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 확대와 증세 적절한 조화가 경제성장 촉진 이끌어”

입력
2020.06.25 20:00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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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찬 한국조세재정연구원장

[저작권 한국일보] 24일 오후 세종 반곡동에 위치한 한국조세재정연구원에서 김유찬 원장이 코로나19 경제위기 대응을 위한 정부 재정지출 확대에 대해 이야기했다. 정준희 인턴기자.

[저작권 한국일보] <김유찬 한국조세재정연구원 원장 논담 인터뷰> 24일 오후 세종 반곡동에 위치한 한국조세재정연구원에서 김유찬 원장이 코로나19 경제위기 대응을 위한 정부 재정지출 확대에 대해 이야기했다. 정준희 인턴기자.


3차 추가경정예산안 국회 심의를 앞두고, 일각에서 국가 부채가 너무 빨리 늘어난다는 우려와 추경 등 재정 확대가 향후 경제 정상화에 부담이 될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이에 맞서 “우리나라의 재정 여력은 아직 충분하며, 지금이야말로 적극적 재정으로 GDP 축소를 막아야 할 시기“라는 주장을 펴고 있는  김유찬(63) 한국조세재정연구원장을 만나 국가 재정 운영에 대한 그의 생각을 듣고 이야기를 나눴다. 

_최근 우리나라 재정 여력이 아직 충분하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그 이유를 설명해달라.

“주로 국가 부채의 많고 적음을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 부채 비율로 판단한다. 30%대를 유지하던 비율이 현 정부 들어 다소 빠르게 상승하고 있는데, 코로나18의 충격으로 그 속도가 더 빨라질 것이다.  하지만 이제 그 비율의 위험선이 어디인지를 따지는 논란은 사실 별 의미가 없어졌다. 유럽연합(EU)은 지금까지 회원국의 국가 부채비율 60%를 넘지 말아야 할 지침으로 삼아왔으나, 주요 회원국들은 이를 지키지 않았고, 80% 정도를 대략의 위험선으로 여겨왔다. 국가별 부채 비율을 비교할 때 사용하는 가장 최신 자료가 2018년 통계다. 이를 근거로 하면 우리나라 40%,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이 109%다. 그런데 코로나19 사태 이후 전 세계 정부가 사상 최대 규모로 재정을 쏟아붓는 상황을 고려하면, 2020년 통계가 나오는 2022년에는 부채비율 위험선에 대한 국제적 기준이 훨씬 높아질 것이다. OECD 평균이 120%를 넘을 것이고, 대략적인 위험선도 100% 수준으로 상향될 수밖에 없다. 올해 재정 확대로 경제를 지탱했다고, 당장 내년이나 후년부터 증세해서 부채를 줄일 수 있는 국가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GDP 대비 재정 지출을 크게 늘려도 다른 주요 나라들이 우리보다 더 큰 폭으로 재정지출을 늘리는 상황이라서 재정이 건전한 나라라는 우리나라의  위치는 문제없이 유지될 것이다. 또 미국 EU 일본 등 경제 대국은 막대한 국가 부채 때문에 상당히 오랜 기간 이자율을 낮게 유지할 수밖에 없다. 그 영향으로 우리나라 국채 이자율도 낮은 수준에 머물 것이 확실하다. 과거 국가 부채가 30%였던 때 국채 이자율이 5%대인 상황과 부채 비율이 50%로 늘더라도 이자율 1%대인 상황을 비교한다면 앞으로 당분간은  재정에서 국채 이자 부담도 훨씬 낮게 유지할 수 있다. 게다가 우리나라 국채의 87.5%가 국내 투자자들이 보유하고 있어서 정부가 지급하는 이자는 대부분 국내에 머물게 된다. 이 모든 상황을 종합해보면, 코로나19로 경제활동이 극도로 위축된 현 상황에서는 재정 건전성을 걱정하기 보다는 적극적인 재정정책을 통해 성장률 하락 폭을 줄이는 것이 향후 경제성장과 재정 건전성 확보에 더 도움이 된다. 하지만 국가 부채가 늘어나는 것을 언제까지나 용인할 수는 없다. 지금처럼 비정상적 시기에는 국채 발행을 늘려야겠지만, 매년 지속적으로 지출해야 하는 부분에 대한 재원은 증세를 통해 확보해야 할 것이다.”

