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한울이다"  한국 근현대사 변혁의 횃불, 동학농민혁명을 기억하라

입력
2020.07.05 14:00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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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야사학자 고(故) 이이화 선생의 유작 출간

지난해 9월 9일 이이화 선생이 동학농민혁명 현장 답사차 들렀던 ?충북 제천의 청풍 성내리. 이 선생은 "책상에만 앉아선 역사를 말할 수 없다"던 '현장파' 역사학자였다. 이게 마지막 답사였다. 충북대 신영우 교수 제공

지난해 9월 9일 이이화 선생이 동학농민혁명 현장 답사차 들렀던 ?충북 제천의 청풍 성내리. 이 선생은 "책상에만 앉아선 역사를 말할 수 없다"던 '현장파' 역사학자였다. 이게 마지막 답사였다. 충북대 신영우 교수 제공


1년 전 재야사학자 이이화 선생은 한 통의 메일을 보냈다. “마지막으로 다 정리하니 눈물이 나서 혼자 맥주 한잔 하고 있네요. 마무리 잘 부탁해요.” 본인의 평생 연구 주제였던 동학농민혁명사 3권의 원고를 끝낸 뒤 건넨 홀가분한 인사였다. 하지만 이 선생은 책 출간을 보지 못한 채 지난 3월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다. 최근 출간된 ‘이이화의 동학농민혁명사’(교유서가)는 이이화의 유언과도 같은 책이다.

‘거리의 역사학자’로 민중사학의 기틀을 일구며 100여권의 저서를 남긴 이이화 선생이 생전에 가장 중시한 것은 동학농민운동 연구였다.  아무도 조명하지 않던 이름 모를 이들의 죽음, 역적의 자손이란 이름 때문에 숨 죽이고 살았던 유족들, 그리고 ‘그래봤자 실패한 혁명’이라는 학계 일부의 평가절하. 

 이 선생이 조각난 사료를 뒤지고, 후손들의 증언을 수집하며 전국을 누빈 건 '동학의 난'을 '민족혁명운동'으로 재조명하기 위해서였다.


동학농민혁명의 분기점이 됐던 백산봉기 기록화. 1987년 이의주 작가가 그렸다. 교유서가 제공

동학농민혁명의 분기점이 됐던 백산봉기 기록화. 1987년 이의주 작가가 그렸다. 교유서가 제공


그는 동학농민혁명을 한국 근현대사의 뿌리로 여긴다.  “동학농민혁명은 인간 평등을 추구하고, 자주 국가를 건설하려는 용틀임이었다. 민중은 국가 권력으로 자행되는 국가 폭력에 맞서 목숨을 바쳤다. 그들은 부당한 지배를 받으며 그들을 옥죄고 있는 올가미에서 빠져 나가려고 저항했고 그것을 바탕으로 인간답게 사는 권리를 쟁취했다.” (동학농민혁명사 서문에서) 이 선생은 “사람이 한울이다”라는 명제로 자유, 평등, 인권, 자주의 기치를 내걸고 부패와 외세에 항거했던 동학농민혁명의 정신은 ‘3·1혁명’으로 이어졌고 반독재 민주화운동, 촛불혁명까지 영향을 끼쳤다고 본다.

책은 동학농민혁명의 기억 문제까지 다룬다. 1권이 창시자 최제우, 2권이 일제와 맞서 싸운 역사를 다룬다면 3권은 손병희 등 살아남은 이들의 항일 운동은 물론, 광복 이후 특별법 제정, 국가기념일 지정, 전봉준 동상 제작 등의 문제까지 상세하게 전한다. 사진자료 정리 등을 맡았던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이병규 연구조사부장은 “선생님은 1894년엔 '반란'으로 기록된 것이 126년의 시간을 거치면서 어떻게 지금의 혁명으로 승화되는지, 그 과정을 보여주고 싶어하셨다”고 말했다.


녹두장군 전봉준 순국 123주기를 맞은 2018년 4월 24일 서울 종로구 영풍문고 앞에서 전봉준 장군 동상 제막식이 열렸다. 홍인기 기자

녹두장군 전봉준 순국 123주기를 맞은 2018년 4월 24일 서울 종로구 영풍문고 앞에서 전봉준 장군 동상 제막식이 열렸다. 홍인기 기자


‘약자의 역사가 진짜 역사’라 믿었던 이 선생은 이를 통해 역사교육의 중요성을 알리고 싶었다. “역사는 기억해야 살아 있는 유산이 된다. 동학농민혁명을 기억해 미래 인권과 통일의 유산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이 책은 그런 기억을 위해 늙은 역사학자가 독자에게 선사하는 선물이 될 것이다.”

이 선생과 함께 동학혁명 연구를 함께 해온 평생의 동지 신영우 충북대 국사학과 명예교수는 “이이화는 한국 통사를 지배자가 아닌 민중과 서민의 시각에서 들여다봤다"며 "동학혁명은 평등과 자주, 참여를 강조한 민주주의 정신과 맞닿아 있다는 점에서 우리가 반드시 잊지 말아야 할 역사적 뿌리”라고 말했다.

강윤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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