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개원 연설… 역대 대통령들은 무슨 말 했나

입력
2020.07.16 08:00
수정
2020.07.16 13:27

1987년 개헌 이후 역대 대통령 국회 개원 연설 보니
13대 국회 임기 시작 날 연설한 노태우 전 대통령
16대 개원 연설에서 여야 모두에게 박수 받은 DJ

노무현 전 대통령(왼쪽부터), 이명박 전 대통령, 박근혜 전 대통령이 국회 개원 연설을 하는 모습. 한국일보 자료사진

노무현 전 대통령(왼쪽부터), 이명박 전 대통령, 박근혜 전 대통령이 국회 개원 연설을 하는 모습. 한국일보 자료사진


제21대 국회가 1987년 개헌 이후 가장 늦게 개원식을 여는 기록을 세우고 말았습니다. 7월 임시국회부터 본회의 등 의사 일정 조율은 물론 개원식을 생략할지 말지 식 자체를 두고도 여야가 어렵게 합의했는데요. 역대 '최장 지각' 개원을 한 21대 국회는 앞서 2008년 7월 11일 문을 연 18대 국회의 기록(42일 만에 개원)을 깨게 됐습니다.

그런데 앞서 역대 대통령들의 개원 연설을 보면요. 사연없는 개원 연설은 없었습니다.

차이점은 그때마다 국내외 여건이나 여의도 분위기가 달랐다는 점이지만 공통점은 대통령이 '협치'와 '초당적 협력'을 당부했다는 점인데요. 대통령마다, 국회 구성마다, 당시 상황마다 달랐던 역대 대통령들의 국회 연설을 과거 한국일보 기사 등을 바탕으로 정리해봤습니다.


노태우, 1988년 13대 국회 개원 연설서 '민주정치' 강조

노태우(盧泰愚) 대통령이 1988년 5월 30일 13대 국회 개원축하 리셉션에 참석, 김대중 평민당·김영삼 민주당·김종필 공화당 등 3김(金) 총재와 윤길중 민정당 대표위원, 김재형 국회의장과 함께 축배를 들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노태우(盧泰愚) 대통령이 1988년 5월 30일 13대 국회 개원축하 리셉션에 참석, 김대중 평민당·김영삼 민주당·김종필 공화당 등 3김(金) 총재와 윤길중 민정당 대표위원, 김재형 국회의장과 함께 축배를 들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국회 첫 개원 연설은 1987년 개헌 직후 개원이었던 이듬해인 1988년 5월 30일 노태우 전 대통령이 했습니다. 이날은 임기 시작 당일이었는데요. 당시 노 전 대통령은 연설에서 '새로운 정치', '창조의 정치' 그리고 무엇보다 '민주 정치'를 강조했습니다.

12대 국회가 4년 임기를 못 채우고 새로운 시작을 한 만큼 13대 국회는 그야말로 "흥분과 설렘이 넘실거리는 축제 분위기"였다고 전해지는데요. 노 전 대통령은 "13대 국회가 나라의 발전을 이룩하는 진정한 대의 민주정치의 전당이 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며 "정부 역시 국민의 여망과 시대적 소망을 구현함에 있어 국회와 최선의 협력을 다해 나갈 것"이라고 축하의 말을 전했습니다. 특히 "민주정치는 그것이 어떠한 형태이든 폭력을 부정하는 전제 위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고요.

현안에 대해서는 "북한은 이제 우리와 대결하여 서로 헐뜯는 상대가 아니라 동포애적 차원에서 함께 번영을 누려야 할 민족공동체라는 입장에서 온 국민의 슬기와 힘을 모아 통일정책을 추진해 나갈 때"라거나 "국토가 동강 난 속에서 힘겹게 살아온 우리에게 지난 시대의 잘못된 정치로 지역 간 골이 이렇게 깊게 팬 이 뼈저린 현실은 우리 정치인 모두에게 참으로 고통스러운 짐이 아닐 수 없다"는 말을 남겼습니다.

노 전 대통령은 1992년도 14대 국회 개원 때에도 연설했는데요. 이전 13대 국회와 달리 14대 국회는 당시 지방자치단체장 선거 문제 등 첨예한 대립과 갈등 탓에 험난하게 그 문을 열었습니다. 개원식에서도 일부 야당 의원들은 박수를 치지 않거나 아예 일어서지도 않고 노 전 대통령의 입장 장면을 외면하는 모습을 보여 냉각 기류를 연출했고요.

