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 운동 역사가 훼손되지 않으려면

입력
2020.06.22 04:30
일 우익세력에게 거짓말하는 정대협 모습 보여선 안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가 6일 오전 대구 중구 서문로 희움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에서 열린 대구경북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추모의 날 행사에 참석해 먼저 세상을 떠난 할머니들 앞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 뉴스1

1997년 6월13일자 캄보디아 현지 언론에 한국인 출신 위안부 피해자 훈 할머니의 사연이 소개됐다. 이 내용이 전세계 외신을 통해 보도됐고, 당시 한국일보가 1면톱으로 할머니의 기구한 인생을 대서특필하면서 국내에서 위안부 문제에 대한 관심을 촉발하는 계기가 됐다. 

할머니는 경남 진동이 고향이고, 어릴 적 이름은 오니였다는 정도만 기억했다. 모국어인 한국어조차 알아듣지  못할 정도로 기억력은 쇠퇴했다. 참혹한 위안소 생활을 겪었지만 이후 고국땅을 밟지 못한 채 50여년을 캄보디아에서 살았으니 끔찍했던 과거를 온전히 되살리기를 기대하는 게 무리였을 게다.

하지만 당시 일부 시민단체에서는 훈 할머니를 위안부의 범주에 넣어야 할지를 두고 논란이 오갔다.  무엇보다 일본군에 의해 강제로 연행돼 위안소로 끌려갔다는 증거가 부족하다는 게 이유였다. 

당시 논란이 됐던 위안부의 강제 연행은 일본인 요시다 세이지의 증언을 토대로 한 듯하다. 요시다 세이지는 "1940년대 제주 지역에서 일본 헌병과 함께 총칼을 앞세워 조선인 여성을 강제로 끌고 가 위안부로 삼았다"는 내용의 수기를 발표한 인물이다. 90년대 초 일본 주요 언론이 그의 증언을 보도하면서 마치 이런 내용이 기정사실로 인식됐다. 국내에서도 요시다 세이지의 증언이 위안부 모집의 전형적인 사례로 인식되곤 했다. 훈 할머니 위안부 인정 논란은 당시 이런 사회적 배경에서 비롯된 측면이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의 수기는 완전히 날조된 거짓이었음이 뒤늦게 드러났다. 2014년 아사히 신문은 그의 증언을 토대로 작성한 자사의 모든 관련 기사를 취소한다는 사실상의 정정보도를 내기에 이르렀다.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현 정의연)는 위안부 관련 연구가 미흡하던 시절부터 꾸준히 학문적 연구 과정을 거쳐 위안부 문제의 개념을 정립하고 일본의 왜곡된 논리에 논리적으로 대응해왔다.

1965년 한일청구권협상으로 강제징용은 물론 위안부 문제까지 모두 해결됐다는 일본 정부 주장의 허구성을 밝혀내고, 일본 정부의 국가 개입을 인정하는 고노 담화를 이끌어내는 일등 공신 역할을 했다. 유엔인권소위원회와 여성지위위원회 등을 통해 위안부 문제가 중대한 인류의 범죄임도 세계에 알렸다. 

요시다 세이지의 허위 증언이후 "위안부에 대한 강제연행은 없었다"는 일본 우익세력의 주장에 대해 "감언이설이나 회유에 의해 끌려간 사례도 모두 강제연행에 해당한다"는 국제적 인식을 이끌어 낸 것도 정대협의 공이다. 명백한 팩트와 반박할 수 없는 논리로 위안부 문제를 왜곡하려는 세력에 대항했다.

"일본은 '위안부' 문제에 대해 ‘군의 관여 하에 다수 여성의 명예와 존엄에 깊은 상처를 입힌 문제'로서 일본의 책임을 통감하고 '위안부' 피해자의 고통과 상처에 대해 사죄와 반성의 마음을 표명한다"는 2015년 12월 한일 일본군 위안부 합의가 아베 신조 총리의 서명으로 나오게 된 것도 정대협의 요구를 상당히 받아들인 것이란 후문이다. 그 뒤에 붙은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이라는 단서조항이 합의 내용을 형해화했다는 비난은 별개로.

최근 이용수 할머니의 폭로로 촉발된 정대협과 이 단체를 이끌어온 윤미향 의원의 불투명한 기부금 운용 논란이 거세다. 특히 윤 의원의 국회입성을 계기로 야당과 보수언론의 폭로전이 점입가경이다. 이에 맞선 여당과 진보언론 또한 보기 민망할 정도로 편들기에 몰입하고 있다.

정대협은 그간 일본의 수많은 역사수정자들에 맞서 정면돌파를 선택했다. 역사에 대한 팩트로 무장했으니 물러섬이 있을 수 없었다. 이번에 제기된 숱한 의혹도 숨김없이 털고 가야 한다. 잘못이 있다면 깨끗하게 인정하고 할머니, 그리고 국민들에게 용서를 빌면서 죗값을 치러야 한다. 아마도 이번 사태를 누구보다 관심 있게 지켜보는 이들이 아베 총리와 일본 우익세력일게다. 그들에게 거짓말하는 정대협의 모습을 보여서는 안된다. 그것이야 말로 수십년 쌓아온 위안부 운동 역사를 물거품으로 만드는 일이다.

한창만 지식콘텐츠부장 cmhan@hankookilbo.com


한창만 지식콘텐츠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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