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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실 넓히세요" 발코니 없애고 도시의 표정을 잃어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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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들에게 도시는 살기도(live), 사기도(buy) 어려운 곳이 되고 있습니다. 부동산은 치솟고 거주 양극화는 갈수록 심해집니다. 이런 불평등과 모순은 어디에서 비롯된 걸까요. 도시 전문가의 눈으로 도시를 둘러싼 여러 이슈를 하나씩 짚어보려 합니다. 주택과 부동산 정책, 도시계획을 전공한 김진유 경기대 교수가 <한국일보> 에 3주에 한 번씩 연재합니다. 한국일보>
<7> 무표정한 도시의 발코니 경제학
우리나라 아파트들은 참 무표정하다. 신축 아파트 중에는 외관의 재료나 색깔을 다양화해 표정을 주려 시도하는 사례도 있으나 여전히 부족하다. ‘아파트 공화국’으로 불릴 만큼 주택 가운데 아파트 비중이 높은 현실을 감안하면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아파트가 개성 있는 모습을 갖추지 못한 데에는 여러 원인이 있다. △내부 인테리어만 중시하는 소비자 △다양한 외관을 설계하지 못하는 건축가 △최대수익만 바라보는 주택업자 모두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여기에 좀 더 근본적인 원인 하나를 짚고 싶다. 발코니라는 공간에 대한 잘못된 인식과 경직된 건축규제가 그것이다.
발코니(Balcony)는 건축물에서 외부로 돌출된 부분으로 내부와 외부의 완충지대 역할을 한다. 본래 발코니는 신을 신지 않고 바깥바람을 쐴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선 발코니를 흔히 베란다(Veranda)라고 부른다. 여기에는 나름 이유가 있다. 베란다는 위층이 아래층보다 좁아서 발생하는 상부 오픈 공간인데, 아랫집이 발코니를 확장해 내부공간이 되었다면 윗집 발코니는 베란다라 볼 수도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대부분의 발코니가 돌출되어 있지 않고 건물외벽라인에 숨어있으니 사실 베란다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발코니는 아파트의 단점을 보완해주는 중요한 공간이다. 평상 시에는 환기와 조망을 할 수 있는 공간이고, 세탁과 수납 등의 주거생활 보조 기능도 담당한다. 특히 현재와 같은 팬데믹(전염병의 세계적 대유행) 상황에서 외출하지 않고 신선한 공기를 마실 수 있는 발코니의 역할은 더욱 재조명되고 있다.
에너지 효율이나 보건 측면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발코니를 확장하면 실내외 기온 차가 크며 결로 발생일수가 두 배로 증가한다는 통계가 있다. 또한 화재 시 발코니는 옆집으로 피신할 수 있는 대피로로 활용된다. 그런데 우리나라 아파트 대부분은 발코니를 내부화해 불이 나면 대피공간이 없어 질식사 위험이 커졌다. 화재 확산이 더 빨라져 이웃의 대피시간을 빼앗는 부작용도 있다.
우리나라 아파트 발코니는 1990년대 초 수도권 1기 신도시 개발과 2005년 발코니 확장 합법화를 통해 두 번의 큰 변화를 겪었다. 1989년 발표된 ‘수도권 5개 신도시’는 주택시장안정을 위한 대규모 아파트 단지 중심의 개발사업이었다. 이전까지 개별적으로 건축되던 아파트가 대규모로 공급되자 주택 수요가 크게 늘고 분양 경쟁이 어느 때보다 치열해졌다.
특히 주택사업자 사이에선 소비자들의 환심을 사기 위한 방편으로 평면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게 이뤄졌는데, 각종 혜택을 누릴 수 있는 국민주택규모(85㎡이하)를 넘지 않으면서 서비스 면적을 늘리는 것이 핵심전략이었다. 주택사업자들은 ‘전면 연속형’ 발코니로 서비스 면적을 극대화하고 이를 마케팅에 활용했다. 면적을 최대한 늘리는 수단으로 발코니가 활용된 것이다.
두 번째 발코니 확대는 아이러니하게도 IMF 외환위기로 촉발됐다. 2000년대 들어 외환위기 충격에서 벗어나 경기가 회복되자 다시 한번 수요의 급격한 팽창을 경험한다. 이에 따라 정부는 2000년 6월 건축법 시행령 개정을 통해 화단설치 시 2m까지 바닥면적 산입에서 제외하는 조치를 취했다. 이는 신축아파트의 발코니 면적이 대폭 증가하는 결과를 불러왔다. 뿐만 아니라 기존 아파트에서도 실사용면적을 늘리고자 발코니의 불법 확장이 만연해졌다.
