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과(功過)를 함께 보는 공동체의 지혜

입력
2020.07.26 16:00
26면

공인의 역사적 평가는 공동체의 자산
획일적 이분법 기준은 공적가치 훼손
공·과를 아우르는 성숙된 포용력 긴요

고 백선엽 장군(예비역 육군대장) 안장식. 고영권기자

고 백선엽 장군(예비역 육군대장) 안장식. 고영권기자


북유럽 핀란드의 칼 구스타프 매너하임 장군은 1939년 열악한 군사력으로 소련의 60만 대군을 물리쳐 핀란드의 독립을 유지하는데 혁혁한 공을 세워, 오늘날까지도 핀란드의 국부로 추앙되고 있다. 아이로니컬하게도 러시아가 핀란드를 지배하던 시기에 러시아 장군으로 승승장구하던 매너하임 장군이었지만, 핀란드 영토 보존을 위해서는 자신이 충성했던 러시아에 총부리를 겨누어야 하는 운명이었다. 핀란드 사람 누구도 핀란드의 종주국이었던 러시아 장군시절의 러시아에 대한 헌신과 충성을 이유로 매너하임 장군을 폄하하지 않는다고 한다. 만일 우리나라에서 이런 유형의 인물이 있었다면 어떤 양상이 전개되었을까?

누구를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은 개인의 '선호 영역'이기에 객관적 기준을 강요할 수 없는 문제다. 다만 공적 영역에서 국민적 관심의 대상이 되는 인물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개인적 호(好)·불호(不好)의 차원을 떠나 객관적 기준에 의거하여 냉정히 공·과를 균형 있게 바라보는 것이 공동체의 지속적인 가치 축적에 부합한다고 볼 수 있다.

2주 전 대전 현충원에 안장된 백선엽 장군은 물론이고 이승만 대통령, 박정희 대통령 등에 대한 역사적 평가를 둘러싸고 첨예한 대립과 갈등이 가라앉지 않는 우리의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어떤 인간을 막론하고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이 공존할 수밖에 없지만 공인의 경우 사회화 과정의 배경이나 이룩한 성과의 긍정적 측면과 부정적 측면이 국민에게 공유됨으로써, 찬사와 비판이 교차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문제는 공·과를 함께 보면서 그 인물이 이루어 낸 역사적 성과를 엄격히 수용하는 큰 흐름의 평가가 주종을 이루어야 한다는 점이다. 분명 해당 인물의 부정적 측면을 간과해서는 안 되지만 어디까지나 공동체의 가치 창출과 관련된 역사적 성과의 틀 속에서 자연인이 가지고 있는 한계를 판단하는 균형된 접근이 중심축을 이루어야 한다.

이러한 접근과정에서 획일화된 이분법적 평가로 경도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왜냐하면 긍정적 요소에 부정적 요소가 혼재되어 있는 상황에서 어느 한 측면을 일반화하여 총괄적 평가로 귀착시키는 것은 공적 인물에 대한 역사적 의미를 폄하하거나 과장할 수 있는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백선엽 장군이 일제강점기 만주군에 복무했던 어두운 청년 시절이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지만 이러한 사실이 낙동강 전선에서 북한군의 진격을 막는 등 풍전등화의 위기를 극복하는데 혼신의 노력을 기울였다는 '공적 가치'를 훼손할 수는 없다. 이승만, 박정희 대통령의 경우 장기집권에의 집착과 민주주의의 후퇴라는 부정적 요소를 비판해야 할지라도 각각 '대한민국의 건국'과 '산업화를 통한 경제발전의 초석을 마련했다'는 부인할 수 없는 국가적 성취를 수용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개인의 정치적 성향과 이념적 토대에 따라 역사적 인물에 대한 비판의 문은 열려 있더라도 큰 흐름 속에서 과오를 평가하고 역설적으로 이를 변화의 동력으로 삼는 전통이 뿌리내린다면 협력과 협치의 시대가 빨리 도래할 것이라고 믿는다.

이러한 취지에서 민주주의 쟁취를 위해 청년 시절 많은 희생을 감수했던 세대마저 오늘의 대한민국에 이르게 한 인물들의 공·과를 함께 아우르는 '성숙된 포용력'이 확산되기를 기대해 본다.

주변 초강대국 틈바구니에서 항시 치열하게 국가이익을 방어·확대해야 하는 우리나라에서, 주요 인물에 대한 평가를 자신의 정치적 선호와 이념적 지향에 따라 친일·반일, 친미·반미, 친중·반중의 단순화된 이분법 구도로 채색하는 것 역시 결코 우리의 국가이익 추구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오연천 울산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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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연천울산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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