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동식물의 보고 '카다몸 산맥'

입력
2020.07.18 11:00
13면

편집자주

국립생물자원관 전문가들이 동ㆍ식물, 생물 자원에 관한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3주에 한 번씩 토요일 <한국일보> 에 연재합니다.

"한강의 기적이 메콩강의 기적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작년 11월 제1차 한ㆍ메콩 정상회의가 개최되었던 것을 기억하실 겁니다. 메콩강 지역의 국가들이 우리에게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 회담이었는데요. 그 이유 중의 하나는 메콩강에 사는 많은 생물의 가치가 그만큼 높다는 것입니다. 생물다양성협약(CBD)의 채택에 따라 생물자원은 인류 공동자산이 아닌 생물자원을 가지고 있는 국가의 소유로 인정되기 시작했고, 생물자원을 선점하기 위한 국가 간 전쟁이 치열해지고 있습니다. 메콩강이 흐르는 나라 중 하나인 캄보디아의 생물자원 확보를 위한 생물다양성 연구는 한국, 일본, 프랑스, 덴마크 등 여러 국가에 의해 활발히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 국가들이 캄보디아에서 가장 연구력을 집중하고 있는 곳은 바로 인도차이나반도의 카다몸 산맥입니다.

인도차이나반도에 남아 있는 빙하기의 흔적

이곳은 인도차이나반도의 유일한 미탐사 지역이며 가장 넓은 상록열대수림이 남아 있는 곳입니다. 캄보디아는 주로 산악지대에 숲이 남아 있는 베트남이나 태국과 달리 국토의 약 59%가 저지대 숲으로 남아 있는 나라입니다. 캄보디아의 대표적인 삼림 지역은 캄보디아 남서부에 약 300㎞의 길이로 뻗어있는 카다몸 산맥에 분포합니다. 이 산맥은 캄보디아 남서부 5개주의 경계이고 최고봉인 삼코스산(1,771m)을 중심으로 서쪽 산줄기는 태국의 남동쪽 국경지대로 뻗어나가며 동남쪽 산줄기는 키리롬 고원을 지나 엘리펀트 산맥으로 이어집니다. 카다몸 산맥은 캄보디아 전체 면적의 약 20%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경관이 빼어나고 동ㆍ식물이 풍부해 4개 국립공원과 3개 야생생물 보호구역으로 지정돼있는 등 캄보디아 생물다양성을 대표하는 지역 중 한 곳입니다.

캄보디아 남서부의 카다몸산맥, 엘리펀트산맥(보콜국립공원)과 키리롬고원은 카다몸 산맥의 주요 지역이다. 국립생물자원관 제공

캄보디아 남서부의 카다몸산맥, 엘리펀트산맥(보콜국립공원)과 키리롬고원은 카다몸 산맥의 주요 지역이다. 국립생물자원관 제공

카다몸 산맥은 인도차이나반도에서 식물지리학적으로 가장 독특한 지역 중 한 곳으로 여겨지는데, 그 이유는 매우 다른 식물종들로 구성된 두 수림의 경계이기 때문입니다. 카다몸 산맥을 경계로 북쪽과 동쪽에는 인도차이나를 대표하는 중부 인도차이나 건조수림이라는 독특한 숲이 분포합니다. 이 수림은 낙엽성 디프테로칼푸스속 나무들과 쇼레아속 나무들이 많으며 비가 적게 내리는 건기에는 잎을 떨구는 숲으로 캄보디아, 라오스, 태국의 메콩강 유역과 태국 중북부에 광범위하게 분포합니다. 그러나 카다몸 산맥의 남쪽과 남서쪽에는 이와는 전혀 다른 숲이 나타나는데 바로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 등지에서 볼 수 있는 말레이시안 열대우림입니다.

카다몸 산맥의 말레이시안 열대우림은 캄보디아가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와 육지로 연결되어 있던 빙하기 때 이 지역에 널리 분포한 수림의 흔적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카다몸 산맥은 인도차이나반도의 대표적 숲인 중부 인도차이나 건조수림과 말레이시안 열대우림의 경계이기 때문에 캄보디아에서 가장 다양한 식물들을 볼 수 있는 곳입니다. 더욱이 이 지역의 말레이시안 열대우림은 육지 속의 섬처럼 산맥과 바다에 의해 고립돼 있다 보니 과거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에 함께 분포했던 공통 조상종으로부터 새로운 종들이 분화해 생물다양성을 더 풍부하게 해주고 있습니다.

