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 훔치는 유령직원 아시나요"

입력
2020.07.27 13:57
수정
2020.07.27 18:18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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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회]유령직원 막는 앱 개발한 이준승 샤플앤컴퍼니 대표

전세계에 매장을 운영하는 많은 기업들이 안고 있는 공통된 고민거리가 있다. 바로 유령직원이다. 유령직원이란 기업이 채용을 해서 월급을 주고 있는데 근무하지 않는 직원을 말한다. 즉 아예 존재하지 않거나 존재해도 출근하지 않고 월급만 챙기는 것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기업에서 전세계 매장을 일일이 돌아다니며 유령직원을 확인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이를 악용하는 것이다.

“사무직은 모르는 유령직원 천태만상”

기업들도 유령직원의 존재를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이를 색출하러 비행기를 타고 날마다 해외 매장을 돌 수는 없다. 오히려 확인 비용이 더 든다. 기업들은 몇 달 간격 또는 1년에 한 번 해외 매장을 돌며 유령직원을 찾아내지만 그때뿐이다. 금세 다른 유령직원이 그 자리를 채운다.

어처구니없는 일이지만 실제로 벌어지고 있어서 기업들은 이를 막기 위해 희한한 방법들을 쓴다. 모 업체는 매장 직원이 출근하면 그날 발행된 신문의 날짜가 보이도록 들고 매장에서 사진을 찍어 보내도록 요구한다. 모 업체는 TV 뉴스 화면이나 시간과 날짜가 나온 전광판 앞에서 사진을 찍어 보내라고 한다. 이를 처리하기 위해 해당 기업 본사에는 하루 종일 전세계 매장에서 날아오는 사진만 확인하는 직원이 따로 있다.

기업 입장에서는 이중으로 손해다. 출근하지 않는 직원에게 월급을 주면서 이를 막기 위해 출근을 확인하는 직원을 따로 둬야 하니 인력과 비용 낭비가 심하다.

직원들도 불만이다. 매장 직원들은 끊임없이 의심 받는 것 같아 기분 나쁘고, 본사 관리 직원은 하루 종일 단순 노동인 확인작업을 되풀이하며 지칠 수밖에 없다.

이런 기업들의 딱한 사정을 눈 여겨 본 이준승(45) 대표가 이를 해결하기 위해 2016년에 샤플앤컴퍼니라는 신생기업(스타트업)을 차렸다. 그는 기업들의 이런 고민을 어떻게 알았을까. “삼성그룹에서 11년을 근무하며 해외 매장을 관리했습니다. 누구보다 해외 매장 관리의 문제점을 잘 알죠.” 그는 유령직원 때문에 골치를 앓던 당사자였다.

[저작권 한국일보] 이준승 샤플앤컴퍼니 대표가 직접 개발한 유령 직원을 막을 수 있는 '샤플' 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한호 기자

[저작권 한국일보] 이준승 샤플앤컴퍼니 대표가 직접 개발한 유령 직원을 막을 수 있는 '샤플' 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한호 기자


“삼성에서 유령직원 막다가 창업”

이 대표는 파란만장한 학력을 지녔다. 외국어고등학교에서 스페인어를 전공하고 고려대 서양사학과를 나와 독일 베하우대학(WHU)에서 경영학 석사(MBA)를 마쳤다. 이후 홍콩 이공대에서 박사 과정을 밟던 중 2004년 삼성에 입사했다.

그가 처음 몸 담은 곳은 제일기획의 자회사 오픈타이드였다. 워낙 여행을 좋아해 해외 근무지를 찾다가 발견한 회사였다. “베이징부터 아프리카의 케이프타운까지 육로로 갈 만큼 여행을 좋아합니다. 지금까지 80개국을 다녔어요.”

지금은 사명이 펑타이로 바뀐 오픈타이드는 중국에서 디지털 광고와 솔루션 사업을 해서 베이징에 본사가 있다. “영어 능통자를 뽑았는데 입사하고 보니 아무도 영어를 하지 않았어요. 모두 중국어만 사용해서 할 수 없이 중국어를 배웠죠.”

마침 오픈타이드는 잇따라 해외 법인을 만들었는데 사내에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이 없어서 법인 설립을 그가 맡았다. 2006년 대만, 2008년 홍콩 법인을 모두 그가 만들고 법인장을 했다. “해외 법인을 잇따라 만들고 32세때 첫 법인장을 해서 사내 별명이 법인 대리모였어요.”

해외 법인을 만든 뒤 그는 전세계에 퍼져 있는 삼성전자의 해외 매장 인력을 위탁 관리하는 일을 했다. “삼성전자 같은 국내 대기업은 해외에 대리점과 직영점을 두지 않고 현지의 대형 유통점을 통해 휴대폰과 가전제품 등을 판매해요. 대리점과 직영점을 차리면 돈이 아주 많이 들거든요. 대신 현지 인력관리 회사와 계약을 맺고 대형 유통점의 삼성전자 매장에서 일할 직원을 보내죠.”

