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점 해체에도 질서는 필요하다

입력
2020.07.03 01:0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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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1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청사(왼쪽) 옆으로 서울중앙지검 청사 모습이 보이고 있다. 대검과 서울중앙지검은 검언유착 의혹 사건 처리 과정을 두고, 공개적으로 격돌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1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청사(왼쪽) 옆으로 서울중앙지검 청사 모습이 보이고 있다. 대검과 서울중앙지검은 검언유착 의혹 사건 처리 과정을 두고, 공개적으로 격돌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철옹성 같던 검찰 전성시대도 서서히 저물고 있다. 특별수사 기능을 상당 부분 대체할 공수처가 곧 출범하고, 검경 수사권 조정안도 경찰의 승리가 확실하다. 정권 내내 검찰 힘빼기가 계속됐지만, 검란은 기미도 찾기 어렵다. 검찰은 약해졌고, 조직력은 모래알이다.

돌이켜 보면 검찰이 막강해 질 수 있었던 것은 결코 스스로 잘해서가 아니라 시대적 상황에 힘입은 바 컸다. 검찰은 유신정권 때 청와대ㆍ군부ㆍ중정의 위세에 눌렸고, 공안이 만사이던 5공화국 당시에도 위상이 안기부나 대공경찰보다 못했다.

검찰이 센 힘을 얻은 것은 문민정부 이후 세상이 좋아지면서다. 물리적 통제장치(군경)에 더는 의지하지 못하게 된 정치권력은 검찰을 동원한 사정 드라이브로 주도권을 잡았다. 재벌총수, 정치인, 정보기관 수장, 전직 대통령… 검찰이 잡아넣지 못할 권력은 없었다.

정치가 갈등 해결 기구로 역할을 다하지 못하는 사이, 검찰은 각종 정치ㆍ사회적 사건을 당겨 와 ‘사법화’하며 때에 따라 정치권력을 압도했다. 때로 정치와 결탁하며 때로 조직 이익을 위해 정치에 맞서면서, 주도권을 잃지 않았다.

정치검사들은 소수였지만, 그 폐해는 조직 전체에 오점을 남길 만큼 컸다. 고인 물이 썩지 않을 방도가 없듯, 견제받지 않은 검찰은 공익이 아닌 조직 이익에 복무한다는 비판을 피하지 못했다. 결국 한때 사정(司正)의 청량감에 열광했던 여론은 검찰로부터 신뢰를 거둬들였다. 그 신뢰 상실의 결과가 바로 지금의 검찰개혁이 여론의 지지를 받는 원동력이다.

글의 절반을 검찰의 과오에 할애한 것은 그만큼 검찰개혁이 거스를 수 없는 과제임에 동의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떤 독점권력이든 해체 과정엔 질서가 존재해야 한다. 검찰이 밉다고 독점구조의 무질서한 해체를 방치하면, 국가 소추기능에 지장을 주고 개혁이 엉뚱한 지점에 도달해 버리는 치명적 부작용을 낳는다.

공공서비스를 담당하는 독점기관의 주도권 상실은 민간 독점기업의 퇴장과 다른 차원이다. 상품 시장 독점구조 해체는 자유경쟁을 활성화해 국가 전체 이익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러나 권력의 속성상 독점 체제가 무너지면 강한 자, 힘센 자, 돈 많은 자가 자기들에게 유리한 구조로 힘의 관계를 재편하려 한다. 이때 필요한 것이 질서와 견제다.

하지만 지금 검찰권력 분산 과정에 질서와 견제는 찾기 어렵다. 무질서한 해체에 가깝다. 밖에서는 법령상 권한이 아닌 독한 언어와 인신공격을 통해 힘을 빼려 하고, 안에선 총장과 반총장파가 대놓고 정치투쟁을 벌인다. 검찰 간부 A가 자기 상관 B의 뒷얘기를 언론에 전달하고, 그 사이 A의 지휘를 받는 검사 C가 또 다른 언론에 A의 뜻과 반하는 얘기를 흘리는 게 지금 검찰의 현실이다. 사건을 어떻게 정의롭게 처리할 것인지 고민하지 않고, 어떻게 하면 사건을 저쪽 손에서 빼앗을 것인가 궁리하는 검사들이 눈에 보인다. 본청과 지방청이 날선 입장문을 언론에 뿌리며 서로를 탓하는 모습은 여야의 대결과 다르지 않다.

검찰 독점구조가 질서 없이 해체될 때 일어날 수 있는 일을 미리 보여준 다른 사례는 바로 수사심의위원회다. 수사심의위에서 피의자가 신청해 원하는 결과를 얻은 첫 사례가 이 나라 최대 재벌 경영권 승계 사건이었다는 점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예규상 기구가 법률상 권한(공소권)을 무력화할 수 있는 체계 역전 현상은 국가소추주의 원칙을 잠식한다. 기소를 피할 수 있는 이런 편법 장치는, 돈에 구애받지 않고 변호인을 살 수 있는 자에게 유리한 제도임이 드러났다.

검찰 독점구조 약화는 분명 시대적 과제다. 그러나 질서 없이 견제 없이 검찰의 손을 떠난 그 권한이 과연 어디로 향할 것인가도 걱정할 때다. 질서 없는 공권력의 해체는 돈, 권력, 지위를 지금 현재 보유한 쪽에 더 유리하게 마무리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기자사진] 이영창

[기자사진] 이영창


이영창 사회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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