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국공 사태, 언제든 또 터질 수 있다

입력
2020.07.02 06:00
27면

지난달 30일 서울 홍대입구역에서 인국공 직원이 공정하고 투명한 정규직 전환을 위한 전단지를 배포하고 있다. 뉴스1

지난달 30일 서울 홍대입구역에서 인국공 직원이 공정하고 투명한 정규직 전환을 위한 전단지를 배포하고 있다. 뉴스1


약 50년 전인 1971년 여름 미국 스탠퍼드대학의 한 건물 지하실에서 심리학 실험이 진행됐다. 이 실험은 감옥 시설을 만든 뒤 실험참가자들을 무작위로 나누어 간수와 죄수 역할을 맡기고 실제 경찰이 죄수역들을 집에서 체포하는 것으로 시작하는 등 실제 상황과 유사하게 만들었다. 사회적 역할과 권위, 소속집단 등이 개인 심리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를 목적으로 한 이 실험은 그러나 계획됐던 2주의 반도 채우지 못하고 6일째 중단된다. 간수역들의 폭력적 행위와 이에 따른 죄수역들의 심리적 충격 때문이었다. 실험참가자들은 모두 대학생이었지만 지하실 감옥에 들어 가고 얼마 뒤 죄수와 간수의 사회적 역할을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이 실험은 사회적 역할이 주어지면 개인은 자기 집단에 대한 소속감이 형성되고 다른 집단 구성원에 폭력까지 행사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충격적이다. 인간이 구분과 그에 따른 차별을 얼마나 쉽게 받아들이는지 드러낸 것이다. 그리고 우리 사회의 거의 모든 부분이 크고 작은 차이에 따른 구분으로 시작해 사회적 보상이 달라지는 차별적 분배 체계로 구성돼 있다는 측면에서 이 실험의 결과는 가슴을 더욱 서늘하게 만든다. 

소위 ‘인국공’ 사태의 여진이 계속되고 있다. 시작이 문재인 대통령의 인천공항 방문 때 나온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공약이라고들 하지만 문제의 기원은 더욱 옛날로 거슬러 올라간다. 1997년 IMF 사태 이후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효율성 제고를 명분으로 비정규직을 양산한 것이 시초라고도 한다. 어떻든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구분되는 순간 개인은 자신의 역할을 받아들이고 충실히 업무를 이행하게 된다. 구분을 결정지었던 방식의 정당성에 대한 의문의 목소리는 끝없이 나오겠지만 일상적으로 굴러가는 생활의 바퀴소리에 묻혀 자연스러운 질서가 되고 체제로 굳어진다. 

잠시 진행됐던 실험에서 폭력을 행사할 정도로 사회적 역할에 충실하게 되는 것이 인간인데 거대한 제도적 과정을 거쳐 결정된 구분을 부정하기는 아주 어렵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구분도 그렇다. 우리 사회에서 청년들의 정규직 취업은 희소 가치가 된 지 오래다. 그 구분이 갖는 사회적 의미를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취업준비생들은 정규직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하기 위해 온갖 스펙을 탑처럼 쌓아올리며 노력한다. 3, 4년의 취업준비 기간은 보통이다. 휴학과 졸업연기도 불사하며 매달린다. 그럼에도 청년 취업자 가운데 43%가 비정규직으로 출발한다고 한다. 이들은 또 비정규직으로서의 역할을 받아들이고 업무에 충실한 동시에 끝없이 정규직으로의 전환을 시도할 것이다. 이 같은 과정을 거치며 정규-비정규의 구분은 더욱 크게 느껴지고 그 사이의 전환에 날카롭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이는 너무 크고 차별적 보상이 때로는 폭력적으로 집행되는 모습을 일상적으로 목도하는 상황에서 구분의 원칙이 조금이라도 흔들리는 것처럼 보이면 당장 공정성의 침해로 인식한다. 인천국제공항공사의 비정규직 일부를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는 정책은 일부 부정확한 정보의 유통과 맞물려 원칙의 부재, 즉 공정성의 침해로 받아들여졌다. 이 같은 문제는 앞으로 더욱 심각해질 것이다. 소위 선진국에 들어선 한국 사회는 인국공 사태와 같이 이제까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선진국 고유의 문제를 겪게 될 것이다. 출산 감소와 저성장이 가져오는 선진국형 사회문제는 이전 시대 개발도상국의 방식으로 해결할 수는 없다. 대학생들이 입는 과잠(학과 잠바)에 대학교 이름은 물론, 출신 고등학교까지 새겨 넣으며 구분 짓고자하는 사회에서 그 구분의 원칙이 흔들리는 듯 보일 때 또 다른 인국공 사태는 언제든지 발생한다. 이번 인국공 사태가 처음 접하는 선진국형 문제를 소위 선진국의 시각에서 이해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이재국 성균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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