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종원이 뭐 어때서!

입력
2020.07.02 18:00
수정
2020.07.02 18:26
26면


김종인의 '백종원 대통령론' 현실성 없지만
확고한 사업철학, 경청과 소통, 고객지향 등
정치인이라면 그의 호감 이유는 새겨봐야

백종원이 SBS ‘백종원의 골목식당’에서 떡튀순집 사장님에게 조언을 건넸다. 방송 캡처

백종원이 SBS ‘백종원의 골목식당’에서 떡튀순집 사장님에게 조언을 건넸다. 방송 캡처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대위원장이 꺼낸 백종원 대통령 후보 얘기를 ‘다큐’로 받아들일 사람은 없다. 통합당 의원 몇몇이 발끈하긴 했지만 그건 이 발언에 정치적 무게를 둬서가 아니라, 김종인 위원장에 대한 모멸감과 불쾌감의 표출이었다. 하지만 다큐가 아니라고 해서 다 ‘개그’로 넘길 건 아니다. 대체 왜 백종원일까.

김종인 대표는 백종원씨를 거론하면서 대중적 호감을 언급했다. 하지만 대중이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한둘인가. 호감도로만 보면 ‘백종원보다 임영웅’이란 얘기가 맞을 수도 있다. 중요한 건 호감 자체가 아니라 호감의 내용인데, 이 점에서 백종원씨에게선, 특히 그를 대중의 스타로 만들어 준 TV프로그램 '골목식당'속 모습에선, 여타 셀럽들과는 확연히 구분되는 그만의 특별한 ‘호감자산’이 발견된다. 신뢰가 결합된 호감, 그래서 일회성 아닌 지속 가능한 인기 요소가 그에겐 형성되어 있다.

백종원의 호감자산 첫 번째는 확고한 자신만의 직업 철학이다. 그는 기본적으로 돈 버는 사업가다. 그런데 이윤추구의 원칙이 아주 독특하다. 좋은 식재료에 창의적 레시피를 더하되, 가급적 낮은 가격을 책정하는 ‘가성비’ 전략이 핵심 포인트다. 식당주인 입장에선 고급 재료를 쓰니까 혹은 잘 팔리니까 비싸게 받고 싶겠지만 그렇게 해선 동네 식당은 절대 오래갈 수 없다. 오히려 음식가격을 소비자 기대보다도 낮게 정함으로써 손님이 오고 또 오게 해, 결국 적은 마진이 많이 쌓이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일관된 영업철학이다.

두 번째는 고객을 두려워하라는 것. 방송에서 백종원씨의 조언을 받은 식당들은 일단 특수를 누린다. 그 때마다 백종원씨는 식당 주인들에게 방송 끝나도 가격 올리지 말고, 메뉴 늘리지 말고, 양 줄이거나 식재료 바꾸지 말라고 강조한다. 귀에 못이 박이도록 절대 초심 잃지 말라, 손님 많아졌다고 오만해지지 말라, 손님은 결코 속일 수 없다고 신신당부한다.

셋째는 소통. '골목식당'에 나오는 식당들은 대부분 문 닫기 직전 상황이다. 백종원씨는 우선 음식 맛을 보고 주방 냉장고 청결상태, 식재료 신선도, 조리방법과 시간 등 모든 것을 체크한 다음, 결론을 말하기 전 식당 주인의 얘기를 경청한다. 대부분 주인들은 장사 부진으로 자신감이 극도로 떨어진 상태. 솔루션을 찾는 과정에서 그는 질책도 하지만 위로와 격려를 아끼지 않으며, 정답을 직접 제시하기보단 주인 스스로 문제를 인식하고 고쳐나갈 수 있도록 유도한다. 한번에 안 되면 두 번 세 번 기다려 주기도 한다.

넷째는 늘 연구하는 자세다. 그는 셰프가 아니지만 종종 새로운 레시피나 소스를 즉석에서 만들어낸다. 베테랑 식당 주인들도 깜짝 놀랄 정도다. 오랜 세월 직접 경험하고 공부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그가 음식과 식재료를 찾아 전국 팔도 현장을 누빈 사실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하다 보니 ‘백종원 찬가’가 된 것 같다. ‘TV 밖 백종원’에 대해선 비판도 있지만, 어차피 그가 대통령 후보가 될 일은 없을 테니 하나하나 ‘검증’할 필요는 없겠다. 대신 대통령 혹은 리더를 꿈꾸는 정치인이라면, 백종원씨가 대선판에 소환되는 현실을 희화화로만 보지 말고 그가 호감받는 이유에 집중했으면 한다. 정치와 경영의 영역이 다르다는 것 인정하고, 백종원 개인도 지워 버리고, 그냥 국민들이 좋아하는 그의 장점만 복기했으면 한다. 흔들리지 않는 자기만의 확고한 직업 철학, 소비자(국민)를 두려워하는 겸손, 초심을 잃지 않고 잘 나갈 때 오만을 경계하는 마음가짐, 골목식당 주인(서민)들에 대한 연민, 끝까지 들어주고 함께 답을 찾는 경청과 소통의 자세, CEO가 됐음에도 항상 연구하고 현장을 찾아다니며 배우려는 태도, 그리고 사업적 성공. 이 정도 자산을 가진 리더라면 대통령감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일시적 호감은 누구나 받을 수 있지만, 콘텐츠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으면, 호감은 금방 밑천이 드러난다.

이성철 콘텐츠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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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철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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