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남, 어떻게 4년 만에 '화투그림' 대작 사기 혐의 벗었나

입력
2020.06.25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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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심 유죄에서 '무죄' 확정 받기까지
대법원 "조영남 고유 아이디어…조수 작가는 기술 보조"

조수의 도움을 받아 완성한 그림을 자신의 작품으로 팔았다가 재판에 넘겨진 가수 조영남에게 무죄가 최종 확정됐다. 사진은 지난달 28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공개변론에 참석하는 모습. 연합뉴스

조수의 도움을 받아 완성한 그림을 자신의 작품으로 팔았다가 재판에 넘겨진 가수 조영남에게 무죄가 최종 확정됐다. 사진은 지난달 28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공개변론에 참석하는 모습. 연합뉴스


"지난 7년 동안 난 인간 복사기였다."

2016년 5월 무명화가 송모씨가 한 언론 매체를 통해 가수 조영남의 미술 작품을 대신 그려줬다고 폭로했습니다. 화투를 소재로 한 독특한 콘셉트로 화가로서 조영남씨의 입지를 공고히 해준 작품들이었죠. 조영남은 "미술계의 관행일 뿐"이라고 선을 그었고, 미술계는 발칵 뒤집어졌어요. 조수 작가를 고용해 작품을 완성하는 것이 관행이었는데, 조영남씨는 그 방식의 적합성이나 법률적 판단이 모호했거든요.

이렇게 시작된 법적 공방이 4년 만인 25일 대법원에서 무죄 확정을 받으며 마무리됐어요. 조영남은 2011년 9월부터 2015년 1월까지 화가 송모씨 등 2명에게 그림을 그리게 하고 자신은 간단한 덧칠 작업 정도만 한 뒤 이를 자신의 그림이라고 속여 판 혐의를 받았죠. 총 21점을 자신이 그린 것처럼 선보인 뒤 17명에게 팔아 총 1억5,300여 만원을 벌어들였다는 겁니다. 

송씨의 주장에 따르면 그는 제대로 된 수입이 없어 돈벌이로 작품당 10만원 정도의 수고비를 받고 조씨를 돕기 시작했다고 해요.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자신이 작품을 거의 완성해서 보내면 조영남이 약간의 덧칠과 사인만 추가해 더 비싼 값에 팔았다고 합니다. 자신은 그렇게 고가에 작품이 팔리는 줄 몰랐다고 억울해했죠.

2009년 한국일보와 인터뷰 중인 가수 조영남의 뒤로 화투를 소재로 한 그의 미술 작품이 전시돼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2009년 한국일보와 인터뷰 중인 가수 조영남의 뒤로 화투를 소재로 한 그의 미술 작품이 전시돼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조영남 대작 의혹 사건의 그림 중 하나로 검찰이 제시했던 '병마용갱'. 연합뉴스

조영남 대작 의혹 사건의 그림 중 하나로 검찰이 제시했던 '병마용갱'. 연합뉴스


조영남이 무죄 선고를 받기까지, 재판은 업치락뒤치락하며 논란이 끊이지 않았어요. 미술계 대작과 관련된 판례가 없는데다 대작의 허용 범위도 작품 종류에 따라 달라 저마다 해석이 엇갈렸어요.

2017년 1심 재판부는 송씨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조영남의 혐의를 인정해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어요. 작업에 참여한 송씨는 조수가 아닌 '독자적 작가'로 보고, 조영남의 판매 행위도 구매자를 속인 것으로 판단한 것이죠. 하지만 다음해 2심에서는 이를 뒤집고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화투를 소재로 한 내용은 조영남의 아이디어에서 출발한 것이고, 송씨는 기술을 보조한 것에 불과하다는 해석이에요.

검찰은 상고장을 제출했지만 대법원은 '불고불리의 원칙'을 들며 상고를 기각하고 무죄를 확정했죠. 불고불리의 원칙은 법원이 심판을 청구한 사실에 대해서만 심리ㆍ판결한다는 원칙이에요. 검찰이 저작권법 위반을 지적했지만, 조영남은 사기죄로 재판에 넘겨졌다는 것이죠. 

4년 만에 사기 혐의에서 벗어났으니, 얼마나 후련할까요. 무죄 선고를 받은 직후 그가 현대미술에 대한 책을 출간한다는 소식이 알려졌어요. 송사에 휘말려 방송 출연이 어려워진 그가 약 4년 동안 직접 쓴 '이 망할 놈의 현대미술'이란 신작입니다.

조씨는 '책을 펴내며'에서 "법정 공방을 치르는 동안 사람들이 현대미술에 대해 너무나 잘못 알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며 "놀면 뭐하나, 쉽게 알아먹을 수 있는 현대미술에 관한 책을 다시 한 번 써보자는 생각을 했다"고 밝혔어요. 책에는 대작 사건에 대한 대법원 상고심 공개변론 중 피고인이었던 조영남이 낭독한 최후 진술문도 함께 실린다고 합니다. 

그는 공개변론 중 "화투를 가지고 놀면 패가망신한다고 그랬는데 제가 너무 오랫동안 화투를 가지고 놀았던 것 같다"고 호소하기도 했었는데요. 결국 그가 우려하던 '패가망신'은 면하게 됐어요. 하지만 미술계의 관행이라는 그 모호한 기준과 만연한 공장식 작품 제작에 대해서는 깊은 논의가 필요해보입니다.

이소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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