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명숙 사건' 증거조작이 없었다면

입력
2020.07.20 04:30
26면

[저작권 한국일보] 한명숙 전 국무총리가 2015년 8월 24일 수감생활을 하기 위해 서울구치소에 들어가기 직전 지지자들에게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지지자들은 백합을 들고 눈물을 흘리며 한 전 총리의 수감 전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홍인기 기자

[저작권 한국일보] 한명숙 전 국무총리가 2015년 8월 24일 수감생활을 하기 위해 서울구치소에 들어가기 직전 지지자들에게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지지자들은 백합을 들고 눈물을 흘리며 한 전 총리의 수감 전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홍인기 기자


2010년 터진 일본 오사카지검 특수부의 증거조작 사건의 파장은 예상보다 컸다. 수사검사가 기소 내용 들어맞게 압수한 증거물의 날짜를 고친 사실이 밝혀지자, 성과를 내려고 물불 안 가리는 특수수사의 폐해가 여실히 드러났다는 질타가 쏟아졌다. 거듭된 사과로도 성난 여론이 진정되지 않자, 현직 검찰총장을 비롯한 수뇌부가 무더기로 옷을 벗었다. 일본 검찰 역사상 최악의 사건으로 기록됐음은 물론이다.

혹자는 날짜 하나 고쳤다고 너무 요란했던 거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증거는 전세계 검찰의 존재 이유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증거로 진실을 말한다는 검찰이 그 증거를 조작했다면, 기관의 존재 자체를 부정한 셈이다. 그만큼 ‘증거조작’은 단순히 네 글자 단어로 정의할 수 있는 가벼운 말이 아니다. 영화 ‘부당거래’에서 가짜 범인이라도 만들어내라는 비리 경찰의 요구에 ‘이건 차원이 다른 문제’라고 답하는 조직폭력배의 대답이 허세만은 아닌 것이다.

대한민국 검찰이 증거조작을 했다고 한번 상상해 보라. 가뜩이나 공공의 적이 된 상황이라, 아예 검찰청 문을 닫아야 할지도 모른다. 이처럼 증거조작과 이후 파장을 생각하면, 그 말의 무게는 태산 같고 그 영향은 지축을 흔들고도 남는다. 함부로 꺼내서도 함부로 단정해서도 안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 무시무시한 ‘증거조작’이란 말을 추미애 법무부장관이 꺼냈다. 그것도 아주 단정적으로 말이다. 추 장관은 6월 27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검사는 기획수사를 하고 수감 중인 자를 수십수백회 불러내 회유 협박하고 증거를 조작하고, 이를 언론에 알려 피의사실을 공표함으로써 재판 받기도 전에 이미 유죄를 만들어버리는 이제까지의 관행과 과감히 결별해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한명숙 전 국무총리의 과거 정치자금법 위반 사건과 관련한 ‘위증교사’ 의혹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이다.

한명숙 수사의 착수 경위를 두고 그간 온갖 억측과 정치적 해석이 난무했던 터라, 검찰이 곱씹어볼 내용이 없지 않다. 불순한 목적으로 표적수사를 했다면 개선할 기회로 삼아야 한다. 또 수사과정과 수사방식이 거칠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았기에, 회유 협박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었다면 검찰은 반성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

그러나 추 장관의 단언처럼 검찰이 한명숙 전 총리를 잡아들이고 유죄를 받아내기 위해 증거를 조작했다면, 이건 보통 문제가 아니다. 영화 속 대사처럼, 이건 차원이 다른 문제다. 거짓을 사실로 포장해 법원을 기만하고 국민을 속인 만큼, 관행을 개선하고 반성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검찰의 존재 이유를 부정한 일이기에, 윤석열 검찰총장은 한명숙 수사에 관여하지 않았더라도 조직의 수장으로서 무한책임을 져야 한다.

그런데 추 장관의 단언과 달리, 검찰이 증거를 조작했다는 증거가 나오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추 장관이 그 말의 무게를 알고 언급했는지 모르겠지만, 누구나 볼 수 있는 온라인 공간에서 증거조작 운운한 것은 당시 수사팀에 대한 심각한 명예훼손이 될 수 있다. 현직 법무부장관이 내뱉은 말이라 그 의미도 가볍지 않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넘어갈 사건이 아니라는 것이다.

대검 감찰부와 서울중앙지검 인권감독관실에선 지금 죄수들과 당시 수사팀을 조사하고 있다. 증거조작은 과연 있었을까. 결과에 따라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한다. 이건 차원이 다른 문제니까.


강철원 기획취재부장 stro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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