이런 14대 국회 덕분에 국회법이 구체화하는 성과도 있었지요. 14대 국회 원 구성에 사상 최장 기간이 소요되면서 이를 구체적으로 정하기로 한 건데요. 전반기 국회의장단은 임기 개시 후 7일 안에 선출하도록 하고, 이로부터 이틀 내 상임위원장을 선출하도록 정한 겁니다. 하지만 제대로 지켜진 적이 없답니다. 이번 21대 국회는 물론 15대 국회 이후 단 한 차례도 시한 내에 원 구성을 마친 적이 없는데요. 국회에 대한 신뢰를 스스로 깎아 먹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지요. 그중 18대 국회는 임기 시작일로부터는 무려 89일, 개원일로부터는 47일이 걸렸답니다.


개원 연설에 관심 많았던 YS의 15대 국회 개원 연설

김영삼 전 대통령. 한국일보 자료사진

김영삼 전 대통령. 한국일보 자료사진


김영삼 전 대통령은 15대 국회 임기 개시 후 40일 만인 1996년 7월 8일 개원 연설을 할 수 있었습니다. 김 전 대통령은 개원 연설 이전에도 이미 두 차례 국회 연설을 했지만, 임기 내 개원한 15대 국회에서 연설한다는 것에 큰 의미를 두었다고 해요.

당시 김 전 대통령의 속마음은 '이제 국회도 달라져야 한다'는 소망을 피력하고 싶었다는 것이었다고 청와대 관계자들은 전했는데요. 연설에서도 정치와 경제, 민생, 평화 통일 등 크게 4가지 분야를 언급했지만, "정치가 개혁되지 않고는 아무것도 안된다"는 평소 소신을 가장 강조했습니다.

김 전 대통령은 국회에 '선진경제의 산실', '민생의 전당', '평화통일의 전당'이 되어 줄 것을 주문했고요. 또 국정운영에 있어서 국회의 협조를 당부했다고 해요.

김 전 대통령의 개원 연설 당시 '의전 실수' 해프닝을 빼놓을 수 없지요. 당시 김수한 국회의장 개원사에 이어 김 전 대통령의 개원 연설이 바로 이어져야 했지만, 약 8분가량의 공백이 생긴 겁니다. 대통령은 당시 의장 접견실에 머물고 있었는데요. 국회사무처는 "의장 연설이 예정보다 일찍 끝난 것이고 대통령은 예정 시간에 맞게 입장했다"고 주장했지만, 국회의원들이 우왕좌왕 잠시 혼란에 빠졌던 건 사실이었답니다.


"모양새 좋고 법정 개원일도 지킨" DJ의 16대 국회 개원 연설

김대중 전 대통령이 2000년 6월 5일 16대 국회 개원식 연설을 위해 본회의장에 입장하면서 이만섭 국회의장과 악수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김대중 전 대통령이 2000년 6월 5일 16대 국회 개원식 연설을 위해 본회의장에 입장하면서 이만섭 국회의장과 악수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김대중 전 대통령의 국회 개원 연설 당시 분위기는 참 좋았다고 전해집니다. 김 전 대통령은 2000년 16대 국회 임기 개시 후 단 7일 만에 개원 연설을 했는데요. 당시 기록에 따르면 "김대중 대통령의 개원 연설은 야당의 참여 아래 모양새 좋게 치러졌고 모처럼 법정 개원일도 지켜졌다"고 해요.

김 전 대통령이 입장하는 순간 여야 의원 모두는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로 김 전 대통령을 환영했고요. 20여 분 동안 이어진 김 전 대통령의 연설 중간 의원들은 18차례나 박수로 화답했다고 해요. 그중 가장 큰 박수가 나온 부분은 "야당을 국정의 파트너로 존중해서 중요 국사를 대화 속에 추진하도록 성의와 노력을 다하겠다"고 한 대목이었다고 하는데요.

