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예술 걸작 '나전국화넝쿨무늬합' 일본에서 돌아왔다

입력
2020.07.02 16:00
수정
2020.07.02 16:36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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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일본에서 환수한 고려 나전국화넝쿨무늬합. 문화재청 제공

지난해 12월 일본에서 환수한 고려 나전국화넝쿨무늬합. 문화재청 제공


2일 오후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 정재숙 문화재청장, 배기동 국립중앙박물관장, 최응천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이사장이 하얀 막을 걷어내자 유리함 안의, 성인 손바닥보다 작은 반화(半花ㆍ꽃의 반쪽)형 유물 하나가 자태를 드러냈다. 고작해야 길이는 10㎝, 무게는  50g. 이 조그만 녀석이 대체 무엇이길래 정 청장을 비롯, 문화재 관련 기관장을 다 불러 모았을까.

바로 12세기 고려 예술을 대표한다는 '나전국화넝쿨무늬합(나전합)'이다. 나전합은 꼼꼼히 들여다 보면 볼수록 화려함의 극치를 자랑했다. 뚜껑과 몸체 표면엔 새끼손톱보다 작은 전복껍데기(전복패) 조각들로 국화 꽃잎, 넝쿨 무늬들을 장식해 넣었다. 상자 테두리를 꾸미고 있는, 연이어 촘촘하게 박힌 작은 동그라미 모양의 장식 또한 전복패였다. 꽃의 중앙부를 차지한 것은  얇게 세공한 바다거북 등껍질(대모)이었다. 이들 장식 문양들은 10원짜리 동전보다도 작은 크기였지만, 정교함이 뛰어났다.

이 나전합은 그 자체로 우수하기도 하지만, 사연도 있다. 일본인 소유 유물이라는 점. 그래서 사실 이  나전합은 2006년 국립중앙박물관이 기획한 전시 '나전칠기-천년을 이어온 빛'에서 한국에 처음 공개됐었다. 그 뒤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 물밑 교섭 작업에 나섰다. 지난해 12월 마침내 매입계약 체결을 성사시켰다. 이날 드디어 한국에서 제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정 청장은 "나전합을 환수한 직후 코로나19 사태가 터졌는데, 만약 협상과정이 더 길어졌다면 환수 작업이 기약없이 미뤄졌을 것"이라며 기뻐했다.


지난해 12월 일본에서 환수한 고려 나전국화넝쿨무늬합. 문화재청 제공

지난해 12월 일본에서 환수한 고려 나전국화넝쿨무늬합. 문화재청 제공


고려 나전칠기는 청자, 불화와 더불어 고려시대 미의식을 상징하는 공예품이다. 고려 때 이미 중국 송나라에서 온 사신 서긍은 '고려도경'(1123년)에다 고려의 나전칠기를 두고 "지극히 정교하고, 귀하다'"고 찬사를 보냈다. 이 고려 나전칠기 가운데 지금껏 전해지는 건 불과 22점 뿐이다. 훼손되지 않은, 온전한 형태로 보존된 건 15점에 불과하다. 그마저도 대부분 미국, 일본 등 해외 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한국에 온전한 형태로 남은 것은 단 2점, '나전국화넝쿨무늬불자'와 '나전경함' 뿐이다. 이번에 나전합이 추가되면서 3점으로 늘었다. 

여기다  이 나전합은 크기나 형태로 봤을 때 '자합(子盒)'으로 보인다. 자합은 큰 합 속에 들어가는 작은 합을 말한다. 자합 형태의 칠기는 전 세계에서도 단 3점만 온전한 형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희소성이 더 큰 셈이다.

국립문화재연구소는 나전합을 환수하자마자 엑스선(X-ray) 등을 활용, 유물에 대한 정밀 분석에 들어갔다. 그 결과 이 나전합은 △나무로 모양을 만든 위에다 천을 대고 옻칠을 한 '목심칠기(木心漆器)'라는 점 △나무판자에 일정한 간격으로 미세한 칼집을 내서 부드럽게 꺾어 곡선형 몸체를 만들었다는 점 △바닥판과 상판을 만든 뒤 측벽을 붙여 몸체를 완성했다는 점 등을 확인했다. 모두 전형적인 고려 나전칠기 제작기법이다. 김동현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유통조사부장은 "고려 나전에 사용된 기술과 재료가 총 망라돼 있을 뿐더러, 다른 해외기관 소장품과 비교해도 문양 구성이나 정교함이 우수하다"고 설명했다.

나전합은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이관된다. 12월로 예정된  특별전 '고대의 빛깔, 옻칠'을 통해 일반에 공개된다. 배 관장은 "작지만 큰 빛을 내는 유물"이라며 "코로나19로 지친 국민들 마음을 밝혀 줄 것"이라고 기대했다.

장재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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