카다몸산맥의 중앙 카다몸 생물보호구역의 말레이시안 열대우림(위)과 메콩강 유역의 중앙 인도차이나 건조수림(아래). 국립생물자원관 제공

카다몸산맥의 중앙 카다몸 생물보호구역의 말레이시안 열대우림(위)과 메콩강 유역의 중앙 인도차이나 건조수림(아래). 국립생물자원관 제공


보콜 국립공원의 난쟁이숲과 다양한 난초들

카다몸 산맥은 300㎞ 길이의 매우 큰 산맥이며 크게 △카다몸 산맥 △키리롬 고원 △엘리펀트 산맥으로 나뉩니다. 이들 지역 중 식물다양성 연구가 가장 활발히 이루어진 지역은 엘리펀트 산맥으로 1993년 산맥 전체가 보콜 국립공원으로 지정됐습니다. 캄보디아에서 가장 유명한 국립공원이죠.

보콜 국립공원의 가장 독특한 모습은 사암으로 이루어진 남쪽 고원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바로 전 세계적으로 매우 드물게 나타나는 난쟁이숲입니다. 이 독특한 숲은 대부분의 나무가 5~10m를 넘지 않으며 1~2m 높이의 극단적으로 작은 나무들이 많이 자랍니다. 이 지역이 사암으로 이루어져 있어 영양분이 부족하고 늘 강한 바람에 노출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우기가 한창일 때(7~8월)에는 5,000㎜가 넘는 강우량에 의해 고원 전체가 습지로 변하고 뿌리호흡에 장애가 생기는 반면 건기가 한창일 때(1~2월)에는 평균 50㎜의 강우량으로 고원의 식물들이 극심한 가뭄에 시달립니다. 그러나 이러한 극심한 계절적 환경변화에도 이 독특한 난쟁이숲은 희귀 겉씨식물인 나한송과 나무인 다크리디움 엘라툼, 고산성 참나무과 나무인 리토칼푸스 엘레판툼, 리토칼푸스 레이오필루스가 주를 이루는 매우 잘 보존된 원시림입니다.

보콜국립공원의 난쟁이숲은 1~2m의 작은 나무들로 이루어져 있다. 국립생물자원관 제공

보콜국립공원의 난쟁이숲은 1~2m의 작은 나무들로 이루어져 있다. 국립생물자원관 제공

보콜 국립공원의 남쪽 고원은 태국만의 좁은 해안 평원에서 해발 1,080m까지 매우 가파르게 상승합니다. 이 공원의 남쪽 고원과 남서쪽 경사면은 바다와 가깝기 때문에 바다로부터의 안개와 구름이 항상 습기를 공급해줘 이들 지역에 비정상적으로 습한 조건을 만들어냅니다. 이러한 환경적 요인으로 보콜 국립공원의 해발 500m 이상 경사면에서부터는 전형적인 말레이시안 열대우림이 나타납니다. 수십 종의 덩굴성 나무들이 키가 큰 나무들을 감고 자라며 착생식물, 특히 난초과 식물이 매우 다양합니다. 보콜 국립공원에는 약 120여종의 난초가 자라고 있으며 나무에 붙어 자라는 불보파일럼 로비, 바위 겉에 붙어 자라는 에리아 라시오페탈라, 그늘진 난쟁이숲 아래에는 파피오페딜룸 아플레토니아눔, 축축한 습지에 자라는 디포디움 팔루도섬 등 나무 위에서 바위 겉까지 그리고 햇볕이 내리쬐는 노출된 땅에서부터 그늘진 땅까지 조금만 관심을 기울여 주변을 둘러보면 약 40여 종의 아름다운 난초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보콜 국립공원 남서쪽 경사면의 말레이시안 열대우림. 국립생물자원관 제공

보콜 국립공원 남서쪽 경사면의 말레이시안 열대우림. 국립생물자원관 제공


세계적으로 보호해야 할 캄보디아 고유식물의 보고

생태계의 고유성은 그 지역이 다른 지역에 비해 특징적인 식물들을 얼마나 많이 키워내고 있는가에 달려있습니다. 보콜 국립공원은 캄보디아의 그 어떤 지역보다 단연 최고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식물의 종류가 많을 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고유식물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보콜 국립공원에서만 자라고 있는 고유식물은 77종으로 파악되고 있는데, 이것은 캄보디아 고유식물종 수의 절반에 가까우며 그 중 22종이 보콜 국립공원의 남쪽 고원에서만 발견됩니다. 식물의 이름에 '보콜(Bokor)'이라는 단어가 붙은 사례들만해도 물봉선과의 보콜물봉선, 벌레잡이통풀과의 보콜벌레잡이통풀, 여우주머니과의 보콜여우주머니, 야목단과의 소네리라 보코렌세 등 19종에 달합니다.

