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잡 안 쓰는 무슬림 여성들 "히잡은 억압 아닌 선택"

입력
2020.07.23 04:30
수정
2020.07.23 11:54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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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히잡은 00이다

편집자주

인도네시아 정부 공인 첫 자카르타 특파원과 함께 하는 '비네카 퉁갈 이카(Bhinneka Tunggal Ikaㆍ다양성 속 통일)'의 생생한 현장.


인도네시아 히잡 디자이너 리아 미란다씨의 작품. 리아 미란다 제공

인도네시아 히잡 디자이너 리아 미란다씨의 작품. 리아 미란다 제공


"무슬림인데 왜 히잡을 안 써요?"

2억7,000만 인구의 87%가 무슬림인 인도네시아에서 가끔 하게 되는 질문이다. 초ㆍ중ㆍ고교 등하교 길이나 시골에 내려가면 에누리 없이 '히잡의 물결'이지만, 수도 자카르타 등 대도시 도심에선 조금 다른 양상이다. 히잡을 쓰지 않은 20, 30대 무슬림 여성을 쉽게 만날 수 있다. 무슬림 여성의 절대 의무라 알려진 히잡 착용 여부 결정이 상대적으로 자유롭다는 얘기다.

"이슬람교 기독교 천주교 힌두교 불교 유교 6개 종교를 공인한 국가 이념 덕이다" "인도네시아는 정통 이슬람이 아니다" "현대화ㆍ세계화에 따른 변화다" 등 외지인들의 풀이는 분분하다. 그러나 인도네시아는 이슬람이 곧 생활이자 사회 전반을 움직이는 나라로, 히잡 착용을 당연시하는 아체특별주(州) 같은 강성 지역이 존재하고, 최근 10년 새 히잡을 착용하는 여성이 오히려 더 늘었다는 게 현지인들의 반론이다. 무슬림 남녀 각 10여명과 이슬람 종교 지도자(이맘) 등에게 히잡에 대한 진솔한 생각을 물었다.

지난해 9월 만난 인도네시아 브르브스의 한인 기업 대한글로벌 공장에서 일하는 무슬림 여성들. 브르브스=고찬유 특파원

지난해 9월 만난 인도네시아 브르브스의 한인 기업 대한글로벌 공장에서 일하는 무슬림 여성들. 브르브스=고찬유 특파원

이슬람 율법에 따르면, '가려서 방해 받지 않는다'는 뜻의 히잡(hijab)은 선지자 무함마드 시절 여성들의 불평과 요청에 의해 만들어졌다. 무례한 남성들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고 다른 종교를 믿는 여성과 '구별'하기 위한 복장이었다. 몸의 목부터 아래 부분을 가리는 게 핵심이다. 얼굴과 손바닥만 내놓는 차도르, 오직 눈만 보이는 부르카와 달리 질밥(jilbab)이라 불리는 인도네시아의 히잡은 머리카락과 목 덮개에 가깝다.

여성들이 히잡을 쓰게 된 계기는 권유, 습관, 신앙, 자신의 선택 등으로 갈렸다. "부모가 원해서" "어릴 때부터 써서" "이슬람 계율에 따라" "성인이 된 뒤 쓰고 싶다는 마음이 생겨서" 등이다. 어떤 경우든 강요는 없었다고 부연했다. 다만 유치원 때부터 히잡을 착용한 회사원 나즈마(24)씨는 "히잡을 안 쓰는 친구들보다 시대에 뒤떨어진다는 생각을 잠시 한 적은 있다"고 귀띔했다.

히잡 착용 여성들은 대개 편안함을 장점으로 꼽았다. 대학 교수 에르니(58)씨는 "매일 귀찮게 머리카락을 손질할 필요가 없다", 회사원 디아나(31)씨는 "벗으면 낯설고 이상하다"고 했다. 4년 전부터 자발적으로 히잡을 착용한 치트라(23)씨는 "말과 행동을 조심하게 되고 주위에서 예쁘다는 얘기도 곧잘 듣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은 "신앙의 깊이에 따라 각자 결정할 일"이라며 히잡을 쓰지 않는 여성들에게 배타적이지 않았다.

