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에 한국인 분양 사기 경계령... "싼 맛에 묻지마 투자는 금물"

입력
2020.07.09 04:30
16면

<7> 베트남 부동산 투자의 함정

편집자주

국내 일간치 최초로 2017년 베트남 상주 특파원을 파견한 <한국일보> 가 2020년 2월 부임한 2기 특파원을 통해 두 번째 인사(짜오)를 건넵니다. 베트남 사회 전반을 폭넓게 소개한 3년의 성과를 바탕으로 급변하는 베트남의 오늘을 격주 목요일마다 전달합니다.


베트남 수도 하노이의 상징인 서호 인근에 고층 아파트와 빌딩들이 빼곡하게 들어서 있다. 하노이=정재호 특파원

베트남 수도 하노이의 상징인 서호 인근에 고층 아파트와 빌딩들이 빼곡하게 들어서 있다. 하노이=정재호 특파원


싱가포르 마리나베이 샌즈 호텔을 표방한 옥상 수영장, 아파트 동을 잇는 스카이 브리지, 또 유럽산 내장재 및 5성급 호텔에 맞먹는 각종 부대시설.

2018년 상반기 베트남 수도 하노이 도심에 지어지는 A아파트 시행사가 분양을 하며 내건 선전 문구다. 당시 ㎡당 분양가는 3,000만~4,000만동(150만~200만원). 평(坪)으로 환산하면 평당 495만~660만원이니 우리 돈 2억원만 주면 30평대 최고급 아파트를 살 수 있었던 셈이다. 베트남 부동산을 주시하던 한국인들이 몰려든 건 당연지사였다. 분양 후 석 달 사이 외국인에게 배정된 30% 물량의 9할이 넘는 517가구를 한국인들이 독식했다.

하지만 ‘대박의 꿈’은 산산조각이 난지 오래다. 원래 A아파트 입주일은 지난해 12월 31일이었지만 7개월이 지난 지금도  공사 중이다. 예정 날짜에 입주를 예상하고 한국의 집을 처분한 사람들은 현재 베트남과 한국에서 월세나 단기 전세를 살며 기약 없는 완공일을 기다리고 있다. 시행사가 약속한 시설 상태도 형편 없긴 마찬가지였다. 옥상 수영장과 스카이 브리지는 아예 조성되지도 않았고, 내장재 역시 유럽산이 아닌 저가 베트남산으로 채워졌다.

시행사는 거센 항의에도 침묵과 무대응으로 일관해 입주 예정자들의 속을 더욱 태웠다. 최근에야 “8월이면 소방 점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지만, 공지가 지켜질 것으로 믿는 이는 거의 없다. 답답한 마음에 5월 현지인들과 함께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린 한국인 피해자들은 시행사 건물 앞에서 항의 집회까지 열었다. 그제야 시행사 측은 보상문제 등을 놓고 대화에 응했다.


허위광고 범람하지만 피해자 보호는 전무


하노이 도심의 한 고급 아파트 공사 현장이 휴일에도 바삐 돌아가고 있다. 하노이=정재호 특파원?

하노이 도심의 한 고급 아파트 공사 현장이 휴일에도 바삐 돌아가고 있다. 하노이=정재호 특파원?


한국에 베트남 부동산 '사기주의보'가 내려졌다. 분양 피해는 A아파트가 처음이 아니다. 2017년에도 인공호수를 낀 하노이의 B아파트를 한국인들이 ‘싹쓸이 쇼핑’ 했다. 그러나 정작 완공된 아파트 복도는 분양 당시 설계와 달리 성인 남성 두 명이 지나가기도 어려울 만큼 비좁았다. 또 다른 무허가 설계 변경도 곳곳에서 발견됐다. 이 아파트는 요즘 분양가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가격에 거래되고 있다. 매매ㆍ임대 차익을 기대하기는커녕 막대한 손실을 보고도 처분조차 어려운 상황이다.

