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의 '이간질'

입력
2020.06.26 18:00
수정
2020.06.26 18:13
22면


마스크를 착용한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지난달 30일 참의원(參議院·상원) 예산위원회에 출석해 눈을 감은 채 생각에 잠겨 있다. ?

마스크를 착용한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지난달 30일 참의원(參議院·상원) 예산위원회에 출석해 눈을 감은 채 생각에 잠겨 있다. ?


2018년 4ㆍ27 남북 정상회담이 끝난 뒤 일본 니혼게이자이 신문에는 '정보기관원이 해독한 김정은의 산책'이라는 기사가 실렸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판문점 도보다리에서 산책하며 친밀한 모습을 연출한 데 대해 "김 위원장이 산책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통역 없는 비공식 일대일 회담을 노려 외교 공작을 펼쳤다"는 내용이다. 도보다리 회담이 북한이 제안한 게 아니라 청와대에서 나왔다는 점에서 전형적인 '가짜뉴스'다. 남북 간을 이간질하려는 일본 정보기관의 '공작'이라는 뒷얘기가 나왔다.   

□ 한반도에 강력한 통일 국가 형성을 원치않는 일본은 남북 관계뿐 아니라 북미 관계 개선을 끝없이 견제한다. 일본 군사대국화를 일생의 목표로 추구하는 아베 총리는 대놓고 '훼방꾼'을 자처한다.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회고록에서 드러난 것처럼 아베는 북미 정상회담을 앞둔 트럼프 대통령에게 "북한에 너무 많이 양보하지 말라"고 거듭 강조했다. 그 시기 트럼프 대통령이 아베 총리와 통화에서 "한국이 북한에 대화를 구걸한다. 거지 같다"고 말했다고 일본 언론에 보도됐다. 이 역시 사실과 다른 것으로 밝혀졌다.

□ 아베 총리는 북한이 없었다면 정치적 성공을 거두기 어려웠던 인물이다. 2002년 관방 부장관 시절 고이즈미 총리를 따라 방북해 북일 수교를 강하게 반대한 안보 이미지 덕분에 총리에 올랐다. 지지율이 흔들릴 때마다 북핵 위기를 정권 안정을 위한 호재로 삼는 것도 아베 정권의 수법이다. 걸핏하면 한반도에 전쟁이 발발할 것처럼 불안을 부추긴다. 2017년에는 "북한 난민이 오면 체포할지, 사살할지를 진지하게 고려해야 한다”는 말을 거리낌없이 했다.  

□ 일본 전문가들은 아베의 한미 이간질을 '이미제한(以美制韓, 미국을 이용해서 한국을 제압한다는 뜻)' 전술이라고 부른다. '트럼프의 푸들'이라는 조롱을 들으면서까지 트럼프 대통령에게 공을 들여놓고는 한국의 뒤통수를 치는 식이다. 아베는 2018년 3차 남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문 대통령에게 북한에 일본인 납치 문제를 제기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러자 문 대통령은 김정은에게 아베의 말을 상세히 전했지만 돌아온 것은 한국 때리기였다. 고약한 내용으로 가득한 볼턴 회고록의 한가지 긍정적인 효과는 일본의 실체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는 점이다. 아베가 있는 한 한일 신뢰 회복은 요원해 보인다.

이충재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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