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산 관광, 철도연결 미국과 상당히 협의한 상황....북한 반응이 관건"

입력
2020.07.02 20:00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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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형 국립외교원 원장은 2일 서울 서초구 국립외교원에서 한국일보와 만나 북미가 불신을 해소하며 비핵화 협상을 진척시켜 나가기 위해서는 "포괄적 합의와 단계적 실천이 최선"이라고 말했다. 정준희 인턴기자.

김준형 국립외교원 원장은 2일 서울 서초구 국립외교원에서 한국일보와 만나 북미가 불신을 해소하며 비핵화 협상을 진척시켜 나가기 위해서는 "포괄적 합의와 단계적 실천이 최선"이라고 말했다. 정준희 인턴기자.


북미 하노이 정상회담 실패 이후 1년 넘게 멈춰 섰던 남북미 관계에 다시 긍정적인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

개성 남북연락사무소 폭파 등으로 대남 도발에 나선 북한이 최근 군사행동 보류를 선언했다. 이어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유럽연합(EU) 지도부와 화상회의에서 미 대선 이전 북미 정상이 다시 대화할 수 있도록 전력을 다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대화의 동력을 유지해야 한다는 “이런 생각이 미국 측에 전달”됐고 미국도 “공감해 노력 중”이라는 게 청와대 고위당국자의 설명이다.

미 대선 전 북미 회담 가능성에는 회의적인 시각이 지배적이지만 다음 주로 예상되는 스티븐 비건 국무부 부장관 겸 대북특별대표의 방한도 이런 기대에 힘을 실어 준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 역시 2일 기자 간담회에서 “북한이 한반도 정세를 악화시키는 추가 조치는 일단 멈춘 상태”라며 “북한의 대화 복귀를 위해 전방위적으로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김준형 국립외교원장을 2일 서울 서초동 외교원에서 만나 향후 북미 회담 가능성을 포함해 최근 논란인 볼턴 회고록, 북한의 도발 저의 등에 대해 들었다.

-존 볼턴 전 미국 백악관 안보보좌관 회고록이 적지 않은 논란이 되고 있다.

“안보보좌관이란 애초 각 부처의 권한을 조정하는 역할이지만 갈수록 실질적인 정책결정권까지 갖는 추세다. 대통령 권한이 강한 나라일수록 그런 경향이 두드러진다. 외교가에 ‘관객비용’이라는 개념이 있다. 타국과 협상이 국내 정치에 미치는 영향을 말한다. 외교란 일부 양보하면서 상대의 양보를 얻어 내는 협상의 과정이다. 하지만 그 과정이 낱낱이 밝혀질 경우 국내 정치, 여론의 심각한 역풍을 맞을 수 있다. 그래서 바로 모든 일을 공개하지 않는다. 그 점에서 본다면 중책을 맡았던 사람이 정권이 끝나지 않았는데 그 과정을 공개한 것은 심각한 문제다. 이런 일이 가능해진다면 국제사회에서 비공개 외교회담 자체가 어려워질 수도 있다.”

-보수 야당에서 회고록 내용과 관련해 문재인 정부의 해명을 요구하고 국정조사까지 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예를 들어 북미 정상회담을 정의용 안보실장이 제안해 지방선거에 이용하려 했다는 의혹 같은 것인데 이런 주장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회고록에서 언급한 여러 사안의 사실 여부는 언급된 당사자는 물론이고 트럼프,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까지 입을 맞춰 봐야 알 수 있다. 진실이 무엇인지 알기 어렵다. 설령 볼턴이 언급한 단편적인 팩트가 사실이라 하더라도 그가 극우적 시각에서 그 사실의 조각을 조합해 해석하고 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정 실장의 북미 회담 제안은 보기에 따라 여러 사람 낚은 것으로도, 주도적으로 회담을 이끌어 내려 한 노력으로도 평가할 수 있다. 다만 그것을 선거 등 국내 정치를 위한 의도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북한의 신년사에 이어 평창동계올림픽 김여정 참석 등 일련의 평화 무드에서 일어난 일이다.”