김 전 대통령의 연설은 남북 정상회담에 대한 국회의 협조를 당부하는 것과 국정운영에서 야당과의 파트너십을 강조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습니다. 김 전 대통령은 "과거(15대 국회 때)의 전철을 되풀이하지 말자"거나 "여러분과 제가 맡은 소임을 다하자" 는 다짐 부분에서 '맹세' 라는 표현까지 쓰면서 협치를 강조했어요.


자신을 탄핵한 국회를 찾은 노무현의 17대 국회 개원 연설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4년 6월 7일 국회에서 제17대 국회 개원 축하연설을 마친뒤 의장실에서 신기남 (왼쪽두번째) 당시 열린우리당 의장,박근혜 (오른쪽두번째) 당시 한나라당 대표, 김혜경(오른쪽) 당시 민노당 대표와 차례로 악수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4년 6월 7일 국회에서 제17대 국회 개원 축하연설을 마친뒤 의장실에서 신기남 (왼쪽두번째) 당시 열린우리당 의장,박근혜 (오른쪽두번째) 당시 한나라당 대표, 김혜경(오른쪽) 당시 민노당 대표와 차례로 악수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4년 6월 7일 17대 국회 개원 연설을 할 때는 이모저모 눈여겨볼 점들이 있었습니다. 먼저 당시 노 전 대통령의 국회 본회의장 방문이 있기 불과 87일 전인 3월 12일에는 국회에서 노 전 대통령을 향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상태였고요.

노 전 대통령도 이런 분위기를 고려해 특유의 즉흥 발언 없이 준비된 원고만 차분히 읽어 내려갔다고 해요. 대통령이 입·퇴장 때도 이해봉, 정형근 등 일부 한나라당 의원 등은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않았고요. 연설 도중 여당인 열린우리당 의원들은 13차례 박수를 보냈지만, 야당 의원들은 크게 비웃는 모습을 보이기까지 했습니다.

특히 노 전 대통령이 "우리 헌정사에서 4·19 혁명 이후 5대 국회, 6월 항쟁 뒤의 13대 국회를 국민의 국회라 할 수 있다"라고 하거나 "17대 총선에서는 봉기나 헌정 중단 없이 민의에 의한 국회를 건설했다"고 말했을 때 한나라당 의석이 다소 술렁였다고 해요.


"국민이 피격당했는데" 강행한 MB의 18대 국회 개원 연설

2012년 7월 2일 제19대 국회개원 연설을 마친 이명박 대통령이 국회의장 접견실에서 강창희 국회의장 등과 환담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2012년 7월 2일 제19대 국회개원 연설을 마친 이명박 대통령이 국회의장 접견실에서 강창희 국회의장 등과 환담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이명박 전 대통령은 임기 중 18대와 19대 국회 개원 연설을 했는데요. 먼저 18대 개원 연설 때는 연설 바로 직전 북한의 남측 관광객 총기 피살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2008년 7월 11일 당시 이 전 대통령은 이날 오전 북한군이 금강산을 관광하던 남측 관광객을 총기로 사살한 사실을 인지한 상태였다고 하는데요. 그런데도 이 전 대통령은 연설에서 '남북 당국 간 전면적 대화'를 제기해 그 적절성에 의문을 낳았어요. 청와대 관계자는 "금강산 사건과 대통령의 개원 연설은 공교롭게도 미묘한 시점에 겹쳤을 뿐 별개의 사안"이라며 선을 그었지만, 국민이 숨졌는데도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최우선으로 해야 할 국가원수로서 적절한 발언이었느냐는 지적이 나온 거죠.

19대 국회 개원 연설 때도 분위기가 좋은 편은 아니었습니다. 20여 분 동안 이어진 연설에서 의원들로부터 단 한 차례도 박수를 받지 못한 건데요. 불과 4년 전 28차례나 박수 세례를 받은 것과 비교하면 냉랭한 분위기였다고 볼 수 있었지요.


