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주택 매각령’ 공염불

입력
2020.07.02 18:4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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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관계자들이 지난 1일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청와대 다주택 공직자 주택처분과 ?부동산 투기근절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뉴스1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관계자들이 지난 1일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청와대 다주택 공직자 주택처분과 ?부동산 투기근절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뉴스1


‘공염불(空念佛)’은 실천이나 내용이 따르지 않는 주장이나 말을 비유적으로 일컫는 단어다. 청와대가 또 한번 공염불을 한 셈이 됐다.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은 지난해 12월 문재인 대통령 주재 회의 직후 “수도권에 두 채 이상 집을 보유한 청와대 고위공직자들은 이른 시일 안에 한 채를 제외한 나머지를 처분하라”는 ‘다주택 매각령’을 내렸다. 집값 상승세가 잡히지 않는 가운데,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 청와대 공직자들의 다주택 상황을 문제 삼자, “고위공직자들이 솔선수범 하자는 취지”라고 했다.

▦ 수도권에 2주택 이상을 소유한 청와대 비서관급 이상 11명의 명단이 나돌았고, 매각 시한이 6개월로 잡혔다는 얘기도 나왔다. 당정도 1급 이상 공직자 695명 중 다주택자 205명, 여당 현역 의원 129명 중 다주택자 28명에 대해 다주택 처분 권고를 내렸다. 하지만 최근 경실련이 파악한 결과, 당시 청와대 해당자 대부분(8명)조차도 여전히 다주택을 처분하지 않았다. 그 결과 1인당 보유 부동산 평균가격이 2017년 5월 11억7,831만원에서 지난 6월 현재 19억894만원으로 올라 62%의 집값 상승을 누렸다.

▦ 여론이 들끓자 노 실장은 2일 참모진에 다주택 매각을 재차 강력 권고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이번 일은 말 안 들은  다주택 참모진의 잘못보다, 애초부터 공염불 가능성이 높은 일을 섣불리 ‘보여주기’식 이벤트로 공식화한 청와대의 잘못이 크다고 봐야 한다. 고위공직자라고 해서 개인자산을 무조건 내다 팔란 건 애초부터 무리한 요구였다. 제대로 하려고 했다면, 아예 공직자윤리법 또는 임용규정을 강화하거나, 아니면 정권 내 비공식 캠페인으로 내실 있게 일을 추진했어야 했다.

▦ 요즘 정책인지 캠페인인지 모를 시책들이 막연한 정의나 선의에 기대 요란하게 추진됐다가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 코로나19 재난지원금만 해도 당정은 고소득자들의 자발적 기부가 1조원에 이를 것이라는 기대를 내세우며 전 국민 지급안을 밀어붙였으나, 실제 기부액은 약 282억원(0.2%)에 지나지 않아 망신을 자초했다. 국정이 그렇다 보니, 최근 최저임금위에서는 대기업이 기금을 만들어 취약 근로자를 지원하자는 매우 ‘낭만적인 제안’까지 등장했을 정도다. 국정 신뢰도를 위해서라도 공염불로 끝날 어설픈 ‘감성 시책’은 더 이상 없어야 하겠다.

장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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