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지손가락 운동의 비밀: 공존과 협력

입력
2020.07.14 18:00
25면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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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다른 동물보다 뛰어나게 진화한 것은 손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각각의 손에는 우리 몸 전체의 뼈 206개 중 28%에 해당하는 29개의 뼈가 밀집해 있다. 근육은 한 손에 17개가 있는데, 앞팔에 있으면서 손을 움직이는 데 관여하는 근육이 18개가 더 있으니까 29개의 뼈를 35개의 근육이 조정하고 있는 엄청 정밀한 기계라 할 수 있다.

손 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이 엄지손가락이다. 엄지손가락을 여러 이름으로 부르는데, 그 중 하나가 무지(拇指)이다. '무'자는 손을 의미하는 '?'와 어머니를 의미하는 '母'자로 만들어져 있다. 그러니까 손에서 어머니에 비견할 만큼 중요한 부분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엄지손가락이 다른 손가락과 다른 점이 몇 가지 있다. 첫째, 엄지손가락을 만져보면 3개의 긴뼈가 만져지는데 먼 쪽에 있는 2개가 마디뼈이고 손목에 가까이 있는 뼈는 손바닥을 일부인 손허리뼈다. 즉, 엄지손가락은 손바닥의 일부를 손가락처럼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손목과 손바닥의 경계 부위에서 엄지손가락을 움직일 수 있어 다른 손가락보다 더 다양하고 넓은 운동이 가능하다.

두 번째는 엄지손가락이 붙어 있는 방향이다. 주먹을 쥐어 보면 다른 손가락은 모두 손바닥을 향해 접혀지는데, 엄지손가락만 손바닥 위로 접혀지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엄지손가락이 손바닥의 옆에 붙어 있기 때문이다. 타자나 컴퓨터 키보드로 글자를 쳐 보면 이 사실을 더 확실히 알 수 있다. 다른 손가락은 손가락의 끝마디 바닥으로 자판을 치는데, 엄지손가락은 엄지손가락 끝마디의 옆면으로 자판을 두드린다.

이런 차이들 때문에 사람 손에서는 엄지손가락 끝마디 바닥과 다른 손가락의 끝마디 바닥이 맞닿는 '맞섬(opposition)'이라는 운동이 가능한데, 이는 사람만 할 수 있는 운동이다. 맞섬은 손의 기본 역할인 쥐는 힘을 만들어 낸다. 맞섬 때문에 손으로 물건을 아주 세게 움켜쥘 수 있고, 동시에 머리카락을 집는 섬세한 운동도 할 수 있다. 인간을 다른 동물과 구분 짓는 가장 진화된 운동이 바로 이 맞섬이다.

맞섬은 일반적으로 '저항, 반대, 대립, 동의하지 못함' 등의 의미로 사용되는 단어다. 맞섬이 인간을 다른 동물과 구분 짓게 진화시켰다면, 우리 사회도 주로 불의에 대한 시민들의 저항이 사회 발전의 원동력이 되어 왔다. 그러니 맞선다고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볼 수 있다.

첫째, 맞섬은 불의뿐 아니라 일반적으로 문제를 대하는 원칙이다. 어떤 문제든 정면으로 마주할 때 더 쉽게 해결방법을 찾을 수 있다. 최근 체육선수 한 명과 정치인 한 명이 자살하는 안타까운 소식을 접했다. 우리나라는 자살공화국이라는 불명예를 가지고 있다. 죽음을 선택하게 하는 그 힘든 일의 원인이 무엇이든, 목숨을 끊음으로써 문제를 회피하는 일이 더 생기지 않도록 모든 사회적인 힘을 모아야 한다.

둘째, 타협과 협력이다. 어떤 일이든 저항과 반대는 있는 법이다. 손가락들도 서로 조화롭게 협력해야만 도끼자루도 안전하게 움켜쥘 힘도 내고, 머리카락도 떨어뜨리지 않고 집어 올리는 섬세한 운동도 할 수 있다.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진 집단, 개인들은 서로의 차이를 좁혀서 균형점을 찾아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엄지손가락이 손바닥 옆에 붙어 있는 까닭은 다른 손가락을 살피기 위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강자가 약자를, 부자가 가난한 자를 살필 때 맞섬은 오히려 발전을 위한 타협점을 찾아내는 출발점이 될 것이다. 최근 최저임금 논의 과정에서 의견 차이를 좁히지 못해 일부는 퇴장하고, 남은 분들이 투표를 했다고 한다. 양쪽 모두에게서 상대방을 살피지 못하는 아쉬움이 느껴진다.

셋째, 맞섬 운동에서 다른 손가락은 굽기만 하는데 엄지손가락은 손바닥을 가로질러 다른 손가락 쪽으로 움직인다. 엄지손가락을 그냥 두고 다른 손가락을 움직여서는 절대 두 손가락을 맞댈 수 없다. 최고 위치에 있는 지도자가 구성원을 이해하고 그들을 위해 더 마음을 쓰고 먼저 움직여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게 아니겠는가.

맞섬의 의미를 잘 살려 조화롭게 공존하며 발전하는 사회가 되면 좋겠다.

엄창섭 고려대 의과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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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창섭고려대 의과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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