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프 지역에 드리운 미국 견제의 기운

입력
2020.06.28 16:00
25면
호르무즈해협. ⓒ게티이미지뱅크

호르무즈해협. ⓒ게티이미지뱅크


오만만과 걸프만을 잇는 호르무즈 해협은 가장 좁은 곳의 폭이 54㎞에 불과하지만 글로벌 에너지 해상 운송의 전략적 요충지이다. 이 곳 호르무즈해협을 포함한 걸프만의 안보는 전통적으로 미국의 최우선적 관심사안이었다. 1979년 카터독트린은 이란 혁명과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여파 속에서 걸프 지역으로의 소련 남하를 억지하려는 의도에 따라 공표되었다. 워싱턴은 걸프만을 통제하려는 어떠한 외부 군대의 시도 자체를 미국의 사활적 국가 이익에 대한 침해로 간주하며 군사력 사용 등 모든 필요 조치를 강구해 왔다. 이후 걸프 지역에 대한 중시는 민주당과 공화당 어느 정권을 막론하고 대체적으로 이어져 왔지만, 트럼프 행정부의 출범으로 이러한 외교 노선은 변화되는 양상이다. 


호르무즈해협. ⓒ게티이미지뱅크

호르무즈해협. ⓒ게티이미지뱅크



2019년 6월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중국이 석유의 91%, 일본이 62%를 호르무즈해협을 통해 얻고 있다며 왜 미국이 아무 보상 없이 다른 나라들의 해상운송을 지켜줘야 하는지 반문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셰일 가스 생산 등으로 미국이 세계 최대 에너지 생산국이 된 만큼 더는  호르무즈해협 안보 유지를 위해 일방적인 힘을 투사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미국은 동맹국들의 부담을 요구했다. 이에 트럼프 행정부는 항행의 자유를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우방국을 끌어들여 국제해양안보구상(IMSC)을 출범시켰다. 2019년 9월 형성된 IMSC는 바레인 마나마에 본부를 두고 있으며, 호르무즈해협의 안보를 유지하기 위한 것이다. 

IMSC 구상은 동맹국들과 함께 점증하는 이 지역의 안보 불안을 불식시키려는 미국 주도의 전략적 구상이다. 이런 맥락에서 2018년 5월 워싱턴의 이란 핵합의(JCPOA) 탈퇴 이후 걸프 지역의 갈등은 심화되어 왔다. 2019년 5~6월 호르무즈해협의 상선이 잇달아 피격되자 미국은 공격 배후로 이란을 지목했다. 특히 2019년 6월 이란혁명수비대는 이란 남동부 해상에서 영공을 침범했다는 이유를 근거로 미국의 드론을 대공 방어 미사일로 격추했다. 같은 해 9월에는 사우디아라비아의 국영회사인 아람코 석유 시설에 대한 드론 공격이 발발하였다. 

더욱이 올해 4월 걸프 만에서 이란 선박이 미 해군의 경로를 방해하는 행위가 발발하자 트럼프 대통령은 바다에서 미 해군을 방해하는 이란 선박을 침몰시키거나 파괴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이 외에도 최근 언론 보도에 의하면 호르무즈해협에 맞닿은 이란 남부의 반다르아바스 항구 앞바다에 미국의 니미츠급 항공모함을 닮은 모형 항공모함이 나타났다고 한다. 이란혁명수비대가 미 항공모함을 침몰시키는 모의 타격훈련을 실시하기 위해 갖다 놓은 것으로 추정되며, 이는 미국과 이란 갈등 고조로 인한 걸프 지역의 불안정성이 지속되고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한편, 이란은 걸프 지역의 갈등이 트럼프 행정부의 일방적인 JCPOA 파기에서 비롯되었다며, 미국 주도의 걸프 안보 질서를 바꿔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란의 하산 로하니 대통령은 2019년 9월 유엔총회 연설에서 호르무즈해협에서 평화를 촉진하고 해양 안보를 지키기 위한 호르무즈 평화계획, 소위 HOPE(Hormuz Peace Endeavor) 구상을 발표했다. HOPE는 호르무즈해협의 안보를 위한 관련국의 협의체로서 미국을 견제하려는 정치적 의도가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여기에 중국과 러시아가 이란의 입장에 동조하며 전통적인 미국 패권 질서에 맞서려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일례로 2019년 12월 중국, 러시아, 이란 해군은 호르무즈 해협 인근 오만해와 인도양 북부에서 합동 해상훈련을 실시했다. 중국은 유도 미사일을 장착한 구축함 시닝을 보냈고, 러시아는 초계함 야로슬라프 무드리를 파견했다. 이를 두고, 미국이라는 공동의 위협을 두고 중국, 러시아, 이란이 위력 시위를 벌인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되었다. 이렇게 중국, 러시아와 같은 글로벌 강국들이 걸프 지역에서 보이는 전략적 행보를 감안해 볼 때, 앞으로 한국은 더 신중한 외교적 접근을 해야 될 것 같다.

트럼프 행정부는 IMSC에 한국이 가입해 줄 것을 주문했지만 올해 1월 우리 정부는 이란과의 관계를 고려해 청해부대 파견지역 한시적 확대 조치를 취하였다. 이에 따라 지난 5월 청해부대 32진 임무를 수행하게 된 4,400톤급 대조영함이 부산작전기지에서 아덴만 해역으로 출항했다. 이번 파견 부대는 아덴만에서 호르무즈해협까지 작전 반경을 확대해 임무를 수행하게 된다. 그런데, 이와 같이 우리 정부가 미국, 이란 관계를 동시에 고려한 절충안을 제시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이란 외무부는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이런 맥락에서 우리의 외교는 복잡한 역내 관계의 변화를 기민하게 읽고, 국익을 극대화시킬 최선의 수를 찾아야 하는 어려운 과제를 안고 있다. 중국과 러시아가 은근히 이란을 밀어 주며 걸프 지역에서 미국 견제의 기운이 드러나고 있다는 사실은 묘수를 찾기 위한 우리의 수읽기를 더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김강석 단국대 GCC국가연구소 전임연구원
대체텍스트
김강석한국외대 아랍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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