다양한 히잡을 쓰고 있는 인도네시아 무슬림 여성들. 픽사베이

다양한 히잡을 쓰고 있는 인도네시아 무슬림 여성들. 픽사베이

히잡을 쓰지 않는 여성들도 다양한 이유를 댔다. 대학생 아유(24)씨와 브비(20)씨는 각각 "마음껏 입고 자유분방하게 살고 싶어서 대학 입학 이후 안 쓴다" "(안 쓰니) 자신감이 넘친다"고 했고, 회사원 에카(39)씨는 "볼이 통통한 편이라 히잡이 어울리지 않아서", 아니스(31)씨는 "후텁지근하고 불편해서"라고 말했다. 칸티(22)씨 등 몇몇은 "히잡을 안 쓰면 외국계 회사에 취직이 더 잘 된다"고 설명했다.

남성들은 "여성들의 선택을 존중한다"는 의견과 "하루 빨리 쓰지 않으면 죄가 될 수 있다"는 경고로 엇갈렸다. 특이한 건 현재 히잡을 착용하지 않는 여성들도 "아이를 낳으면" "신앙이 성숙해지면" 등 언젠가는 히잡을 쓰겠다고 한결같이 밝힌다는 점이다. 히잡을 '여성 억압의 도구'라 여기는 이들도 없었다.

자카르타 도심 블록엠 플라자에 있는 히잡 가게. 자카르타=고찬유 특파원

자카르타 도심 블록엠 플라자에 있는 히잡 가게. 자카르타=고찬유 특파원

이런 인식이 히잡을 안 쓰는 여성이 당장은 많아 보여도 결국 관련 산업을 살찌우는 든든한 토양이다. '히잡은 의무가 아니라 패션이다'라고 외치는 젊은 디자이너들도 2000년대 후반부터 가세했다. 히잡을 거부했던 자신들의 경험을 반면교사 삼아 선보인 다양한 소재의 기능성 제품으로 히잡을 쓰지 않는 여성들의 변심을 재촉하고 있다. 실제 "얇아서 덜 불편한 예쁜 디자인의 제품이 많아져서 다시 히잡을 쓰고 있다"는 젊은 여성들도 있다. 심지어 이슬람교육재단의 히다야툴라(47) 이맘조차 "히잡을 스타일이나 패션으로 여기는 경향이 심해지고 있으나 히잡 착용이 몇 년 새 늘어난 것은 다행"이라고 진단했다.

히잡을 비롯한 인도네시아의 무슬림패션 소비는 2014년 127억달러(15조원)에서 2017년 200억달러(23조8,000억원)로 매년 평균 18.2%씩 늘고 있다. 2017년 기준 터키 아랍에미리트(UAE)에 이어 세계 3위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올해를 세계 최대 무슬림패션 시장으로 도약하는 원년으로 삼았다. 생산부터 유통까지 잇는 네트워크 구축, 4차 산업 혁명에 대비한 자동화 기술 도입, 수출 지원 등 관련 정책도 선보였다. 영국 스웨덴 스페인 등지의 다국적 패션업체들도 무슬림패션 공략에 나서고 있다.

히잡 착용 여부와 상관 없이 인도네시아 여성들은 히잡이 존중 받길 원한다. 마와르(35)씨는 "히잡이 여성을 차별한다는 식의 일방적인 주장이 미국 등 서구 매체에 자주 등장하지만, 현재 히잡을 쓰지 않는 나조차도 히잡을 쓸 준비를 하고 있다"라며 "적어도 인도네시아에선 무슬림 여성의 히잡 착용이 각자의 선택에 달려 있다"고 강조했다. 다른 문화의 잣대로 판단하지 말아달라는 얘기다.

자카르타= 고찬유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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