 현장소장과 목수 반장을 만난다. 일 잘했던 현장소장을 다시 만나면 내 발걸음이 편해진다. 목수 반장은 가장 중요한 사람 중 한 명이다. 건물의 골조를 만드는 사람이므로 그의 실력에 따라 현장이 잘 돌아갈지 엉망이 될지 결정된다. 이번 반장님은 도면을 제대로 파악한 듯하다. “건물이 좀 복잡하죠?”라고 말을 꺼내면, “뭐가 그리 복잡합니까?”라고 대꾸하며 이것저것 빼고 싶은 눈치를 내비친다. “좀 잘 부탁드립니다. 그래서 반장님이 오셨잖아요. 잘하신다고 들었어요”라며 칭찬으로 밀고 나간다. 목수는 팀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팀원들도 보던 사람들이다. 그래서 감리하러 현장에 가면 무조건 인사를 한다. 건물에 가장 중요한 일을 하는 사람이므로 존중해야 한다는 나름의 원칙이다.

타일공ㆍ벽돌공ㆍ도배공ㆍ설비공 등등 다양한 사람을 만나지만 제일 애매한 사람은 일용직으로 불리는 분들이다. 필요에 따라 나타났다 사라지기 때문이다. 관계를 맺을 만큼 시간적 여유도 없다. 운반하고 치우고 정리하고… 아마 연령대도 제일 젊지 않을까 싶다.

공사 내내 만나게 되는 민원인들은 사실 제일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다. 그러나 어떤 현장에서나 민원은 존재한다. 대부분 분노 상태에 있어서 분위기가 살벌하다. 분노를 다스리는 건 역시 경청이다. 불편함을 들어주고 공감의 눈빛을 건네면 대부분은 잘 해결이 된다. 현장 일이 끝나면 최후의 관문으로 불리는 특검이 기다린다. 매의 눈을 가진 다른 건축사가 최종적으로 확인한 후에야 사용 승인이 난다. 그날은 종일 소화불량이었다가 잘 지으셨네요라는 말을 들으면 쑥 내려간다.

이제 새로운 사람을 만날 일이 없는 걸 보니 건물이 다 지어진 모양이다. 다들 건강하게 다른 현장에서 또 인사를 나눌 수 있기를 빌어 본다.



정구원 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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