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루에서 재소자들이 옷 만드는 속사정은?

입력
2020.07.04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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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감자 50여명, 패션브랜드 '피에타' 제품 생산
판매수수료 일부로 임금 받고 가족에게 송금도
"감옥 내 노동, 사회 발전에 기여하는 기회 돼야"

페루의 패션브랜드 '피에타' 의류를 만들고 있는 교도소의 한 수감자 모습. 피에타 페이스북 캡처

페루의 패션브랜드 '피에타' 의류를 만들고 있는 교도소의 한 수감자 모습. 피에타 페이스북 캡처

페루의 수도 리마에 있는 페루 최대 교도소 '산 페드로 데 루리간초'에선 재봉틀 소리가 멈추지 않는다. 한 때 소매치기나 강도였던 죄수들이 지금은 옷감을 자르고 바느질을 하고 도안을 인쇄하는 등 분주한 손길을 이어가고 있다. 

영국 BBC방송은 2일(현지시간) "루리간초 교도소에서 복역중인 죄수 30여명이 작업장에 모여 패션브랜드 '피에타'의 의류 제품을 만들고 있다"면서 "이들은 이렇게 옷을 만들어 받은 돈을 가족에게 보내기도 한다"고 전했다. 일주일에 최대 400솔(약 14만원)까지 받기도 한다는 카를로스 아르셀(51)은 이 돈을 어린 딸의 양육비에 보탠다. 그는 이날도 라마털로 스웨터를 만들기 위해 재봉틀을 돌리느라 여념이 없었다.

'피에타'의 홈페이지 캡처

'피에타'의 홈페이지 캡처

패션의 '패'자도 모르는 죄수들이 어떻게 감옥에서 옷을 만들 수 있었을까. 출발은 프랑스인 토마스 제이콥(33)의 기발한 사업 아이템이었다. 프랑스 명품브랜드 '샤넬'에서 직물 구매자로 일했던 그는 2012년 이 교도소를 방문한 후 페루 현지에 기반을 둔 패션사업을 구상했고, 그렇게 해서 탄생한 브랜드가 '피에타'였다. 

제이콥 대표는 "일부 수감자들은 옷감을 짜거나 바느질을 하고 인쇄하는 방법을 알고는 있었지만 그 지식을 활용할 수 없었다고 하더라"며 "이 사람들을 위해 뭔가를 할 가능성이 있음을 깨달았다"고 했다. 그는 의류 제조에 대해선 사전 경험이 없으면서도 일부 관련 '지식'을 갖고 있는 죄수들에게 그들의 '지식'을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한 셈이다. 

현재 '피에타'는 교도소 3곳에서 50여명의 수감자들에 의해 매주 1,000벌 정도가 생산되고 있다. 죄수들은 그들이 만든 옷이 판매될 때마다 일정 비율의 수수료를 임금 명목으로 받는다. 이전에는 리마에서 운영중인 매장 3곳을 통해 판매가 이뤄졌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에는 온라인 판매에 주력하고 있다. 최근에는 남미지역 이웃 국가들은 물론 미국과 호주에서도 주문이 쏟아지고 있다. 

제이콥 대표는 굳이 감옥에서 옷을 생산하는 이유에 대해 "단지 생산비용을 아끼기 위해서가 아니다"고 잘라 말한다. 그러면서 지금의 '피에타' 의류 생산을 '사회적 프로젝트'라고 강조했다. "페루의 섬유산업은 상당히 발전했고 생산량이 많기 때문에 오히려 교도소 밖에서 대량생산을 통해 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다. 하지만 비용만 생각하고 생산 방식을 바꾸는 건 내가 의류사업을 하는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다."

실제 '피에타' 제품 생산에 참여하는 죄수들에겐 특별한 기회도 주어진다. 교도소 측은 이들이 자의에서든 타의에서든 중단할 수밖에 없었던 학업을 이어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그 과정을 이수했을 때는 형량을 줄여줄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했다. 

한 수감자가 자신이 만든 '피에타' 제품을 보여주고 있다. 피에타 페이스북 캡처

한 수감자가 자신이 만든 '피에타' 제품을 보여주고 있다. 피에타 페이스북 캡처

수감자인 대니얼 로하스 팔라시오스(25)는 "내 형량은 5년인데 최소 2년만 더 공부하면 형량을 단축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피에타' 의류 생산에 참여한 최근 몇 달 동안 임금 대부분을 가족에게 보내면서도 섬유디자인 공부에도 일부 '투자'하고 있다. 

이러한 '사회적' 패션사업이 페루에서만 진행되고 있는 건 아니다. 핀란드 기업 '파필론'은 이미 2009년부터 비슷한 방식의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테무 루살라넨 대표는 "교도소 내 합리적인 작업과 재활 프로젝트 제공 외에도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제품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덴마크의 패션브랜드 '카셀'도 철장 안에서 옷을 만들고 있다. 이 패션기업의 생산공장은 태국과 페루의 여성교도소 2곳이다. 창업자인 베로니카 도수자는 "케냐의 한 여성교도소를 방문했을 때 '여성 재소자들에게 가장 나쁜 일은 아무런 할 일이 주어지지 않음으로 해서 우울증을 앓는 것'이라는 간수의 말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했다. 

플로리안 이르밍거 국제 형벌개혁회의 대표는 "죄수들이 이용당하지 않는다면 기업들이 제공하는 일자리에 찬성한다"고 말했다. 물론 그 전제는 수감자가 자유롭게 노동에 대해 합의하고 계약하는 것이다. 그는 "교도소 노동은 '값싼 노동'으로 보여지는 경우가 너무 많다"면서 "감옥에서의 노동은 그 죄수가 지역사회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기회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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