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켈란젤로는 왜 여성을 남성처럼 그렸나

입력
2020.06.25 16:00
수정
2020.06.25 16:54
25면
코르넬리스 보스가 모사한 미켈란젤로의 , 16세기, 동판화, 30.5x40.7cm, 영국 박물관

코르넬리스 보스가 모사한 미켈란젤로의 <레다와 백조> , 16세기, 동판화, 30.5x40.7cm, 영국 박물관


잘 알다시피, 제우스는 여신과 인간 여자, 심지어 미소년을 가리지 않고 취한 희대의 호색한으로, 그때그때 상황에 맞게 변신을 거듭하며 그들에게 구애한다. 강가에서 목욕하는 스파르타의 왕 틴다레오스의 아름다운 아내 레다에게는 독수리에게 쫓기는 백조로 변신해 접근하고 마침내 교합에 성공한다.

미술사에서, ‘레다와 백조’ 이야기는 고대 그리스 로마 시대에서 레오나르도와 미켈란젤로 같은 르네상스의 거장, 현대화가 마티스와 달리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화가들에 의해 그려졌다. ‘레다와 백조’에서 표현된 성애, 혹은 에로티시즘은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본능에 관련된 매혹적인 주제이기 때문이다.

머리를 숙이고 눈을 감은 채 몸을 V자로 구부리고 있는 여인의 모습으로 묘사된 미켈란젤로의 '레다와 백조'는 인간 육체에 대한 해부학적 연구가 정밀하게 표현되어 있다. 그러나 미켈란젤로의 레다는 여성적 곡선의 몸이 아닌 남성적 근육을 갖고 있다. 젖가슴 부분이 없었다면, 팔, 엉덩이, 허벅지의 튼실한 근육 때문에 남성의 몸으로 오해될 정도다. 이렇듯, 미켈란젤로의 대부분의 작품에서 여성은 공통적으로 남성의 뼈대와 근육을 가진 모습으로 나타난다. 당대의 라이벌이었던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여성의 몸에 대한 미켈란젤로의 해부학적 지식이 형편없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레다와 백조'는 피렌체의 산 로렌초 대성당에 있는 로렌초 데 메디치와 그의 동생 줄리아노 데 메디치의 영묘를 장식하는 조각상들 중 '밤'을 재현한 것이다. 이 작품 역시 여성을 남성의 몸으로 표현했음을 한눈에 알 수 있다.


미켈란젤로, , 1526-31년, 대리석, 길이 194cm, 산 로렌초 대성당, 피렌체

미켈란젤로, <밤> , 1526-31년, 대리석, 길이 194cm, 산 로렌초 대성당, 피렌체


정말 레오나르도의 말처럼 미켈란젤로는 여성의 누드를 묘사하는 능력이 부족했던 것일까? 아니면 여체의 해부학적 형태 자체에 아예 관심이 없었던 것일까? 16세기 미술사가 조르조 바사리에 의하면, 미켈란젤로는 남성의 알몸에 경외심을 갖고 있었고, 신이 창조한 원래의 모습에 가깝게 표현하기 위해 나체로 그리기를 좋아했다고 한다. 여성보다는 남성의 신체적 아름다움을 선호하는 미적 취향을 가졌다는 것이다. 실제로, 미켈란젤로는 여자에게 무관심했고 여성 혐오증도 갖고 있었다.

이 때문에 그가 동성애자였다는 설도 있다. 그러나 교회는 동성애를 죄악시했고,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던 미켈란젤로는 늘 자신의 동성애적 성향을 괴로워하고 억눌렀다고 한다. 또한, 미켈란젤로는 성 자체에 대해서도 근본적으로 금욕적 태도를 가지고 있었는데, 이는 한 사제의 논문이 그에게 깊은 영향을 주었기 때문이다. 논문에 따르면, 섹스는 정신적 활력과 두뇌 활동을 약화시키고 육체적 건강에도 해악을 끼치므로 성적 욕구를 엄격히 억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미켈란젤로의 종교적이고 고지식한 성격으로 보건대, 이것을 철저히 신봉하고 스스로 육체적 쾌락을 멀리하는 삶을 실천했을 것이다.

사실 근육질 남성의 몸은 여성 누드보다 조각하기가 훨씬 더 어렵다. 조각가는 피부 아래의 힘줄, 근육 및 정맥에 대한 상당한 해부학적 지식이 필요한 것이다. 이러한 여러 가지 사실들로 볼 때, 미켈란젤로가 여성을 남성처럼 묘사한 것은 여성의 몸을 표현하는 기술이 부족했다기보다는 그의 동성애적 취향, 혹은 기술적 난이도가 높은 남성의 몸을 표현하는 데 만족감을 느꼈기 때문이라는 것이 더 합리적 판단이다.

미켈란젤로는 예술사를 통틀어 손꼽히는 불세출의 천재다. 그러나 까탈스럽고 괴팍한 성격으로 인해 누구와도 따뜻한 교감을 나누지 못했고, 주변 사람들과 늘 불협화음을 일으켰다. 미켈란젤로가 동성애자였건 아니건 간에, 그는 평생 어떤 낭만적 열정을 경험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이것이 수 세기 동안 사람들에게 미술사의 영웅, 혹은 신화적 존재로 군림하며 경외의 대상이었던 이탈리아 르네상스 거장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Michelangelo Buonarroti)의 인간적 면모이다.


김선지 작가·'그림 속 천문학'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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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지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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