보콜국립공원의 고유식물, 식물의 이름에 보콜(Bokor)이라는 단어가 붙어있다. 보콜물봉선(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보콜벌레잡이통풀, 필란투스 보코렌시스, 소네리라 보코렌세. 국립생물자원관 제공

보콜국립공원의 고유식물, 식물의 이름에 보콜(Bokor)이라는 단어가 붙어있다. 보콜물봉선(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보콜벌레잡이통풀, 필란투스 보코렌시스, 소네리라 보코렌세. 국립생물자원관 제공

보콜국립공원의 고유식물 중에는 식물구계학적으로 중요한 종인 알고스테마 패시쿨라타가 있습니다. 식물구계는 식물 종류의 특징에 의해 나누어진 지역을 말하며 캄보디아는 베트남, 라오스, 태국과 함께 인도차이나 식물구계에 포함돼 있습니다. 알고스테마 패시쿨라타가 속해있는 알고스테마속 종들은 매주 잘 보존된 상록수림에서 주로 나타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별모양의 꽃을 지니는 종들과 종모양의 꽃을 지니는 종으로 크게 나뉘는 식물입니다. 이 속에서 별모양의 꽃을 지니는 종들 대부분은 말레시아나 식물구계(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필리핀)에서 발견되며 이 지역을 인도차이나 식물구계와 구분하는 지표종들입니다. 알고스테마 패시쿨라타는 별모양 꽃을 피우는 종으로 보콜국립공원과 카다몸 산맥에서 쉽게 만날 수 있습니다. 말레이반도 고유종으로 알려져 온 또 다른 별모양 꽃을 피우는 알고스테마 이내퀼라테룸이 최근 보콜국립공원에서 발견되는 점을 고려했을 때 이들 고유종에 대한 충실한 연구가 이루어진다면, 인도차이나 식물구계와 말레시아나 식물구계를 나누는 정확한 경계선(Line)을 설정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보콜국립공원의 고유식물 알고스테마 패시쿨라타, 말레시아나 식물구계(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필리핀)를 대표하는 식물 중 하나이다. 국립생물자원관 제공

보콜국립공원의 고유식물 알고스테마 패시쿨라타, 말레시아나 식물구계(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필리핀)를 대표하는 식물 중 하나이다. 국립생물자원관 제공


보콜 국립공원의 지속가능한 개발을 고민해야 할 시기

보콜 국립공원의 남쪽 고원은 1,000m 이상의 서늘한 고지대 기후, 아름다운 폭포들, 끝없이 펼쳐진 숲, 고원에서 바라보는 바다와 푸쿡섬의 경이로운 광경으로 인해 프랑스 식민지 시기부터 1972년 킬링필드로 악명 높은 크메루 루즈 정권이 들어서기 전까지 유명한 휴양지였습니다. 고원 절벽 끝 호화로운 카지노가 들어선 보콜 호텔 팰리스(1925년)는 1970년대 초까지 캄보디아인들의 휴양지로서 황금시기를 영유했습니다. 1975년 크메르 루즈 정권에 의해 호텔은 철저히 파괴됐고, 1990년대 초까지 폐허로 방치됐습니다. 하지만 캄보디아가 정치적으로 안정되면서 보콜 고원 재개발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2008년 국제 관광 단지로 재개발되기 시작했습니다. 이 개발을 위해 2010년 새로운 진입도로가 완성됐고 400여개 객실의 탄수르 보콜 하이랜드 리조트와 카지노가 건설됐습니다. 구글지도에서 보콜국립공원을 검색해보시길 바랍니다. 고원의 일부가 무분별한 개발에 파괴되는 현장을 똑똑히 확인할 수 있습니다. 현재 개발중인 리조트는 캄보디아 사람들의 휴식처가 되고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지만 쉬운 접근성은 동?식물 수집가들 또한 불러들였으며 이들에 의한 동물 채집과 희귀식물 채취로 원시림이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그러나 보콜 고원 개발로 인한 쉬운 접근성은 최근 10년간 한국, 일본, 영국 연구자들의 활발한 생물다양성 연구를 가능하게 했고, 그 결과 2015년 이후 30종의 신종과 224종의 캄보디아 미기록 식물이 학계에 보고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현재 캄보디아 생물다양성 연구는 인접국인 태국, 베트남에 버금갈 정도로 활발해졌다는 것 또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환경부 국립생물자원관은 2007년부터 해외 생물자원을 확보하기 위해 캄보디아와 협력 연구를 진행 중입니다. 함께 조사한 캄보디아의 신종 및 유용생물은 양 국가의 생물산업 소재로서 다양하게 활용될 것입니다. 비록 고원지대의 원시림 일부는 리조트 시설이 확장되며 파괴되고 있지만, 이곳에 대한 생물다양성 연구는 그만큼 더욱 활발해질 것입니다. 우리나라와의 생물다양성 공동조사를 통해 캄보디아의 생물다양성 보전과 지속가능한 이용에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런 연구 결과들은 캄보디아 국민들이 환경 보전과 지속가능한 개발에 대해 고민해 보는 기회를 제공할 것입니다.

조성현 국립생물자원관 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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