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사람이 있어요!

입력
2020.07.01 16:00
수정
2020.07.01 17:59
25면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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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친구와 둘이서 일본 여행을 할 때의 일이다. 스마트폰이 나오기 전이니 길을 찾으려면 지도를 보거나 사람에게 물어보는 방법밖에는 없던 시절에 내가 길 가던 일본인에게 일본어로 길을 물어보았는데, 이상하게도 일본어를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 내 친구와 눈을 맞추고 친구에게 길을 알려주는 것이었다. 한두 사람이 그러는 것이 아니었다. 얼굴 전면에 화상을 입고 피부 이식술 후 재건 수술을 한참 하던 때이니 몹시 남달랐던 나를 마주하는 것이 민망한가보다 생각은 들었지만, 눈은 내 친구를 보며 대화는 나와 하고 있는 상황이 꽤 불쾌해졌다. 이런 일은 일본에서만 겪은 게 아니다. 겉모습이 다른 장애인을 쳐다보는 것이 실례인 것 같아 다른 곳을 보며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쳐다보는 것과 눈을 마주치고 이야기하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눈을 보며 말하는 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대화에 가장 기본적인 자세이다. 또 시각장애인과 대화를 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눈의 초점을 서로 맞추기 어렵다 하더라도 얼굴을 마주하고 대화해야 옳다. 내 행동이 실례가 될지 안 될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면, 한 가지 질문만 하면 된다. “다른 사람이 나한테 이렇게 하면 내 기분은 어떨까?” 내가 그렇게 대해졌을 때 기분이 나쁘다면, 장애인도 기분 나쁜 일이다. 왜냐하면 장애인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 장애인의 내적인 상태를 감지하고, 감정이입을 하고 공감해주기를 원하는 것이 아니다. 이런 것은 가족이나 친구, 동료 사이에서 하는 것이다. 사람으로조차 대해지지 않는데 어떻게 친구가 되고 동료가 될 수 있을까?

장애인을 처음 대할 때 경험이 없어서,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라서, 실수하게 될까봐 불편하고 긴장이 된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다. 불편한 상황을 피하고 싶은 것은 어쩌면 본능에 가까운 일이다. 그런데 그런 본능이 결국 장애인을 소외시키고, 참여하지 못하게 되고, 결국 차별로 이어지게 되는 것이다. 사실 장애인인 나도 다른 장애에 대해 다 잘 알고 다 편한 것은 아니다. 장애는 종류도 다양하고 개인마다 장애의 정도도 달라서, 개인이 특정 장애의 중증 혹은 경증 장애인으로 분류되었어도 같은 분류에 속한 장애인들과 결코 같지 않다. 사실 장애는 장애인 수만큼 다르다. 누구나 처음 만나는 사람과는 어렵다. 게다가 내가 잘 알지 못하는 장애를 가진 사람을 만나는 일은 더욱 그럴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만 기억해주면 좋겠다. 장애인을 처음 만날 때, 그가 가진 장애의 종류나 정도가 아니라 그도 사람이라는 사실을 먼저 떠올려주면 좋겠다. 

박사학위 논문으로 발달장애와 지적장애를 가진 사람들에 대한 비장애인의 인식과 그 변화를 가져오는 요인에 관해 연구했다. 발달장애인과 비장애인 자원봉사자가 짝을 이뤄 3일간의 여름캠프를 함께 지낸 후 자원봉사자들의 감정, 생각, 행동 의도를 포함한 인식의 변화가 일어나는지 조사했다. 통계적으로 의미 있는 변화가 나타났는데, 결과로 보인 통계적 수치보다 사실 내가 개인적으로 가장 궁금했던 것은 도대체 어떤 순간에 변화가 일어나는지, ‘아하!’ 깨닫게 되는 순간이 언제였는지였다. 그래서 자원봉사자들을 대상으로 부디 인식의 변화가 일어나는 드라마틱한 순간에 대해 풍부한 이야기를 들려주기를 기대하며 인터뷰를 진행했는데, 하나같이 들려준 응답은 딱히 이렇다 할 순간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함께 긴 시간을 보내면서 ‘그들도 사람이다’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했다. 장애가 심한 경우엔 음성 언어로 의사소통이 전혀 되지 않는 경우도 있었지만, 비장애인인 자신과 똑같이 맛있는 것은 더 먹고 싶고, 재미없는 것은 하기 싫고, 사랑하고 싶고, 사랑받고 싶은 마음을 가진 ‘나와 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배웠다는 것이다. 극적인 대답을 기다리던 내게 잊어버렸던 아주 당연한 사실을 알려주었다. 

장애인에 대한 인식의 개선은 여기에서 출발하면 될 것 같다. 장애인이 나와 같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인지하는 것. 드러난 장애라는 특성 때문에 지나쳐 버린,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어쩌면 생각지도 않았던 사실. 너무도 당연한 사실을 잊어버린 그 지점에서부터 시작하면 좋겠다. 장애인도 나와 같은 사람이기때문에 세계인권선언 제1조 “당신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롭고 존엄합니다”에도 해당되며, 헌법 제34조에 명시된 “모든 국민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가진다”에도 해당되어 내가 누리는 권리를 동일하게 누릴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요즘은 식당에 가면, 손님이 알아서 수저를 놓는 식이 대부분이지만, 내가 어렸을 때는 종업원이 사람 수대로 수저를 가져다 놓아 주는 곳이 많았고 유치원생인 내 앞에는 아예 수저를 놓아주지 않는 분들이 많았었다. 그러면 그때마다 쪼끄만 어린이였던 내가 제 몫의 수저나 컵이 없다고 “여기도 사람있어요!”라고 외쳤다고 엄마가 종종 얘기하셨었다. 수십 년이 흐른 지금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라서 장애인을 피하고, 때로는 눈도 마주치지 않는 분들께 외치고 싶다.  “장애인이 아니라 여기 사람이 있어요!”

이지선 한동대 상담심리사회복지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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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선한동대 상담심리사회복지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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