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공범자다

입력
2020.06.29 16:00

©게티이미지뱅크


1985년 텍사스주 휴스턴내추럴가스사와 네브래스카주의 천연가스 회사 인터노스사의 합병에 의해 엔론이 탄생했다. 이후 엔론은 가스운송업에서 에너지 거래 사업으로 전환하고 인수합병과 영역 확장으로 15년 만에 세계 최대 에너지기업으로 성장했다. 그들은 다양한 금융파생상품화로 이익을 키워 나갔지만 이로 인해 발생된 파생상품 손실은 철저히 감췄다. 

 사기사건은 피해자의 직접적 손해에 그치지만 분식회계로 인한 피해는 다수의 투자자와 직원들뿐 아니라 기회비용이라는 사회의 손실을 수반한다는 점에서 사기보다 규모가 훨씬 크고 더 악질적이다. 분식회계로 인해 혜택을 받는 이는 소수지만 손실은 많은 사람들과 사회 전체가 떠안게 된다. 평등의 원리에 위배되기 때문에 분식회계에 대한 법원의 판결도 상당히 무겁다.  

 그런데 우리는 마치 관행인 듯 혹은 돈 있으면 누구나 빠지는 유혹인 듯 가볍게 여긴다. 엔론이 5년간 분식회계로 감춘 게 1조 4,000억원이었다. 굴지의 회계법인 아더앤더슨은 그걸 눈감아줬다. 2001년 엔론은 3분기 실적이 6억1,800만달러 적자가 발생했다고 공시하며 2억달러의 자본감소 계획을 발표했다. 주식시장은 충격을 받았고 80달러였던 주가는 30달러로 폭락했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는 즉각 조사에 착수했고 한 달 뒤 13억달러(약 1조4,300억원)의 분식회계 사실을 발표했으며 다시 한 달 뒤 엔론은 파산보호 요청을 했다. 엔론은 1996~2001년까지 6년 연속 ‘가장 혁신적인 기업’에 선정(포춘지)되었고 ‘향후 10년간 성장 가능성이 높은 10개 기업 중 하나’로 평가받던 회사였다. 그런데 상당 부분 높은 매출과 이익은 모두 분식회계를 통해 조작된 것으로 밝혀졌다. 결국 엔론은 해체되고 아더앤더슨도 문을 닫았으며 두 명의 CEO는 모두 24년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이 회사에 투자한 투자자들과 퇴직금을 회사 주식과 연동된 퇴직연금에 가입한 직원들은 엄청난 손실을 감당해야 했다. 직장은 물론, 퇴직금까지 모두 날린 사람들도 많았다. 엔론이 1조4,000억원을 분식했던 기간은 5년이었다. 그런데 우리나라 어떤 재벌은 1년 만에 4조5,000억원을 분식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그것도 국민연금과 밀접하게 관련된 일이다. 끝내 감춰질 수 없는 일이고(그걸 예상했더라도 그까짓 것쯤이야 가볍게 돌파할 수 있다고 여겼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해결’한 게 한두 번도 아니니) 그 일로 부회장이 기소될 처지에 놓였다. 그런데 대검찰청 검찰수사심의위원회가 그에 대한 수사 중단과 불기소 권고 결정을 내렸다. 그걸 어기고 검찰이 기소할 수 있을까? 경제를 살려야 한다는 명목이란다. 그와 수하들이 저지른 범죄가 건전한 경제를 망치고 수많은 이들이 손해를 받았는데도. 그를 살리면 경제가 살아나는 게 아니라 관련된 자들을 도려내야 경제가 산다. 그가 구속되었을 때 그 기업 망하지 않았다. 엔론이 망했다고 미국 경제가 망한 게 아니다. 

 이제 그 기업은 가히 ‘언터처블’의 경지에 들어섰다. 서슬 퍼런 검찰과 법원도 그 앞에만 서면 알아서 설설 긴다. 법은 만인에게 평등한 게 아니라 1만인에게만 평등하게 자비롭다. 이러면서 법질서와 공정을 입에 달고 산다. 법복을 입고 있을 때는 이런저런 편의를 받고 법복을 벗으면 엄청난 보수를 받고 그 아래 들어가 다시 법을 우롱할 수 있는 전위대 역할을 한다. 그 순환의 고리를 깨뜨리지 못하는 한 우리는 영원히 탐욕과 돈의 노예로 살 수밖에 없다. 잘난 아비 두면 음주운전에 운전자 바꿔치기의 악행에도 집행유예고 마약 밀반입에도 집행유예 처분하는 자비롭고 관대한 법원이 가난하고 힘없는 아비의 자식들에게도 그런지 대조해 보면 금세 알 수 있다. 

 그 기업, 한두 번이 아니다. 늘 그래왔다. 그 밑동은 엄청난 재산과 기업을 물려받되 상속세는 내지 않겠다는 심산이다. 아깝기도 할 것이다. 자칫 경영권도 흔들릴 수 있을 것이다. 머리 좋은 밑엣 것들이 알아서 빠져나갈 길 찾아줬겠지만(그러라고 높은 보수 주는 것이니) 스스로 거부할 수 있어야 했다. 당당하게 상속세 내고 물려받으면 된다. 누구나 세금 내는 거 아깝다. 그러나 세금 낼 수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행복한 일이다. 그걸 제대로 하는 기업들 많은데 그 기업은 대대로 비겁한 방식으로 물의 일으키는 걸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아비에게 60억원 증여받아 16억원 증여세 내고 남은 돈으로 20년 만에 8조원으로 불린 신공에 기여한 자들까지 처벌해야 법의 정의가 설 것이다. 그러기는커녕 앞장서서 머리 조아리며 풀어줄 궁리만 하면서 어찌 법과 정의를 입에 올릴 수 있을까. 끝내 그를 구속하지 못할 것이다.(기소조차 하지 말라는데) 무소불위가 따로 없다. 모두 눈감고 입 막는다. 뭐가 그리 두려운가. 그렇게 우리는 모두 공범자가 되고 있다. 어렸을 때 아들의 소망(재벌2세)을 이뤄주지 못한, 이제는 상속세 걱정도 없는 못난 아비의 넋두리만은 아니다. 

김경집 인문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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