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장 드라마의 주인공들

입력
2020.07.30 04:30
26면

편집자주

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전북 김제시의회 본회의장에서 시민들이 부적절한 관계로 물의를 빚은 의원들에 대한 제명을 요구하는 글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전북 김제시의회 본회의장에서 시민들이 부적절한 관계로 물의를 빚은 의원들에 대한 제명을 요구하는 글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이쯤되면 막가자는 것이다. 영락없는 막장 드라마의 주인공이다. 누가 누가 더 막돼먹었는지 경쟁을 벌이는 듯 하다.

전북 김제시의회에서 일어난 불륜 스캔들에 이어 경기 고양시의장의 시장실 앞 행패까지 최근 전국 지방의회에서 벌어진 추태를 보며 든 생각이다. 동네는 물론이고 나라망신 제대로 시켰다.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의장 선거를 둘러싼 금품수수 의혹과 첩보영화를 방불케 하는 날치기 상임위 구성, 악취 나는 감투싸움 등 전국 곳곳에서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백서(白書)를 만들어도 될 만큼 꼴불견이 차고 넘친다. 이런 사람들에게 피 같은 세금이 쓰인다고 생각하니 울화가 치민다.

사실 몸싸움과 막말, 음주운전, 갑질 등 지방의원들의 추태가 어제 오늘 일은 아니다. 그나마 올해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지긋지긋하던 외유성 해외연수는 사라졌다. 전염병에 고마움이라도 표해야 할 정도다.

그 동안 지방의회가 본연의 역할에 충실했는지도 의문이다.

몇몇 강원도의원들의 별명은 '거수기'다. 지난 5월 도의회는 10년 가까이 지지부진한 레고랜드 코리아 테마파크 사업을 위한 꼼수 예산을 통과시켜 논란을 일으켰다. 이에 시민단체들이 도의원들에게 비판ㆍ견제 능력을 상실했다며 붙여준 닉네임이다. 민생을 외면한 채 당리당략에 매몰된 결과다.

이처럼 지방의회에 대한 신뢰는 바닥까지 추락했다. 과연 의회가 필요한가에 대한 회의론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럼에도 자성의 목소리는 좀처럼 들리지 않는다.

전국 대다수 지방의원들은 '월급 루팡'(하는 일 없이 월급만 타 가는 이를 이르는 말)이란 소릴 들으면서도 연간 수천만원의 의정비를 꼬박꼬박 타가고 있다. 주민 대표의 의무는 다하지 않으면서 권한과 혜택은 내려 놓으려 하지 않는 모습도 여전하다. 주위의 따가운 시선에도 말로만 협치와 민생, 풀 뿌리 민주주의를 운운하는 뻔뻔한 모습에 주민들이 피로감을 느끼는 걸 아는지 모르겠다.

우리는 '지방자치는 민주주의 학교'라고 배웠다. 학교가 문을 연지 30년이 흐른 지금, 상당수 지방은 '문제아'가 판치는 탈선의 장으로 전락했다. 모든 기반을 닦아야 한다는 이립(而立)의 시간을 맞았음에도 수준 미달 지방의회가 판치는 게 우리 정치의 냉정한 현실이다.

이제 참을 만큼 참았다. 지방의원들에게 능력에 맞는 대접을 해줄 때가 됐다. 그들이 스스로 바뀌지 않으니 시민들과 정치권, 학계, 언론이 이를 바로 잡을 차례다.

우선 유권자 20% 이상 서명과 투표율 33%를 넘겨야 하는 현행 주민소환 문턱을 낮추는 방안을 공론화해야 한다. 수준 미달 의원들을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는 까닭이다.

그들에게 지급하는 의정비도 성과를 감안해 차등 지급되도록 규정을 손봐야 한다. 의정비는 본연의 역할을 다했을 때 비로소 주어지는 소중한 혈세라는 생각이 들도록 말이다. 의장단에게 제공되는 업무추진비와 차량 등 의전을 축소해야 한다는 목소리에도 귀 기울이고, 이를 또 실천에 옮겨야 할 것이다.

'의원 리콜제'와 함께 낙천ㆍ낙선 운동도 다시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몇 년 뒤 문제 의원들이 시장, 군수, 국회의원 선거에 도전하거나 다시 배지를 달도록 놔둬선 안 된다. 이들을 정치판에서 퇴출하는 것이 풀뿌리 민주주의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품격을 잃은 막장 드라마의 주인공들을 무대에서 끌어내릴 시간이다.

박은성 지역사회부 차장대우 esp7@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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