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거리 방역의 연막

입력
2020.06.24 18:00
수정
2020.06.25 13:56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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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이태원 클럽발 감염 사태가 발생한 지냔 5월 12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1동 새마을지도자협의회 방역 자원봉사자들이 우사단로 클럽 거리를 소독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태원 클럽발 감염 사태가 발생한 지냔 5월 12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1동 새마을지도자협의회 방역 자원봉사자들이 우사단로 클럽 거리를 소독하고 있다. 연합뉴스


“최고의 선거운동은 길거리 방역이다.” 지난 4ㆍ15 총선을 앞두고 돌았던 말이다. 실제 여야 할 것 없이 후보들은 앞다퉈 소독약통을 메거나 들고서 이곳저곳 뿌리고 다녔다. 국민에 봉사하는 이미지를 심어주면서 방역에 도움도 주겠다는 일거양득 전략이었다. ‘정치 1번지’ 서울 종로에서도 마찬가지. 이낙연 더불어민주당(당선)ㆍ황교안 미래통합당 후보가 경쟁적으로 거리 방역에 나선 사진이 연달아 보도되기도 했다. 장소는 공원, 도로변, 지하철역에 집중됐다. 상가나 주택 내부는 선거법 위반 소지가 있어서였다.

□ ‘길거리 방역’에는 지방자치단체들이 들인 돈과 공도 만만치 않다. 공무원이나 자원봉사자들이 흰 방역복을 입고 마스크를 쓴 채 소독약을 분무하는 모습이 우리 눈에 익숙하니 말이다. 과연 쏟아 부은 노력만큼 효과가 있었을까. 최근 보도된 지자체 방역 실태가 충격적이다. 팩트체크 전문 매체 ‘뉴스톱’이 전국 229개 기초지자체를 전수조사한 결과,  질병관리본부가 권고하는 방역소독 지침을 지킨 지자체는  서울 마포ㆍ서대문구, 충북 영동군, 전북 익산시, 경남 진주시 등 5곳뿐이었다.

□ 질본 지침의 핵심은 두 가지다. 우선 약품은 코로나19 바이러스 소독 효과가 입증된 유효 성분과 농도로 제조된 소독약 중 환경부의 안전 확인 대상으로 승인된 76개 소독제 중 선택할 것, 소독 방법은 헝겊에 소독약을 적신 뒤 사람들의 손이 닿는 곳을 닦아낼 것 등이다. 그런데도 대다수 지자체가 이를 어겼다.  실태를 보니, 심지어 유용미생물(EM)이나 구연산, 해충 박멸용 살충제를 뿌린 지자체도 있었다. 모두 코로나19 바이러스 사멸 효과가 입증되지 않은 성분이다.

□ 질본은 그간 누누이 분무식 실외 소독에 우려를 표했다. 정은경 중앙방역대책본부장은 기회가 될 때마다 “개방된 공간에 살포하기보다 손이 많이 가는 실내의 물체 표면을 닦는 소독이 최우선”(3월 9일), “실내가 아닌 실외는 소독 효과가 크지 않아 권장하지 않는다”(5월 17일)고 강조했지만, 지자체들조차 이를 지키지 않은 셈이다. 코로나19 사태 동안 전국 지자체들이 방역용으로 소독약을 구입하는 데 쓴 돈이 최소 1,394억원이라는데, 혈세 대부분을 허공에 날린 것 아닌가. 길거리 방역의 쓸모는 결국 언론 보도 사진용 혹은 방송용에 그친 것 아닌가 싶어 씁쓸하다. 

김지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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