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사 찾아 돈 포기하고 바다 건넌 KBL 최초 일본인 선수 나카무라

입력
2020.07.28 04:30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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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프로농구에 사상 처음으로 진출한 일본인 선수인 나카무라 다이치(왼쪽)가 27일 원주종합체육관에서 이상범 원주 DB 감독과 포즈를 취하고 있다. 원주=연합뉴스

한국 프로농구에 사상 처음으로 진출한 일본인 선수인 나카무라 다이치(왼쪽)가 27일 원주종합체육관에서 이상범 원주 DB 감독과 포즈를 취하고 있다. 원주=연합뉴스

“농구의 깊이를 알려준 위대한 분입니다.”

일본인 최초로 한국프로농구(KBL) 무대에 뛰어든 190㎝ 장신 가드 나카무라 다이치(23ㆍ원주 DB)는 27일 2주 자가격리를 마친 뒤 강원 원주 구단체육관에서 만난 이상범(51) DB 감독을 이렇게 표현했다. 이 감독이 “(나에 대해) 말 잘해라”고 넌지시 압박을 주긴 했어도 나카무라는 “부족한 저에게 여러가지를 가르쳐준 은사이자, 배울 게 많은 스승”이라고 마음을 담아 말했다.

나카무라와 이 감독은 국경을 뛰어넘는 각별한 사제지간이다. 둘의 인연은 나카무라의 후쿠오카 지역 오호리 고등학교 재학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4년 KGC인삼공사 감독직에서 물러난 이 감독은 이후 일본으로 건너가 지도자로 견문을 넓혔다. 일본프로농구 B리그 팀인 도시바에서 코치로 활동하던 중 지인의 부탁을 받아 오호리 고등학교 인스트럭터를 맡았다.

이 감독은 “나카무라를 처음 봤을 때 키는 큰데, 포지션이 애매했다”며 “3번(스몰포워드)도, 1번(포인트가드)도 아니고 2번(슈팅가드)으로 쓰기도 좀 그랬다”고 떠올렸다. 하지만 이 감독은 나카무라의 큰 키를 주목하며 1번으로 뛸 때 경쟁력이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당시 일본 농구는 키 큰 선수가 귀했고, 1번은 키 작은 선수들이 맡아야 한다는 고정관념도 있었다. 이 감독은 “워낙 운동 신경이 좋고, 스피드도 빨랐다”며 “1번으로 나카무라를 쓰면 ‘왜 팀을 망치냐’ 할 수도 있었는데 일본인들한테 고정관념을 깨트려주고 싶은 모험을 시도했다”고 설명했다.

DB에서 첫 훈련을 소화한 나카무라 다이치. 원주=연합뉴스

DB에서 첫 훈련을 소화한 나카무라 다이치. 원주=연합뉴스


결과적으로 나카무라의 1번 전향은 선수 개인에게도, 일본 농구에도 신의 한 수가 됐다. 나카무라는 고교 졸업 후 성인 국가대표팀에 뽑혀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을 뛰었고, 대학교 4학년 재학 중일 때인 2019년엔 동료들보다 1년 먼저 일본프로농구 B리그 교토 팀에 신인 연봉 최고액 460만엔(약 5,200만원)을 받고 입단했다. 입단 첫해 성적은 41경기 출전에 평균 23분30초를 뛰며 6.3점 2.7어시스트 2.1리바운드 1스틸 3점슛 성공률 39.4%를 기록했다.

나카무라의 가능성에 주목한 교토는 2년차 연봉으로 1,200만엔(1억3,610만원)을 제시했다. 하지만 나카무라는 돈보다 더 큰 꿈을 위해 한국행을 택했다. 2020~21시즌을 앞두고 KBL과 B리그가 아시아쿼터제 도입을 결정하면서 나카무라는 이 감독이 지휘하는 DB 입단을 추진했다. 하지만 DB는 기존 선수 계약으로 샐러리캡을 거의 채워둔 상태라 나카무라에게 제시할 수 있는 금액은 5,000만원뿐이었다. 연봉이 절반 이상 깎이는데도 그는 크게 개의치 않았다.

나카무라는 “코로나19 여파로 B리그의 승강 시스템이 없어지면서 동기부여가 어렵다는 판단을 했다”며 “교토에서 1년을 헛되이 보내는 것보다 새로 도전할 수 있는 리그를 택했다”고 말했다. 이어 “아직 일본 선수 중 어느 누구도 도전해본 적 없는 한국 농구 자체에 매력을 느꼈다”며 “젊을 때 다양한 농구를 경험하는 게 도움이 될 것 같았고, 내가 열심히 하면 한일 농구의 가교 역할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고 덧붙였다. 제자의 대담한 선택에 이 감독은 “예전부터 한국 농구에 오고 싶다고 했는데, 이렇게 빨리 만날 줄 몰랐다. 선수 본인도, 선수 부모님도 도전을 원했다”며 “돈하고 상관 없이 온다고 하니까 그저 고마운 마음뿐이었다”고 흐뭇해했다.

이 감독의 눈에 나카무라는 아직 신인이다. 한국 농구에서 2대2 플레이를 익혀 올해보다 내년, 내년보다 내후년 가능성에 초점을 맞췄다. 이 감독은 “나카무라에게 군대 왔다고 생각을 하라고 했다”며 웃은 뒤 “올해는 식스맨 역할을 맡아 적응기를 거칠 것이다. 3년을 보고 있는데, 그 이후 돈 벌러 (다른 리그로) 가겠다고 하면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나카무라 역시 이 감독의 계획에 고개를 끄덕이며 “2대2 플레이가 부족한 만큼 많이 배워 장점으로 살리고 싶다”고 동의했다.

나카무라는 또한 “포인트가드로 일본에 없는 스타일의 선수다. 장점인 키를 살려 한국에서 잘하고 싶다”며 “허훈(KT) 김선형 최준용(이상 SK)과 맞대결이 기대된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비빔밥과 삼겹살, 냉면을 좋아한다”고 했고, 일본 만화 '슬램덩크'에서 가장 좋아하는 선수로 서태웅을 꼽았다.

원주 김지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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