[저작권 한국일보] 24일 오후 세종 반곡동에 위치한 한국조세재정연구원에서 김유찬 원장이 코로나19 경제위기 대응을 위한 정부 재정지출 확대에 대해 이야기했다. 정준희 인턴기자.

[저작권 한국일보] <김유찬 한국조세재정연구원 원장 논담 인터뷰> 24일 오후 세종 반곡동에 위치한 한국조세재정연구원에서 김유찬 원장이 코로나19 경제위기 대응을 위한 정부 재정지출 확대에 대해 이야기했다. 정준희 인턴기자.


_  3차 추경을 통해 재정지출이 30조원 확대된다면 올해 경제성장률이 1.5%포인트 올라갈 것이라고 추정한 걸로 안다.  하지만 국회예산정책처(예정처)는 0.22~0.23%포인트 상승을 예상한다. 왜 이런 차이가 나타나나.

“연구자마다 재정 투입이 경제성장률에 미치는 효과, 즉 재정지출승수를 측정할 때 서로 다른 경제모형을 사용하기 때문에 예상치가 다를 수밖에 없다. 국가 경제의 대외의존도가 높을수록 재정투입 효과가 낮아지고, 정부의 재정투입으로 민간부문 이자율이 높아진다면 역시 투입효과가 낮아진다. 저금리 기조인 현 상황처럼 국가의 재정투입이 민간 부문 이자율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낮은 상황에서 미국처럼 경제자립도가 높은 국가는 재정투입 효과가 높다. 반면 우리처럼 대외의존도가 높으면 효과가 상대적으로 낮을 수 밖에 없다. 국가의 재정투입 효과 중 상당 부분이 해외로 흘러나가기 때문이다. 이런 구조적 차이와 상황의 차이에 대해 가중치를 얼마를 두느냐에 따라 투입 효과 측정이 달라진다. 또 불경기에 재정투입이 평상시 보다 더 효과가 높다. 현 상황이 재정투입 효과가 높은 상황인 것은 모든 연구자가 동의할 것이다. 내 판단으로는 1.5%포인트 상승 예상도 매우 보수적으로 내놓은 전망이다. 여기에 한번 GDP가 축소되면 향후 경제가 회복되더라도 그 축소분을 회복하기 힘든 ‘이력 효과’의 발생까지 고려하다면 지금은 적극적인 재정 정책이 꼭 필요한 시기다.”

_ 우리 정부가 코로나19사태에 대응하기 위해 투입한 GDP 대비 재정ㆍ금융 지원 규모는 주요국들에 비해 낮다. 4차 추경도 해야 할까.

“정부는 3차례 추경을 통해 60조원 정도 지출한다. 이중 감세 등으로 인한 세입 경정을 제외하고 직접 지출은 47조원이다. 또 그 중 17조원은 기존 예산의 지출 구조조정을 통해 마련한 것이라, 재정의 순증 규모는 30조원 정도다. 코로나19로 인한 경제 위축이 하반기에도 지속돼 자영업자 폐업이나 실업자가 늘어난다면 4차 추경도 필요할지 모른다. 이는 경제 논리의 차원을 벗어난 것이다. 하지만 하반기에 재난지원금을 지급해야 한다면 보편적 지급보다는 꼭 필요한 사람들에게 예를 들어 한 달에 80만원씩 3개월간 지급하는 등 선별적으로 지급해야 할 것이다. 4월 2차 추경 때 전 국민에게 10조원 이상 나눠준 것은 효과 측면에서 아쉬운 결정이었다. 하지만 당시에는 특정 계층을 정확하게 식별하여 나눠줄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였고, 적절한 시점에 지원금을 제공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기도 했다. 이제라도 꼭 필요한 계층에게 재난지원금이 지급될 수 있는 체계를 갖춰야 한다. 우리나라 기존 복지 지원 단위가 개인이 아니라 가구인데 이를 향후 개인으로 변경하면 개인단위인 조세제도를 통한 환수가 가능해진다.  모든 사람들에게 재난지원금을 적시에 지불하고 소득이 높은 사람들에게는 나중에 환수하는 방법으로 특정계층에 국한된 적절한 수준의 지원이 가능할 것이다. ”

_국채를 발행해 민간 경제를 지탱할 정도로 경기가 어려운데, 김 원장은 확대된 재정지출 규모의 절반에서 4분의 1 정도 증세한다면 경제 활성화 효과가 더 크게 나타날 것이라고 주장했다. 더 걷어 더 쓰는 것보다 덜 걷어 덜 쓰는 게 더 효율적이지 않을까.

