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의 밥이 뉴노멀이다

입력
2020.07.30 06:00
27면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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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이후 뉴노멀 모색이 활발한 요즘, 연이어 터진 몇 가지 먹거리 안전사고에서 우리사회의 큰 구멍을 보게 된다.

경기 안산의 유치원에서 식중독으로 100명 이상의 피해자가 생겼다. 이 중에는 ‘햄버거병’이라 불리는 용혈성요독증후군(HUS)을 보이고 심한 경우 투석하는 고통을 겪는 아이들도 있다. 보관해야 할 식재료를 폐기해서 정확한 원인을 찾기도 힘들고 해당 유치원 원장은 보관 규정을 몰랐다고 변명했다.

제주도 유치원 보육교사들이 공개한 급식판도 충격적이었다. 두부 한 개 동동 떠 있는 멀건 국, 반찬 없이 물에 만 밥 또는 죽… 그나마 낮에 배식된 죽을 저녁에 다시 재활용했다고 한다. 제주도지사가 급식 조리실에 CCTV를 설치하겠다며 강력한 대책을 발표했다.

이천과 용인의 기숙 입시학원에서도 140여명에게서 집단 식중독이 발생했다. 한달 학원비가 수백만 원 하는 학원인데도 배식업체 관리가 소홀했다.

교육기관의 급식 관리 실태를 보면 이런 식중독은 예정된 사고였다. 경기도교육청의 930개 사립유치원 실태 조사에 따르면 급식의 영양과 위생을 책임지는 영양사가 단독으로 있는 곳이 10% 미만, 영양사가 아예 없는 곳이 3분의 1, 1주일에 한 번 정도 찾아가는 공동관리 영양사가 있는 곳이 56% 정도였다.

학교급식법, 국민영양관리법 등에 근거한 공동관리 영양사 규정은 영양사 1인이 4,5곳의 단체급식을 관리하도록 허용한다. 예산 절감 효과가 있을 뿐 급식 안전에 필수적인 영양과 위생관리는 불가능하다. 공동관리영양사 규정은 운영자의 편의를 위한 독소조항으로 속히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친환경 유통센터를 통해 단체급식을 위한 친환경 식자재를 구입하는 제도가 어린이집과 사립유치원, 학원 등에는 포함되지 않는다. 유치원만이 아니라 보육원, 요양원, 교도소 등 식품의 질을 따질 수 없는 사회적 약자들이 있는 곳은 모두 단체급식 안전의 사각지대에 들어 있다. ‘정치하는 엄마들’의 장하나 대표는 구매에서 배식까지 단체급식의 전 과정을 법적인 체계속에서 관리하는 일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안전보다는 효율성이 우선이라는 생각이 식중독 급식을 만들었을 것이다. 지금까지의 개발은 늘 그랬던 것처럼 효율성의 이름 아래 기본적인 소중한 가치들이 희생되었다.

여성주의 경제학자 마릴린 워링은 ‘여성이 계산되었다면’이라는 저서에서 시장에서 거래되는 교환가치만을 계산하는 기존 GDP(국내총생산) 계산 방식의 맹점을 비판했다. 연로한 부모님을 요양원에 입소시키거나, 아이를 유아원에 보내는 건 ‘경제적 가치’로 계산되지만 집에서 부모님을 모시고 아이를 돌보는 일은 ‘비경제적’으로 분류된다. 건강한 식탁을 차리거나 빨래, 청소, 집안정리 같이 우리 생활에 꼭 필요한 일도 가사도우미를 부르면 경제적 행위이고, 주부가 직접하면 비경제적인 행위이다. 이 어리석은 논리에 따라서 살림하는 여성들은 ‘노는’ 걸로 치부됐다. 메릴린 워링은 여성들의 무임 가사노동과 돌봄노동을 포함시키면 GDP가 30% 증가한다고 주장했다.

뉴노멀은 생각의 순서를 바꾸는 데서 찾을 수 있다. 가족을 보살폈던 엄마의 정성과 노동, 다양한 생명을 지켜온 보이지 않는 이타적인 수고를 경제적 가치로 계산하는 새로운 경제학이 필요하다. 뉴노멀은 아이들에게 건강한 밥을 먹이는 일이다.



김효선 여성신문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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