사실 베트남 부동산 시장의 허위ㆍ과장 광고와 설계 변경 행태는 오랜 관행이다. 베트남에서 20년째 건설사를 운영 중인 한 교민은 “‘베트남의 삼성’으로 불리는 빈 그룹이 지은 아파트도 완공되면 크고 작은 항의가 이어진다”며 “대형 건설사도 사정이 이런데, 중소 건설업체들이 짓는 아파트는 기본적으로 과장 광고 등 위험부담을 안고 투자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원인은 비현실적으로 낮은 분양가 때문이다. 건설 단가를 두 배 이상 늘리는 옥상 수영장이나 인공호수 등 호화 부대시설을 조성하고도 최초 책정 분양가로 판다는 건 애초에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물론 국내에도 부동산 허위 광고는 존재한다. 하지만 한국은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해 시행사를 행정 처분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민ㆍ형사 소송을 통해 금전적 손실을 회복하고 책임자를 처벌할 수 있는 법적 장치도 마련된 상태다. 모든 부동산 피해를 복구할 수 없겠지만 적어도 제도적인 구제 체계는 구비돼 있는 것이다.

반면 베트남은 아직 사기 분양의 고리를 끊을 정부 차원의 대응에 나서지 않고 있다. 마땅한 소비자보호 관련 법제도 전무하고, 손해배상 문제를 다룬 민사 판례도 거의 없다. 그나마 부실 시공을 야기한 건설업자를 형사 조치한 사례는 있으나 이 역시 말단 현장 책임자에 대한 ‘보여주기용’ 처벌에 그쳤다.

제대로 된 벌을 받지 않으니 지역의 중소 건설업체들은 ‘로비’에 의존해 불법 행위를 없던 일로 만들고 있다. 각 성(城)의 건설 공무원들에게 접근해 뇌물을 건네고 민원을 무마시키는 식이다. 실제 2015년 호찌민시 부서기는 한 베트남 건설업체에 사업 혜택을 몰아 주다 적발돼 기소되기도 했다.


꼼꼼한 현지 실사로 사기 예방해야

베트남 건설 시장 추이

베트남 건설 시장 추이


최근 분양 피해가 유독 한국인에게 집중된 것은 중국ㆍ베트남 갈등과 관련이 깊다. 중국은 2012년 영유권 분쟁지역인 남중국해 섬들을 자국 영토로 표기한 새로운 여권을 발급했다. 베트남 정부는 즉각 반발했지만, 당시는 중국 기업들이 베트남에 한창 투자를 확장하던 때라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 중국이 분쟁 도서들을 군사기지화하는 등 영유권 야욕을 노골화하자 베트남 내 여론은 급격히 악화했다.

특히 민감하게 반응한 분야가 부동산 시장이었다. 베트남 당국은 새 여권으로 진행된 중국인의 부동산 거래에 대해 주택소유권 등기 증서(핑크북) 발급을 사실상 거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노이 부동산업계 관계자는 “베트남 정부가 남중국해 이슈를 놓고 강경 대응 방침을 세우면서 분양 사기의 불똥이 한국인들에게 튀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현지 업계 관계자들은 ‘보수적 투자’ 만이 베트남 부동산 거래 피해를 줄이는  방법이라고 입을 모은다. 꼼꼼한 확인 절차 없이 싼 맛에 현혹돼 매물을 구매하면 십중팔구 낭패를 본다는 조언이다. 분양 사기엔 한국인 중개인들도 개입하는데, 이들은 같은 국민임을 내세워 투자자들에게 세부 정보를 제공하지 않고 현지 업자들과 짜고 물량 소진에만 집중하고 있다. 베트남 아파트에 투자하기로 마음 먹었다면 구매자가 직접 현지를 찾아 건설 현장과 시행사 정보 등을 상세하게 파악한 뒤 결정을 내려도 늦지 않다는 것이다.

투자 위험은 크지만 베트남 주택시장은 성장세를 감안할 때 매력적인 장기 투자처인 것은 분명하다. 지난해 베트남의 연간 건설시장 규모는 154억달러(18조5,000억원)에 달했으며 올해는 173억달러(20조8,000억원)까지 증가가 예상된다. 세계은행(WB) 역시 “베트남 도시 인구가 빠르게 늘고 있어 2040년이면 전체 인구의 절반을 차지할 것”이라며 주택시장의 꾸준한 성장을 전망했다.

하노이= 정재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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