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 인어공주상 또 수난... 이번엔 '인종차별' 낙서

입력
2020.07.05 15:15
수정
2020.07.05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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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잘리고 페인트 뒤집어쓰고…인어공주상 수난사
한해 100만명 찾는 명물…시위메시지 전파 도구로

덴마크 수도 코펜하겐의 대표적인 명물인 인어공주 조각상이 놓여 있는 돌에 3일(현지시간) '인종차별 물고기'라는 낙서가 적혀 있다. 코펜하겐=로이터 연합뉴스

덴마크 수도 코펜하겐의 대표적인 명물인 인어공주 조각상이 놓여 있는 돌에 3일(현지시간) '인종차별 물고기'라는 낙서가 적혀 있다. 코펜하겐=로이터 연합뉴스

덴마크 수도 코펜하겐의 명물인 인어공주 조각상. 덴마크의 대표적인 관광자원이자 국보이기도 하죠. 올해로 107세인 인어공주상은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작품이지만 그만큼 수난(?)도 당해왔다고 하는데요. 미국에서 촉발된 인종차별 항의시위가 이어지는 가운데 이번엔 인어공주상에서 관련 낙서가 발견되면서 눈길을 끌고 있습니다.

로이터통신, 영국 일간 가디언 등 외신에 따르면 3일(현지시간) 현지 경찰은 인어공주상 훼손을 공공기물파손으로 간주하고 수사를 시작했습니다. 현장 사진을 살펴보면 인어공주상의 받침대가 되는 바위 부분에 검은 글씨로 크게 '인종주의자 물고기(Racist fish)'라고 적혀있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데요.

코펜하겐 항구 입구에 놓인 인어공주상은  덴마크 조각가 에르바르드 에릭센이 1837년 발표된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의  동화 '인어공주'를 기념하며 1913년에 세운 것입니다. 높이 165㎝에 무게는 175㎏에 달하고요. 해마다 인어공주상을 찾는 이만 100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번 인어공주상 파손 사건이 온라인상에 확산되면서 이를 두고 많은 해석이 나오고 있는데요.

덴마크 수도 코펜하겐의 대표적인 명물인 인어공주 조각상이 훼손됐다. 코펜하겐=EPA 연합뉴스

덴마크 수도 코펜하겐의 대표적인 명물인 인어공주 조각상이 훼손됐다. 코펜하겐=EPA 연합뉴스

먼저 안데르센의 인어공주와 인종차별은 어떤 관계가 있는 걸까요? 일부 학자들은 과거 안데르센 작품 중 식민주의와 인종차별을 다룬 극 '물라토'를 거론하거나, 그가 쓴 몇몇 이야기에 인종주의자적 함의가 있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아직 이 같은 관점에서의 연구는 많이 진행되지 않았고 뚜렷하게 밝혀진 바도 없죠. 안데르센 센터의 한 연구원은 현지 언론과 인터뷰에서  "동화 '인어공주'에서 특별히 인종주의적인 부분은 찾기 어렵다"라는 의견을 밝히기도 했어요.

지난해 디즈니가 제작하고 있는 애니메이션 '인어공주' 실사판의 주인공 아리엘 역으로 미국 흑인가수인 할리 베일리를 기용하면서 일었던 논란도 언급되고 있는데요. 애니메이션 원작에서는 흰 피부에 붉은 머리카락을 가졌던 것과 달리 주인공이 검은 피부와 머리카락인 것이 낯설다는 반응을 두고 또 한 차례 인종차별이라는 지적이 나오면서 갑론을박이 벌어졌죠. 이와 연관시킨 인종차별 항의운동의 일환이 아니냐는 주장입니다.

하지만 사실 인어공주상은 그 메시지가 인어공주와 관련이 있든 없든 그동안 많은 시위대의 '반달리즘(Vandalism·예술작품 및 공공기물 파괴행위)' 대상이 돼왔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상징물이기 때문입니다. 인어공주상이 관심받는 만큼 시위대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널리 전할 수 있다는 것이죠.

설치된 후 107년이 지나는 사이 이 인어공주상은 이미 1964년과 1988년 급진적인 예술가들에 의해 두 차례 목이 베였고, 1984년에는 팔도 잘렸습니다. 심지어 2003년에는 누군가 받침대를 폭파해 통째로 물에 빠진 적도 있는데요. 처음 훼손된 인어공주상의 머리 부분은 끝까지 찾지 못해 결국 다시 만들어서 붙인 것이라고 하네요.

인어공주상에 담은 메시지도 다양합니다. 앞서 2004년에는 터키의 유럽연합(EU) 가입을 반대하는 세력이 인어공주상에 이슬람 여성의 부르카를 연상시키는 검은색 천을 씌우고 'EU에 터키가?'라는 문구가 쓰인 어깨띠를 둘렀고요. 2017년에는 고래사냥에 반대하는 환경운동가로 추정되는 이들이 '페로제도의 고래를 보호하라'며 붉은색 페인트를 퍼붓기도 했죠. 올해 1월 홍콩 대규모 반중시위 즈음에는 빨간색 글씨로 '자유 홍콩'이라는 글귀가 쓰여 주목을 받았어요.

원작에서는 목소리를 잃은 인어공주가 지금은 각국, 각종 시위대의 목소리를 전해주는 선전 도구가 된 셈인데요. 예술품에 대한 존중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높습니다. 고통받는 인어공주상, 언제쯤 평안해질 수 있을까요.

이유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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