무난했던 박근혜 전 대통령의 개원 연설

박근혜 대통령이 2016년 7월 1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에서 20대 국회 개원 연설을 마치고 정세균 국회의장과 악수를 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박근혜 대통령이 2016년 7월 1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에서 20대 국회 개원 연설을 마치고 정세균 국회의장과 악수를 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박근혜 전 대통령은 국회 개원 연설에서 협치를 강조했습니다. 박 전 대통령은 연설에서 "우리 국민이 20대 국회에 바라는 것은 화합과 협치"라며 "국회와 적극적인 소통과 협력을 통해 국민에게 희망을 드리는 국정 운영을 펼쳐나갈 것"이라고 강조했고요. 여야 지도부와 만난 자리에서 박 전 대통령은 "여러분께서 앞으로 많이 도와주시기를 부탁드린다"며 몸을 낮추는 모습을 보였고요. 국회를 떠날 때도 정 의장의 두 손을 잡고 목례로 인사했다고 해요.

당시 대부분 전문가들의 예상과 달리 20대 총선에서 야당인 더불어민주당(123석)이 여당인 새누리당(122석)을 제치고 1당을 차지하는 이변이 일어났고, 국회의장도 민주당 출신인 정세균 의원이 맡았으니 박 전 대통령으로서는 민주당과 협치를 추진하려는 모습을 보일 필요가 있는거죠.

특히 박 전 대통령은 최단 기간에 개원한 20대 국회를 향해 "헌정사에 좋은 선례로 남을 것으로 생각한다"는 덕담을 남기기도 했는데요. 덕담과 달리 역대 최악의 '일 안 하는 국회'가 됐다는 사실은 씁쓸하지만요.


역대 최장 지각 개원 21대 국회… 9번 고친 문재인 대통령 연설문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018년 11월 1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2019년도 예산안에 대한 시정연설을 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018년 11월 1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2019년도 예산안에 대한 시정연설을 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문재인 대통령은 16일 21대 국회 개원식에서 개원 연설을 하게 됐습니다. 앞서 청와대는 지난달 5일 발표 예정으로 작성된 연설문을 크고 작게 8번 이상 고쳤다고 합니다.

이번 문 대통령의 국회 개원 연설은 국회 연설로 따지면 5번째입니다. 문 대통령은 취임 33일 만인 2017년 6월 12일 시정 연설을 했고, 넉 달 뒤인 같은 해 11월 1일 국회 본회의장에 섰습니다. 이는 1987년 개헌 이후 최단 기간 최다 시정 연설을 한 기록이었어요.

이듬해에는 11월 예산안 시정 연설을 통해 국회의 협조를 구했는데요. 특히 당시 예산안이 전년도보다 9.7% 늘어난 470조5,000억원으로 2009년 이후 가장 큰 폭의 증가였다는 점에서 문 대통령은 그 이유를 설명하는 데 초점을 맞췄습니다.

오는 21대 국회 개원 연설 이전 문 대통령의 국회 연설은 지난해 10월 22일 예산안 시정 연설이었는데요. 이때도 전년보다 '43조 9,000억원이나 늘어난 슈퍼예산' 이었지요. 이에 문 대통령은 "내년도 확장 예산은 선택이 아닌 필수"라며 재정을 대외충격의 파고를 막는 '방파제'와 경제의 활력을 살리는 '마중물'에 비유했습니다.

문 대통령은 이번 개원 연설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국난 극복 의지와 추경 통과 상황을 강조할 것으로 전망되는데요. 또 '한국판 뉴딜'을 통한 경제 위기 극복 방안을 자세히 밝힐 것으로 보입니다. 원래 문 대통령은 개원 날 그린 뉴딜 현장을 방문할 예정이었거든요. 하지만 청와대에 따르면 문 대통령은 정부 핵심 과제인 한국판 뉴딜의 성공을 위해 국회 협조가 중요하다고 보고 일정을 바꿨다고 해요.

문 대통령은 무엇보다 앞서 20대 국회에서 아쉬웠던 '협치'를 강조할 것으로 보입니다. 한국판 뉴딜 등 국가 프로젝트 성공을 위해선 국회의 협조가 필수니까요. 강민석 청와대 대변인은 1일 브리핑에서 문 대통령이 미리 작성한 연설문에 대해 "코로나19로 인한 국난을 극복하겠다는 의지와 한국판 뉴딜 등의 경제 문제가 주요한 주제였다. 문 대통령은 국난 극복을 위한 경제 행보, 국민 삶을 보듬는 데 주력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실제 문 대통령의 메시지는 무엇일지, 여야 국회의원들의 반응은 어떨지 16일 오후 2시 국회 개원식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정은 기자
박서영 데이터분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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