“납세자가 단 한 명이라면 그런 지적이 타당하다. 경제를 총량적으로만 바라보는 경제학자들도 그렇게 주장한다. 하지만 세상에는 다양한 소득종류와 수준의 납세자가 존재하고 또 수십 종류의 세금이 있는데 이 세금들은 과세의 포착점이 각각 다르다. 어떤 세금은 기업 이윤에 과세하고 어떤 세금은 개인 소득, 재산 자체나 재산 양도 이익에 과세한다. 또 자산 거래나 소비에 매기는 세금도 있다. 현재 상황에 맞춰 공정하게 세금을 거두기 위해서는 이런 다양한 세금의 조율과 조정이 늘 필요하다. 경제상황이 전반적으로 좋지 않아도 좋은 분야는 좋고 소득이 늘어난 사람들도 꽤 많다. 또 세금은 중요한 경제정책 수단이다. 소비가 위축되자 최근 독일이 부가가치세율을 6개월간 19%에서 16%로 낮춘 것이 좋은 예다. 물가는 낮은 상태지만, 주식 부동산 같은 자산시장은 과열 양상인 우리나라의 경우도 조세정책을 통해 이를 억제하면서 세수도 확대할 수 있다. 현 상황에서 재산에 대한 과세를 늘리는 것은 세수 증대 뿐 아니라 경제 전반에서도 바람직한 효과를 얻을 수 있다.”

_ 재산에 대한 증세는 형평성 측면에서도 꼭 필요하다.

“어떤 정부도 증세를 내놓고 얘기하기 부담스러워한다. 수많은 부동산 대책을 쏟아낸 문재인 정부도 부동산 증세에는 소극적이었다. 정부가 추진 계획을 발표한 주식 양도소득세 부과 확대는 꼭 필요한 조치다. 배당과 이자에 대해서는 2,000만원 이하인 경우 14%의 세금을 걷고, 그 이상이라면 종합과세 대상이 되는데, 지금까지 주식 양도차익에 대해서는 10억 이상, 대주주 지분 1% 이상 등에게만 적용해 왔다. 주식 양도차익이야말로 일부 부유층에게 집중되는 소득이다. 주식 거래세도 계속 유지해야 한다. 우리 주식시장의 특성상 거래세는 기관투자가들이 주로 사용하는 초단기 매매를 억제하는 효과가 있다. 주식 양도차익은 증시 상황에 따라 세수 차이가 크지만, 거래세는 안정적이다. 또 외국인은 조세조약에 따라 대부분 주식양도소득세를 내지 않는 반면 거래세는 내ㆍ외국인 간의 차별이 없다.”

_미국 등 많은 국가에서 사업소득이나 근로소득에 대한 세율은 낮은 반면 재산에서 나오는 소득에는 고율의 세율을 부과하는 원칙을 유지한다. 하지만 우리 세제는 정반대다.

“임대소득세가 그런 문제점을 지닌 대표적인 경우다. 우리나라는 임대소득 중 필요경비를 무조건 60%나 인정해주고 있다. 예를 들어 월 200만원의 월세를 받는 사람의 경우 과세 대상 소득은 80만원에 불과하다. 요즘 월세의 60%를 유지ㆍ보수 등에 사용하는 주택이 우리나라 어디에 있나. 이런 제도적 허점들을 찾아내 고쳐나가야 한다. 올해의 경우 추경으로 순수하게 늘어난 재정은 30조원이다. 이를 기준으로 절반에서 4분의 1 즉 7조5,000억원~15조원 규모의 세금을 자산소득 등의 부분에서 더 거둔다면, 재정 건전성은 물론 경제 전반에도 좋은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무엇보다 과열된 자산 시장을 안정화시켜 향후 거품 붕괴로 인한 경제충격을 막을 수 있다. 또 형평성도 강화할 수 있다. 더 중요한 것은 돈이 생산적인 부분으로 흐르도록 유도할 수 있다.”

●김유찬 한국조세재정연구원원장은

조세재정연구원 설립 때부터 연구원으로 일하다, 독일 회계법인에서 근무했다. 다시 국내에 돌아와 교수로 재직하다, 개방직으로 중부지방국세청 납세지원국장을 맡는 등 조세재정 실무와 행정 이론을 고루 갖춘 조세ㆍ재정 전문가다.

정영오 논설위원
변한나 사원
논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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