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를 산 20세기 작곡가

입력
2020.07.03 04:30
수정
2020.07.03 11:03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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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시 야나체크(7.3)


체코 음악가 야나체크는 낭만주의 시대를 살면서 현대 표현주의 음악의 새 장을 고독하게 개척했다.brnoexpatcentre.eu

체코 음악가 야나체크는 낭만주의 시대를 살면서 현대 표현주의 음악의 새 장을 고독하게 개척했다.brnoexpatcentre.eu


유네스코는 2017년 체코 작곡가 레오시 야나체크(Leo? Jana?ek, 1854.7.3~1928.8.12)의 자필 악보 및 문서 컬렉션(모라비아 박물관 소장)을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했다. 악보와 교정본, 필사본 외에 그가 숨지기 전까지 혼자 쓴  음악  문학 과학서적 등에 대한 성실한 자필 비평은 그 자체로 문화사적 가치가 돋보였다. 유네스코는 야나체크를  '20세기 음악사에서 가장 진보적인 음악'을 구현한 작곡가라 평했다. 그가 방대한 자필 자료를 남긴 건 실은 세계가 그를 주목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아니 홀대하고 배척했기 때문이었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지배를 받던 북모라비아(현 체코) 브르노에서 태어난 야나체크는 11세에 교회 수도원 성가대에서 음악 공부를 시작했고, 브르노 사범학교를 거쳐 프라하 오르간학교와 빈 음악원에서 수학했다. 그는 음악 교사로서, 작곡가로서 많은 곡을 썼지만, 세상이 그의 음악에 귀를 기울인 시기는 생애 마지막 10년가량에 불과했다.

야나체크는 모두가 낭만주의의 감미로운 음악에 황홀해하던 시기에 표현주의의 새 영역에 진입했다. 비범한 음악지식과 감각을 지닌 후대의 체코 출신 작가 밀란 쿤데라는 '낭만주의 거장들의 연장자'로서 '현대 음악의 거인'이 된 작곡가라고, 유네스코의 평가를 변주했다. 야나체크는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보다 10년 먼저 태어났고, 현대 음악의 거장 말러보다 6세가 많았다.  

야나체크가 감당한 소외는 쿤데라에 따르면, 복합적이었다. 실존조차 위협받던 유럽 약소국 시골 출신이라는 한계가 하나였고, 모국으로부터도 멸시당한 게 또 하나였다. 그의 낯선, 예컨대 스메타나의 음악과는 현저히  이질적인 그의 음악은 모국의 음악계로부터 철저히 외면당했다. 그를 소개한 자료들이 어김없이  언급하는  ‘성마른 기질’과 '비타협적인  독설'도 원인이 됐을 것이다. 하지만 쿤데라는 “이 작은 나라는 역사상 그보다 더 위대한 예술가를 가진 적이 없다”(‘사유하는 존재의 아름다움’, 청년사)고 썼다.

쿤데라의 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원작으로 한 1988년 영화 ‘프라하의 봄’에는, 역시 쿤데라의 제안으로 야나체크의 곡 4편이 삽입됐고, 무라카미 하루키는 소설 ‘1Q84’의 도입부를 야나체크 만년의 관현악곡 ‘신포니에타’로 열었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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