해외 인력관리회사와 일종의 하도급 계약을 맺고 현지 매장에 판매직원을 내보내는 것이다. 삼성전자는 이런 방식으로 계약한 매장 직원들이 해외에 너무 많아서 오픈타이드에 관리를 맡겼고 이 대표가 담당했다.

“GPS까지 속이는 유령직원”

그때 이 대표는 유령직원의 실상을 알게 됐다. “출근도 하지 않는 직원에게 1,2년씩 월급을 주는 일이 일어나요. 중국, 멕시코에서는 흔해요. 기업들의 해외 매장 근무자 중 1~3%는 유령직원이에요.”

심지어 이웃 매장 직원들끼리 서로 품앗이하듯 유령직원으로 일하기도 한다. “A사 매장 직원이 경쟁업체 B사 매장의 유령직원으로 일하기도 해요. 한 군데서 일하며 월급을 두 군데서 받는 거죠.”

기업에서는 전체 직원의 기강이 달린 문제여서 유령직원을 막으려고 애를 쓴다. “출근 확인차 사진 찍어 보내라고 요구하는 것은 물론이고 해외 매장에 설치된 유선 전화로 출근 직후와 퇴근 전에 전화를 하라고 시켜요. 그런데 매장 직원 수백 명이 본사의 관리직원 한 명에게 전화하다 보니 계속 통화중이에요. 현장 직원들은 통화가 될 때까지 계속 전화를 걸죠.”

꼭 이런 방법만 있을까. 첨단 지문인식이나 안면인증 장치를 왜 사용하지 않을까. “기업 소유 매장이 아니어서 설치하지 못해요. 설령 대형 유통점에서 설치를 허가해도 비용이 만만치 않아요. 제가 관리한 중국 매장만 4만개였어요.”

일부 기업들은 스마트폰의 위성항법장치(GPS)를 이용했다. GPS로 매장 직원의 위치를 확인해 출근과 이탈을 파악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마저도 속였다. “페이크 GPS라는 위치를 속이는 앱이 있어요. 이 앱에서 위치를 지정하면 실제 어디에 있든 상관없이 스마트폰의 현재 위치가 지정한 곳으로 표시돼요. 집에서도 얼마든지 출근한 것처럼 조작할 수 있죠.”

샤플앤컴퍼니가 개발한 샤플 앱은 AI가 안면인식을 분석하고 와이파이를 통한 위치확인으로 근태관리를 한다. 샤플앤컴퍼니 제공

샤플앤컴퍼니가 개발한 샤플 앱은 AI가 안면인식을 분석하고 와이파이를 통한 위치확인으로 근태관리를 한다. 샤플앤컴퍼니 제공


“얼굴인식으로 출근도장 찍고 와이파이로 위치 확인하는 앱 개발”

이 대표가 창업해 유령직원을 해결하는 앱을 개발하겠다고 하자 투자가 이어졌다. TBT파트너스와 한국투자파트너스 등 투자전문업체를 비롯해 해외 법인장을 지낸 삼성전자의 전직 임원들이 투자했다. “유령직원 문제를 잘 아는 삼성전자의 전직 임원들이 이 문제를 풀면 무조건 된다며 창업을 지원했죠.”

굳이 퇴사하고 창업을 한 이유는 대기업에서 일하는 것이 답답했기 때문이다. “대기업에서 일하는 것은 양복입고 수영하는 것 같아요. 조직 내 결정 과정이 너무 복잡해 어떤 사업을 승인 받으려면 문서를 엄청 만들어야 하고 최소 6개월 이상 걸려요. 여기에 지쳐서 수영복만 입고 수영하려고 창업을 했죠.”

그의 앱 개발 원칙은 하나다. ‘매장 직원들을 비인간적으로 대우하지 않으면서 편하고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앱’이었다. 그러려면 매장 직원들의 특성을 잘 알아야 한다.

이 대표가 파악한 매장 직원들의 특성 중 하나는 저사양 휴대폰을 많이 쓴다는 점이다. “매장 직원들은 소득이 많지 않아 100달러 이하의 휴대폰을 많이 쓰고 저렴한 요금제를 사용해요. 따라서 저사양 휴대폰에서 작동하고 데이터 이용량이 적은 앱을 개발해야죠.”

매장 직원들은 근속 연수가 짧다. “11개월 넘기는 경우가 많지 않을 정도로 이직이 잦아요. 학력도 중졸이나 고졸이 많죠. 앱의 사용법 등 이용자환경(UI)이 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단순해야 해요.”

이를 바탕으로 이 대표가 2018년에 선보인 ‘샤플’ 앱은 간단하면서도 확실하다. 해외 매장 직원이 출근해 앱을 실행하면 화면 한 가운데 동그란 ‘출근’ 버튼이 뜬다. 버튼을 누르면 안면 확인 버튼이 나타난다. 이를 눌러 얼굴 사진을 찍어 전송하면 위치 조작이 불가능한 와이파이를 통해 현재 위치가 함께 자동 전송된다. 만약 매장이 아니면 근무지가 아니라는 표시가 뜬다.

