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과 환경을 사랑한 독재자

입력
2020.07.14 04:30
수정
2020.07.14 13:32
26면
구독

Joaquin Balaguer (7.14)

말년의 도미니카공화국 독재자 호아킨 발라게르.

말년의 도미니카공화국 독재자 호아킨 발라게르.

‘박정희 군사정권’이란 말은, 사실 반만 맞는 말이다. 청와대와 중앙청(현 정부종합청사)의 가장 너른 책상을 차지한 건 군복을 벗고도 어깨에 짊어진 별의 권위로 군림한 이들이 맞지만, 그들을 추어 주고 때로는 슬며시 겁도 주면서 길을 인도한 건 외교관들, 엄밀히 말하면 미국통 정치 엘리트들이었다. 5ㆍ16 쿠데타 직후 위기 때도, 10ㆍ26 전후의 혼란기에도 드러나지 않는 자리에서 군인 정치인들 못지않게 복잡한 계산을 했던 게 그들이었고, 경제 개발의 종자돈을 마련해온 것도 그들이었다. 그 사정은 사실, 갓 독립해 냉전과 세계 체제에 편입된, 동ㆍ서 불문 작은 나라들의 공통적인 현실이었다. 정치 기반도 실력도 빈약하던 이승만이 대한민국 ‘국부(國父)’가 된 건 행운 덕만은 아니었다. 그는 외교관이었다.

여러 면에서 박정희와 대비되는, 도미니카 공화국 독재자 호아킨 발라게르(Joaquin Balaguer, 1906.9.1~ 2002.7.14)는 이승만, 박정희의 강점을 함께 갖춘 정치인이었다. 푸에르토리코 이민자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법학을 전공해 변호사가 됐고, 원년 독재자 라파엘 트루히요(Rafael Trujillo) 일가 집권기에 외교관으로 정치에 입문해 차관-장관- 부통령을 지낸 뒤 미국 외교압력으로 라파엘의 동생 엑토르가 권좌에서 쫓겨나면서 대통령 직을 승계했다. 이후 그는 쿠데타와 암살, 내란의 시기를 관통하며 36년간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했고, 1994년 7선 대통령이 될 때까지 때로는 길게 때론 짧게 대통령 직을 유지했다. 그의 뒤를 받쳐 준 것도 물론 쿠바와 중남미 적화를 견제해야 했던 미국이었다.

정적ㆍ언론인 탄압과 사법 살인, 헌법을 개정해 장기집권을 꾀한 점, ‘도미니카의 기적’이라 불리는 경제 성장을 일군 점은 박정희의 판박이였다. 그의 대표적 치적으로 꼽히는 자연보호, 즉 국토(해양 포함)의 34%를 그린벨트로 지정, 반군 진압하듯 벌목꾼을 소탕한 것은 오히려 박정희를 능가했다. 그는 독신이었고, 자연사했다.

최윤필 기자

댓글 0

0 / 25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 저장이 취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