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스뉴스 그녀들의 폭로가 세상을 바꾸었다

입력
2020.07.09 10:00
수정
2020.07.09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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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개봉 영화 '밤쉘' 리뷰

영화 '밤쉘: 세상을 바꾼 폭탄선언'. 그린나래미디어 제공

영화 '밤쉘: 세상을 바꾼 폭탄선언'. 그린나래미디어 제공


“대신 나한테 보답해야 해. 그 보답이 뭔지 알아? 충성심. 자네가 충성스러운지 알아야겠어. 충성을 증명할 방법은 자네가 직접 찾아. 한번 고민해 봐.”

직장에서 고대하던 자리로 옮기게 됐다. 힘을 써준 고위급 직장상사가 불러서 이런 당부를 한다. 당사자는 당혹스러울 수밖에. 게다가 주변엔 아무도 없다. 상사는 나이 많은 남자, 부하직원은 젊은 여성이다. 상사는 발언 전 부하직원의 다리가 예쁘다며 치마를 추켜 올려보라고 말하기도 했다. 노골적으로 성 상납을 요구하는 상황. 상사의 발언을 녹음하지도 못하고, 방에는 폐쇄회로(CC)TV조차 없다. 법적으로 문제를 삼아도 증거 불충분으로 불리한 상황. 당하고 속을 끓이고 있는 와중에 직장 안팎 피해자가 한 둘이 아님을 알게 된다. 상사는 오랜 시간 동안 상습범이었던 것. 피해자들은 계란으로 바위치기라는 생각에 혼자 속으로 분노를 삭여 왔다.

8일 개봉한 영화 ‘밤쉘: 세상을 바꾼 폭탄선언’은 미국 유명 방송국 폭스뉴스에서 있었던 실화를 다룬다. 폭스뉴스 창립을 주도하고 경영진으로 20년 동안 회사를 이끌었던 로저 에일스(존 리스코)의 죄상이 피해자들의 연대를 통해 파헤쳐지는 과정이 담겼다. 앞에서 언급한 직장상사는 에일스, 여성 부하직원은 폭스뉴스 앵커 케일라(마고 로비)다.

에일스는 자신의 성욕을 위해 권력을 능숙하고도 교활하게 악용했다. 선을 넘은 언행으로 상대방을 압박하면서도 업무의 일부인 척 굴었다. TV는 보여주는 매체이고, 성적 매력을 상품화해야 하고 자신은 이를 검증할 자리에 있다는 식이었다. 피해자들은 매번 불이익을 당할까 봐 입을 다물었다. 조직의 수장이 부적절한 언행을 거듭하니 유사한 일이 중간간부들 사이에서도 일어나게 된다. 한 기혼 여성 앵커는 꿈에 그리던 뉴욕에서 일하게 됐으나 그를 끌어준 뉴욕 지국장의 한마디에 절망한다. “당신 호텔 방을 보고 싶어요.”

영화는 에일스의 부당한 요구를 거부했다가 시청률 낮은 프로그램으로 쫓겨나고 끝내 해고 당한 그레천(니콜 키드먼), 2016년 미국 대선 기간 중 도널드 트럼프 당시 공화당 대통령 후보와 설전을 벌였다가 극우파에게 마녀사냥을 당한 메긴(샤를리즈 시어런), 케일라의 사연을 교차시키며 이야기를 전진시킨다. 영화는 미국 사회 전반에 만연해 있는 성희롱과 여성 비하 행태를 공박하는 동시에 시청률이라는 목적을 위해선 수단을 가리지 않고, 우파 정치인 감싸기에 애쓰는 폭스뉴스의 실체를 까발린다. 그 과정은 때론 답답하고, 황당하지만 종국엔 통쾌하다. 폭스뉴스 여성앵커 연대가 이룬 성과는 이후 세계를 뒤흔드는 ‘미투(#MeToo)'의 불씨가 됐다.

이 영화가 만들어지기까지는 시어런의 역할이 컸다. 시어런은 주연배우 겸 제작자로 이 영화를 이끌었다. 크랭크인 3일 전 영화사 안나푸르나가 재정난을 이유로 투자를 철회한 위기를 극복하며 영화를 완성시켰다. 시어런은 이 영화로 제92회 미국 아카데미영화상 여우주연상 후보, 로비는 여우조연상 후보에 올랐다. ‘트럼보’(2015) 등의 제이 로치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15세 관람가.

라제기 영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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