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노 담화를 잊지 말자

입력
2020.08.04 18:00
수정
2020.08.04 18:44
26면

위안부 강제성 인정 고노담화 27주년
장관 개인 아닌 일본 공식 견해 유효
인류 보편 미래지향적 의미 되새겨야


고노 요헤이. 한국일보 자료사진

고노 요헤이. 한국일보 자료사진



27년 전 어제, 1993년 8월 4일, 고노 요헤이 당시 일본 내각 관방장관은 2년에 걸친 위안부 문제 관련 일본 정부의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것이 고노 담화이다. 고노 담화는 그 역사적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한일 양국에서 잊혀 가고 있다. 고노 담화의 의미를 되새기고자 이번 학기 일본인 학생들과 고노 담화를 강독했다.

고노 담화의 내용은 크게 네 가지이다. 첫째, 일본군의 관여를 인정했다. 담화는 위안소 설치 및 운영에 일본 제국 군부가 직간접적으로 관여했다고 인정하고 있다.

둘째, 강제성의 인정이다. 담화는 위안부 모집은 주로 민간업자들이 실행했으나 그 모집, 이송 및 관리 과정에서 감언, 강압 등 대체로 본인의 의사에 반하여 행해진 경우가 많았다고 인정한다.

셋째, 잘못의 인정과 사과이다. 담화는 군의 관여 아래 다수 여성이 그 명예와 존엄에 깊은 상처를 입었음을 인정한다면서 마음으로부터의 사과와 반성의 뜻을 밝히고 있다.

마지막은 연구와 교육을 통한 기억의 다짐이다. 담화는 역사의 진실을 직시하겠다고 하면서 연구와 교육을 통해 이 문제를 오래도록 기억하여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겠다는 결의를 보이고 있다.

고노 담화에 대한 오해 중 세 가지를 해명하고자 한다. 첫째, 고노 담화는 정치인 고노 요헤이 개인의 견해가 아니다. 고노 장관은 일본 내각을 대표하여 담화를 읽었다. 내각제 국가 일본에서 정부의 최고 의사결정기구는 내각이며, 내각의 의사는 곧 일본 정부의 공식 의사이다.

둘째, 고노 담화는 여전히 유효하다. 고노 담화는 일본 역대 내각에 의해 승인되어 왔다. 2012년 말 아베 총리가 재집권했을 때 고노 담화 변경론이 대두되기도 했으나, 결국 2014년 3월 아베 총리는 고노 담화를 그대로 승계하겠다고 공식 천명했다.

셋째, 한국 측 견해 반영이 고노 담화의 가치를 떨어뜨리지 않는다. 2014년 일본 정부가 고노 담화 작성 경위를 발표하면서 고노 담화의 문구 조정 과정에서 한국 측 의사가 일부 반영되었다는 점이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이를 근거로 마치 고노 담화가 한일 간 거래의 산물인 것처럼 비판하나, 사실이 아니다.

고노 담화는 일본 정부가 사과와 반성의 의사를 문서로 밝힌 것이다. 이런 문서 작성 과정에서 관련 당사국이 일정 견해를 표명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리고 우리나라가 무슨 의사를 표명했든, 그 반영 여부와 무관하게 일본 정부는 고노 담화의 내용을 이행할 국제법적 책임을 갖게 된다. 실제로 고노 담화에서 약속된 바에 따라 1997년부터 일본에서 발간되는 역사 교과서에는 위안부 관련 내용이 실리고 있다.

위안부 문제 관련 우리는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그 이전에 고노 담화가 있었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어려운 외교 문제일수록 한일 양국의 전임 정부가 이룩한 성과에 기반하여 미래를 향해 나아가려는 태도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고노 담화는 한일 관계를 넘어 인류 보편사적 의미를 갖는다. 2015년 6월 고노 전 장관이 밝혔다시피 고노 담화는 한국만을 향한 것이 아니다. 과거 전쟁 시기 아시아 각지에서 한국인은 물론, 일본인, 중국인, 필리핀인, 심지어 유럽인까지 위안부로서 고통을 겪었다. 전쟁이라는 엄혹한 시기에 여성은 물론, 아동, 노약자 등 소수자, 취약 계층은 더 커다란 위협에 노출된다. 위안부 문제에 대한 잘못의 인정과 사과를 통해 전시 소수자의 인권 보호에 대한 각성을 환기한다는 점에 고노 담화의 보편사적, 미래지향적 의미가 있다. 이 점에서 일본은 물론 우리 역시 고노 담화를 잊어선 안될 것이다.



장부승 일본 관서외국어대 교수ㆍ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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