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민ㆍ 담대한 도둑의 한밤 카레이싱

입력
2020.07.16 04:30
수정
2020.07.16 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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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셰 도둑(7.16)

2007년 모델 포르셰 911 '타르가 4' 유튜브 화면 캡처

2007년 모델 포르셰 911 '타르가 4' 유튜브 화면 캡처

2007년 7월 16일 오후, 말레이시아 페낭주 주루(Juru)의 포르셰(Porsche) 매장에 말쑥한 정장 차림의 남자가 들어섰다. 그는 포르셰 ‘911 시리즈’ 최신 모델 ‘타르가 4’의 시승을 원했고, 직원은 예의를 다해 열쇠를 건넸다.

남자는 시동을 걸자마자 350마력의 힘으로 매장 유리문을 박차고 나가선 '정지상태에서 4.4초 만에 시속 100km에 도달'한다는 순발력과 '최고 속도 300km에 육박'한다는 주행 성능을 한껏 살려, 직원들이 정신 차릴 새도 없이 시야에서 사라졌다.

단 하나, 남자가 미처 챙기지 못한 변수가 있었다. 시가 28만달러짜리 차의 연료탱크가 거의 비어 있었다는 점이었다. 차는 30여분 뒤 매장에서 불과 2km 떨어진 곳에서 발견됐다. 도난당한 것은 포르셰 열쇠 뿐이었다. 경찰은 범인 지문 채취 등을 위해 차를 경찰서로 견인했다.

두 번째 범행은 약 9시간 뒤인 밤 10시45분에 일어났다. 주차장 철조망을 끊고 들어온 범인이 훔친 열쇠로 다시 포르셰를 몰고 경찰서 정문으로 빠져나간 거였다. 연료는 범인이 따로 챙겨 와 주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어쨌건 범인은 가공할 속도로 경찰서를 벗어난 뒤, 수많은 경찰 차량의 추적과 포위망을 따돌리며 약 한 시간 동안 한바탕 심야의 술래잡기를 벌였고, 경찰서에서 약 15km 남짓 떨어진 곳에 차를 버려둔 채 유유히 사라졌다.

경찰은 일대 통행을 차단하고 대대적인 검문검색을 벌였고, 이틀 뒤 기자회견에서 용의자 2명의 신원을 확인했다고 밝혔지만 범인을 찾지도 잡지도 못했다. 범인뿐 아니라 차도 연기처럼 사라졌다고 보도한, ‘이야기’를 좋아하는 매체도 있었다.

2017년 영국 자동차 정보 사이트 ‘MyCarCheck’는 2016년 도난 경보가 가장 많이 울린 차 모델 중 압도적 1위가 포르셰 911 카레라 4S였다고 밝혔다. 팔아넘기기 부담스러울 만큼 귀하지 않으면서, ‘보상’도 짭짤하기 때문이란 게 그 사이트의 분석이었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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