-핵무기 포기에 관심 없는 북한과 외교 쇼에 치중한 트럼프 사이에서 문재인 정부가 헛된 비핵화의 꿈에 부풀어 있었다는 비난이 있다. 결과적으로 비핵화 협상이 멈춘 상황이니 그런 주장이 전혀 틀렸다고 보기도 어려울 것 같다.

“지난 30년간 비핵화 회담은 줄곧 차관보급 수준에서 진행됐다. 그 과정에서 강경, 온건 등 온갖 방식이 검토됐다. 내용적으로 거의 다 해 본 거나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문제가 풀리지 않았다. 그 점에서 지난 2년간 ‘톱다운’ 방식이라는 새로운 접근의 의미는 적지 않다. 북미 모두 이해가 제각각이었을 수 있다. 그를 엮어 내는 것이 그만큼 어렵다. 볼턴은 회고록에서 이를 ‘창조(Creation)’라고 했다. 그는 환상이라고 여기지만 우리 처지에서는 어려운 것을 만들어 가는 과정이었다. 원만히 풀리지 않아 안타깝지만 그 동안 전쟁 걱정 안 한 것만도 성과다.”

-트럼프 정부의 일련의 대북 정책이 중구난방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이란, 시리아, 중국 등 대외정책을 봤을 때 전체적으로 트럼프 정부는 대외강경 쪽이다. 그런데 북한만 그런 기류와 다른 방향으로 다뤘다. 거꾸로 말하면 북한 문제에서 트럼프는 정부 구성원과 생각이 달랐다고 말할 수 있다. 볼턴이 가장 강하게 반대하는 쪽이었겠지만 전체적으로 트럼프에 반대하는 기류가 강했다고 볼 수 있다. 트럼프가 밀고 나가니까 반대 못 한 것이다.

비핵화 협상은 과거 실무에서 했던 내용이 위로 올라가지 않는 문제가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위에서 하면 아래로 내려갈 줄 알았는데 결과적으로 그게 안 됐다. 트럼프의 즉흥적인 결정이라는 한계도 있지만 미국 내부 반대가 많았고 결론적으로 트럼프가 그것을 제압하지 못했다.”

-북미 비핵화 협상이 지금까지 성과를 토대로 재개될 수 있을까? 있다면 어떤 방식으로 가능할까.

“하노이 회담이 두고두고 아쉬운 것은 양측이 하루 종일 안을 교환해서 서로 원하는 걸 분명하게 한 뒤 결론 낸 게 아니라는 점이다. 첫 카드가 안 맞아 미국이 차 버린 것이다. 북한은 영변 핵시설 폐기의 대가로 실은 부분적인 제재 완화를 원했던 것으로 보인다. 서로 타협하면서 오후쯤 적정 수준에서 합의해 일단 회담을 끝내고, 다음 3차 회담에서 더 진전해 갈 수 있는 문제였다.

과거 비핵화 협상에서 알 수 있듯 다시 실무로 가는 것은 북한이 원하지 않는다. 결국 신뢰의 문제다. 북한은 단계론을 주장하고 미국은 포괄론을 이야기한다. 미국은 북한을 못 믿는다. 당신은 나쁜 국가이니 먼저 비핵화하면 체제보장, 경제지원하겠다는 거다. 북한은 그걸 못 믿는다. 리비아가 될까 두려운 것이다. 그래서 우리 정부는 합의를 포괄적으로 하되 두세 단계의 중간 과정을 거치면 북미 다 만족할 수 있지 않느냐고 이야기한다. 포괄적 합의와 단계적 실천을 조합한 이 방법이 제일 합리적이다.

국제정치에는 안보 딜레마라는 것이 있다. 불신이 존재하는 국제정치에서 먼저 포기하는 쪽이 죽는다는 이야기다. 북한이 속여도 미국은 체면 손상은 될지언정 죽지 않는다. 하지만 반대 경우 북한은 죽을 수 있다. 강자의 양보 없이 협상은 불가능할 것이다.”

