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시절 호르니스트 김홍박이 반해버린 말러의 '부활'

입력
2020.07.05 09:00
수정
2020.07.27 14:46
구독

편집자주

일요일 오전을 깨워줄 클래식 한 곡 어떠세요? 클래식 공연 기획사 '목프로덕션' 소속 연주자들이 '가장 아끼는 작품' 하나를 매주 추천해 드립니다.


구스타프 말러

구스타프 말러


김홍박(38)은 중학교 2학년에 호른을 불기 시작했다. 나이는 어렸지만, 음악으로 전공을 정한 학생치곤 시작이 늦은 편이었다. 예술 중학교 출신이 아닌데다, 호른을 연주하려면 복잡한 '이조(조 옮김) 악보'를 읽을 줄 알아야 했기에 순탄치 않았다. 그래도 열심히 연습해 서울예고에 입학했다.

김홍박이 고등학교 2학년이 됐을 때 같은 반엔 '클래식 광' 친구 2명이 있었다. 수업이 끝나고 쉬는 시간만 되면 둘은 클래식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였다. 예술 고등학교다운 풍경이었지만 김홍박은 그들이 유별나다고 생각해 가깝게 지내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날, 그들은 작곡가 구스타프 말러를 놓고 열띤 토론을 하고 있었다. "말러는 사이코야!" "이 대목에선 이런 메시지를 주는 거 같아!" 둘 중 한 명은 성악을 전공한 친구여서 목소리가 쩌렁쩌렁했다. 자연스레 같은 교실에 있던 김홍박의 귀에도 대화가 들렸다. 김홍박은 모차르트나 리하르트 스트라우스처럼 호른에 관한 곡을 쓴 작곡가들에만 관심이 있었던 터라 그땐 말러가 누군지도 몰랐다.

그때 성악을 전공한 친구가 다가왔다. 그는 "홍박! 너 호른이지? 여기 이 부분을 들어봐"하며 이어폰을 건넸다. 김홍박은 별 감흥이 없었지만 얼른 반응해주고 자리를 피하자는 마음에 이어폰을 집어 귀에 꼽았다. 그때만 해도 그 순간이 평생 각인될 거라곤 상상할 수 없었다.

이어폰 속에선 10대의 호른이 웅장한 소리로 포효하고 있었다. 그리고 합창단이 열창했다.


"Sterben werd' ich, um zu leben! Aufersteh'n, ja aufersteh'n! wirst du, mein Herz, in einem Nu! Was du geschlagen! Was du geschlagenzu! Gott wird es dich tragen!" (나는 살기 위해 죽으리라! 부활하리라, 내 영혼이여. 너는 일순간 다시 부활하리라! 그대가 받은 고통 그것이 그대를 신에게 인도하리라!)



말러의 교향곡 2번, '부활'의 절정이 연주되고 있었다. 김홍박은 감전된 사람처럼 그자리에서 꼼짝할 수 없었다. 오케스트라가 주는 희열을 처음 접한 순간이었다. 집으로 돌아온 김홍박은 독일어 사전을 뒤져가며 가사를 번역해 공부했다. 지금처럼 스마트폰이 대중화하지 않았던 시절이라 누나의 CD플레이어를 몰래 가져와 말러 곡을 수백번 들었다. 불꺼진 방에서 말러의 음악은 김홍박을 울리며 가슴 속에 파고 들었다.

그날 이후 김홍박은 또 다른 감동을 찾아 다른 클래식 작품들에도 심취하기 시작했다. 말러의 '부활' 덕분에 음악에 대한 관심이 급증한 것이다. 호른으로 표현하고 싶은 것들도 생겨났다. 지루하고, 실수할까봐 두려웠던 학교 오케스트라 합주시간은 가장 즐거운 시간으로 바뀌었다. 김홍박은 "돌이켜 보면 악기를 다루는 스킬이나, 음악에 대한 열정, 진지함이 성장했던 시절"이라고 말했다.


김홍박은 영국의 시티 오브 버밍엄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연주한 버전의 '부활'을 추천했다. 영국 음반회사 EMI를 통해 음반도 나와 있다. 김홍박은 "작품의 마지막 합창이 주는 숭고한 아름다움을 잘 이끌어 낸 명반"이라며 "삶과 죽음에 대한 고통과 공포에서 벗어나 천상의 소리로 치유받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김홍박은 클라우디오 아바도가 지휘한 루체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의 연주 버전도 뛰어나다고 평가했다.

말러를 처음 접하는 이에게 김홍박은 "가사의 뜻을 몰라도 일단 들으면서 대규모 오케스트라와 합창단, 솔리스트가 전하는 압도적인 소리의 감동을 느끼면 된다"고 설명했다. 관심이 더 생기면 노래 가사의 뜻을 찾아보거나, 말러가 각각의 악기를 통해 전달하려 했던 메시지를 하나씩 공부해 나가면 족하다. 김홍박은 "막연했던 작품이 서서히 이해될 때마다 말러의 부활은 늘 새롭게 다가올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으로 모두가 어렵죠. 이 시간이 지나 안전하게 문화생활을 할 수 있는 때가 오면 꼭 공연장에서 직접 들어보시길 추천합니다."



장재진 기자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

댓글 0

0 / 25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 저장이 취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