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라는 도전

입력
2020.07.31 18:00
수정
2020.07.31 18:35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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쉼없이 전체주의 강화하는 러시아, 중국?
인권, 자유 경시로 퇴보하는 트럼프 정권
보편 가치로 '전략적 모호' 외교 넘어서야

편집자주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30일 워싱턴DC 백악관에서 언론 브리핑을 하고 있다. 워싱턴DC=AF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30일 워싱턴DC 백악관에서 언론 브리핑을 하고 있다. 워싱턴DC=AFP연합뉴스

러시아가 국민투표로 200개 넘는 헌법 조항을 수정했다. 러시아 정부와 국영 언론이 새 헌법 내용 중 애써 알리고 싶었던 것은 국민 복지가 두터워진다는 부분이었던 것 같다. 옛소련 시절보다 높은 생활 수준을 보장한다는 푸틴의 오랜 약속은 유가 상승 덕으로 꽤 효과를 봤지만 상황이 반전돼 지금 러시아는 경제난이 심상치 않다. '국민연금 수령액의 물가 연동'이나 '최저임금의 최저생계비 수준 유지'가 새 헌법에 등장한 이유다.

이와 달리 러시아 바깥에서 주목한 것은 개헌으로 푸틴의 임기가 12년 더 늘어날 수 있다는 대목이었다. 실세 총리 기간까지 포함해 무려 36년 장기집권이 가능하다. 3연임 금지 조항에 따라 2024년까지인 지금 임기를 마치면 푸틴은 더 이상 대통령에 출마하지 못할 상황이었다. 그러나 애초 푸틴이 제시한 개헌안에 없던 새로운 계산법이 논의 과정에서 여당 의원 제안으로 채택됐다. 짜고 쳤다 해도 무리가 아니다.

꼼수 개헌으로 집권 연장의 길을 트고, 경품추첨권 등을 이용한 표몰이로 국민의 신임을 과시하는 일그러진 민주주의가 러시아만의 일은 아니다. 러시아와 바통 터치해 미국과 대결하는 중국은 시진핑 집권 이후 국내 인권, 언론 자유에서 퇴보를 거듭하고 있다. 해마다 10% 안팎으로 늘려온 국방비가 대외 패권 행사의 토대라는 것은 점점 노골화되는 남중국해 세력 확장으로 입증되고 있다.

홍콩 보안법 도입은 중국이 국제사회와 약속을 어기는 것은 물론, 민의를 짓밟으려 드는 나라임을 보여 준다. 안보가 민주주의라는 원칙에 앞서는 가치일 수 없다. 경제체제로서 사회주의는 실패했지만 그 유산인 전체주의를 버리지 못하는 중국과 러시아 주변에서 우후죽순 독재정권이 출현하거나 강화되는 경향마저 나타난다.

그렇다고 체제 경쟁을 해온 서구 자본주의가 민주주의라는 관점에서 이런 나라들을 압도할 만하냐면 그것도 아니다. 미국의 비영리기구 프리덤하우스가 매년 펴내는 세계 자유도 보고서는 2007년 이후 전 세계 시민 자유가 후퇴를 거듭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단적인 사례가 트럼프 정권의 미국이다. 2009년까지 100점 만점에 94점으로 서유럽 여러 나라와 어깨를 나란히 하던 미국의 자유도는 지난해 86점까지 추락했다. 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집계한 미국의 민주주의 지수는 20위권 중반대로 3년 전부터 한국을 밑돈다.

트럼프는 미국 우선주의를 표방하며 이민자 막기에 급급하고 이에 제동 거는 사법부를 향해 비난을 쏟아냈다. 자신에 비판적인 언론 기사는 "가짜 뉴스"고 그런 기자와 언론사는 "국민의 적"이다. 다가올 대선의 정당성을 의심하는 발언을 서슴지 않아 벌써 선거 불복의 자락을 깔았다는 말까지 나온다. 각국의 경제, 민주주의 발전에 적지 않은 역할을 해 온 국제기구를 잇따라 탈퇴해 국제협력을 무력화한다.

미중 갈등 속에서 미국이 '연대'라는 이름의 '줄세우기'를 표면화하고 있다. "민주주의 국가들의 새로운 동맹체를 만들 때가 온 것 같다"는 폼페이오 장관의 말은 주요 7개국에 한국과 호주, 인도를 더한 'D10'으로 구체화할지도 모른다.

최근 열린 외교전략조정회의에서 강경화 외교장관은 "우리 중심을 잡는 게 관건"이라며 안보에서는 한미 동맹을, 경제통상에서는 공정 호혜 개방 포용을, 과학기술에서는 개방성과 기술보안 강화를, 규범에서는 인류 공동 가치 증진에 기여한다는 원칙을 확인했다. 미중이 힘으로 밀어붙일 경우 결국 어느 정도는 그들의 자충수가 될 정도로 한국과 두 강국의 역학 구도가 변했다. 가치는 쇠락한채, 힘만 간직한 미중 사이에서 더이상 모호할 이유가 없다.

김범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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