이 같은 편법과 불법에 굴복해 결국 2005년 12월 발코니 확장이 합법화되었다. 그 결과 최대한 발코니 면적을 확보하도록 설계하고 입주 전에 거의 모든 가구가 발코니를 확장하는 것이 일반화되었다. 발코니는 어느 새 베란다가 되어 있었고, 중소형아파트에서는 발코니를 확장하지 않고서는 방도 거실도 너무 작아서 쓸 수 없는 지경이 되어 버렸다.
무분별한 발코니 확장의 부작용은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많다. 도시의 공유 공간 축소와 사적 공간 비대화를 불러와 전반적인 주거환경을 악화시킨다. 통상 전용면적의 30%에 해당하는 발코니를 전면과 후면, 심지어는 측면에 설치하고 이를 확장함으로써 내부공간은 확대된다. 반면 단지 내 공유 공간은 축소된다. 전용면적기준으로 산정하는 법적 용적률에 30%가 추가되어 용적률 300% 단지라면 사실상 390%가 되는 것이다. 그만큼 단지 내 조경이나 오픈스페이스는 축소되고 동간 거리도 짧아지게 된다. 용적률이 증가하면 건물이 뚱뚱해지고 앞 동의 그림자로 인해 더 많은 저층가구가 일조권 침해를 받게 된다. 동간 거리가 짧아지면 시각적인 사생활 침해가 더 빈번히 발생한다. 자신들의 내부공간은 더 확보하지만 결국 같이 쓰는 공간을 희생시킴으로써 전체적인 주거의 질은 떨어지게 되는 것이다.
발코니 확장은 주택정책의 효과도 왜곡시킨다. 건축 시기에 따라 실제사용공간에 큰 격차를 발생시킴으로써 시장가격에 영향을 주고 전용면적을 기준으로 수립한 주택정책의 효과도 반감시킨다. 서울시의 사례를 살펴보자. 1980년대 지어진 아파트의 경우 전용면적 대비 발코니면적의 비율은 약 20% 내외인데 비해 2000년대 중반 이후 지어진 경우 30% 정도이다. 가장 대표적인 주택규모, 전용 84㎡의 예를 보자. 1986년 준공된 개포동 현대3차 아파트는 발코니면적이 17㎡인데 비해 2016년 준공한 반포동의 아크로리버파크는 발코니 면적이 최대 37㎡이다. 무려 20㎡나 차이가 나지만 전용으로는 동일한 면적의 아파트이고 85㎡이하에 적용되는 혜택도 동일하다. 두 개의 발코니면적 차이를 금액으로 따지면 최소 3억(현대3차 시세기준)에서 최대 5억5,000만원(아크로리버파크기준)으로 웬만한 집 한 채 값이다. 발코니를 최대한 확보하고 이를 내부화함으로써 부당한 혜택을 누리고 있는 것이다.
이제라도 제대로 된 발코니 정책이 필요하다. 우리보다 더 춥고 눈도 많이 오는 북유럽에서도 외부로 노출되어 햇볕을 쬘 수 있는 발코니는 사랑 받는 공간이다. 싱가포르나 홍콩처럼 더운 나라는 말할 것도 없다. 언제까지 발코니확장을 통해 실내 공간을 편법적으로 확보하는 후진적인 제도를 방치할 수는 없다. 주거환경 악화와 화재위험 상승을 감수할 만큼 발코니확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지도 않다. 지금도 우리나라 주거면적을 옥죄고 있는 국민주택규모(85㎡이하)를 과감히 철폐하고 발코니확장을 다시 불법화함으로써 다양한 표정의 아파트들이 우리 도시의 표정을 살리도록 해야 한다.
포스트코로나 시대, 재택근무가 증가하고 사회적거리두기가 고착화되면 발코니는 더욱 중요한 공간이 될 것이다. 식구들끼리 따사로운 햇볕 아래서 차를 마시는 일상의 건강을 지키는 중요한 장소이다. 발코니가 본래의 모습과 기능을 되찾을 수 있도록 관련 제도 개선을 심도 깊게 논의할 때다.
김진유 경기대 도시ㆍ교통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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