-미국 대선 결과가 향후 비핵화 협상의 중요 변수다. 정권이 교체된다면 비핵화 협상에 어떤 변화가 올까.

“돌이켜 보면 2017년은 최악이었고, 2018년은 대반전이고, 2019년은 그 중간쯤이다. 피해야 할 것은 2017년이고, 우리가 바라는 것은 2018년의 재현이지만 2020년은 2019년의 반복일 가능성이 높다. 만약 정권이 바뀐다면 민주당은 전통적인 방식으로 검증, 사찰 등의 단계를 밟아 가는 비핵화를 주장할 것이다. 오바마 정권의 전략적 인내와 비슷해질 수도 있다. 그러면 이도 저도 아닌 상황이 지속된다. 북한이 제재를 얼마나 버틸지 알 수 없지만 1990년대 ‘고난의 행군’ 때보다 지금 사정이 나쁘지는 않은 것 같다.”

-최근 북한의 도발에 어떤 저의가 있다고 보나.

“북미 회담에 진척이 없는 상황에서 북한은 자신들만 후퇴한다고 생각했을 수 있다. 트럼프는 북핵 위협이 줄었다는 것을 성과로라도 내세우지만 북한은 제재가 지속되면서 계속 후퇴하는 것이 사실이다. 11월 미 대선까지 이 같은 현상 유지가 불가피하니 그에 대한 대가를 바란 것일 수 있다. 하노이 회담 정리 과정에서 자력갱생을 선언한 만큼 내부를 다져야 할 필요성도 생겼다. 코로나19 충격이나 대북전단도 이유가 될 수 있다.

그렇다고 북한이 2017년처럼 전략도발로까지 나아가지는 않을 것이다. 그 동안 대남 비방ㆍ도발에 김정은은 빠지고 김여정이 나섰던 것은 판을 깨지 않겠다는 마지노선을 둔 것이다. 중국, 러시아도 그런 메시지를 북한에 보낸 것으로 안다.”

-내년으로 접어들면 문재인 대통령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데다 국내 정치가 대선 국면에 접어든다. 중재자 역할에도 제약이 커질 수 있다. 향후 비핵화 협상에서 우리 정부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나.

“한반도 문제는 원래 우리 문제이지만 거기로 들어가는 게이트키퍼가 ‘핵’이 된 상황이다. 북미가 이 문제를 어떤 방식으로든 해결해야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고 그를 위해 우리는 중재자 역할을 할 수밖에 없다. 문 대통령이 거듭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겠다, 남북이라도 움직이겠다고 했다. 정부가 북한에 제안한 개인관광, 철도연결 등 여러 협력사업은 미국과도 많이 협의한 것으로 안다.

적당한 기회를 보고 있던 중인데 북한이 최근 도발로 우리 손을 묶어 버렸다. 북한이 변하지 않으면 우리가 또 무언가 제안하기 쉽지 않다. 하지만 정부가 이 문제에서 승부를 볼 수 있는 것도 길게 잡아야 1년 정도다. 북한에서 뭔가 긍정적인 조치가 있으면 준비한 것을 풀어놓을 수 있지 않을까.”

-남북 협력사업을 한미 워킹그룹이 발목 잡는다는 지적이 있다. 그 벽을 넘어설 수 있을까.

“한미 워킹그룹은 좋게 활용하면 미국을 설득하는 창구가 될 수 있다. 애초 우리가 받아들인 취지는 그런 방향이었지만 하노이 회담 실패 이후 북미 협상 분위기가 식으면서 분위기가 바뀐 부분이 있다. 발목 잡는다는 비판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구태여 이를 해체하기보다 원래 취지대로 우리가 미국을 설득하는 수단으로 활용하는 것이 더 바람직해 보인다.”

김범수 논설위원
논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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