이후 현장 직원이 앱을 실행하지 않아도 10분마다 와이파이를 통해 매장 내 근무 여부가 자동 전송된다. “위치를 추적하면 불법이지만 현재 매장에 있는지만 와이파이로 확인하는 것이어서 불법이 아니에요.”

기업에서 굳이 안면 인식과 10분 간격으로 근무지 확인을 하고 싶지 않으면 이 기능을 끄면 된다. 퇴근할 때도 동일하게 안면 인식과 와이파이 위치 확인 절차를 거친다.

“경쟁사 동향 보고와 영수증 처리 기능까지 갖춘 AI 앱”

이 기능 외에 이 대표가 개발한 앱은 독특한 기능을 갖고 있다. 경쟁사 동향 등을 수집해 기업에 보고하는 기능이다. “원래 매장 직원 업무 중에 타사 매장 배치 등을 사진 찍어 보내거나 전시품 교체 동향 등을 파악해 보고하는 것이 있어요. 매장 직원 입장에서는 일일이 자료를 만들어 보내는 것 또한 일이죠. 하지만 이 앱을 사용하면 앱에서 바로 사진 찍어 전송하면 되니 간단하죠.”

해외 매장 직원들의 보고는 자동 번역된다. 매장 직원들이 각자 모국어로 보고 사항을 앱에 적어 보내면 한글로 자동 번역돼 국내 본사의 관리 직원에게 전송된다. 그만큼 매장과 본사가 편하게 소통할 수 있다.

매달 목표량 할당도 앱으로 전달된다. “본사에서 해외 매장 직원들마다 각기 다른 주별, 월별 판매목표를 책정해요. 이를 정리한 엑셀파일을 앱에 올리면 자동으로 각 직원에게 목표치를 분배하죠.”

영수증 처리도 마찬가지다. 매장 직원들은 이메일을 사용하지 않는 직원이 많다. 그래서 경비 처리 영수증을 본사에 팩스로 보낸다. 그러나 이 앱에서는 영수증을 사진 찍으면 자동으로 본사 관리 직원에게 전송된다. “본사 관리 직원도 전세계에서 팩스로 날아오는 몇 천원짜리 영수증까지 처리하느라 골치아팠는데 이를 간단하게 해결하게 됐죠.”

이 모든 기능은 인공지능(AI)이 처리한다. “안면인식과 자동번역은 모두 AI가 처리해요. 11년 동안 해외 법인장을 하며 매장 직원 관리를 위해 풀지 못한 숙제를 AI가 모두 풀어줬죠.” 개발은 삼성전자와 SK인포섹 출신의 개발자들이 담당했다.

[저작권 한국일보]이준승 샤플앤컴퍼니 대표는 향후 현장에 파견하는 인력관리까지 직접 관리하는 회사로 키우는 것이 목표다. 이한호 기자

[저작권 한국일보]이준승 샤플앤컴퍼니 대표는 향후 현장에 파견하는 인력관리까지 직접 관리하는 회사로 키우는 것이 목표다. 이한호 기자


“삼성전자, 발뮤다, 쌤소나이트 등 여러 기업들이 고객”

편리한 샤플 앱은 유료로 전세계 기업들에게 제공된다. 샤플앤컴퍼니는 매달 일정액의 사용료를 기업들에게 받는다. 매장 직원 1인당 아시아 지역은 5달러, 미국과 유럽은 20달러다. “미국과 유럽은 까다로운 개인보호 규정 때문에 서버를 현지에 둬야 해서 비용이 많이 들어요..”

전세계 많은 기업들이 편리함과 비용 절감 효과를 알아보고 ‘샤플’ 앱을 사용하고 있다. 삼성전자의 해외법인들이 채택했고 일본 생활가전업체 발뮤다, 유명 가방업체 쌤소나이트 등을 비롯해 서울 강남역 근처 스테이크 전문점 ‘울프강’ 등 식당들도 도입했다. “지난해 멕시코, 콜롬비아, 페루, 브라질, 칠레 등에서도 기업들이 선택했고 올해 독일, 프랑스 기업들과도 계약했어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은 서비스 확장에 오히려 전화위복이 됐다. “지난 3월 이후 코로나19 때문에 해외 방문이 막혔어요. 그런데 매장을 갖고 있는 기업들이 코로나19 이후 효율적 관리를 위해 샤플 앱 문의를 많이 하면서 고객 기업이 급증했어요.”

재미있는 것은 이 대표의 명함이다. 명함에 영업팀장으로 돼 있다. “일부러 대표 명함을 사용하지 않아요. 삼성전자 해외 법인장이 대표님이라고 부르면서 일 시키고 싶겠어요? 대표 명함은 은행과 공무원 만날 때만 돌려요.”

이 대표의 올해 목표는 인도, 베트남, 인도네시아에 현지 법인을 만드는 것이다. “인구가 많으면서 매장 관리가 어려운 곳들이에요. 현지 언어로 활동할 영업 법인은 현지에 필요합니다. 코로나19가 가라앉으면 바로 해외 법인 설립에 착수해야죠.”

최연진 IT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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