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모 칼럼] 그리운 클리셰

입력
2020.06.09 18:00
25면
서울 서대문구 신촌 거리에서 양산을 받쳐 든 시민들. 김주영 기자
서울 서대문구 신촌 거리에서 양산을 받쳐 든 시민들. 김주영 기자

한민족의 우수성을 강조해야 할 때마다 우리는 버릇처럼 활자(活字)를 언급한다. 서양에서는 1445년에야 사용하기 시작한 금속활자를 우리는 (암기하기에도 좋은) 1234년경에 이미 사용했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다. 활자는 글을 인쇄하기 위해 만든 글자 틀이다. 낱글자를 각 기둥 위에 양각으로 새긴다. 영어로는 움직일 수 있는 글자라는 뜻으로 movable type이라고 하는데 우리말 활자가 훨씬 더 재밌다. ‘살아 있는 글자’로도 생각할 수 있으니 말이다.

활자 인쇄를 하려면 원고에 따라 활자를 일일이 골라서 맞추어 짜야 한다. 이걸 판짜기 또는 조판(組版)이라고 한다. 사람들이 쓰는 말이라는 게 다 그게 그거다. 오죽하면 2,400년 전에 살았던 아리스토텔레스마저 “내가 한 말 중에 내가 처음 쓴 문장이 과연 무엇이 있을꼬?”라며 한탄 섞인 이야기를 했겠는가. 부지런한 조판공이라면 자주 사용하는 단어나 문장에 쓰이는 활자는 미리 모아서 아예 하나의 활자처럼 묶어 놓을 것이다. 그걸 프랑스 조판공들은 클리셰라고 불렀다.

클리셰는 생산성을 높여 준다. 동시에 실수도 줄여 준다. 활판 인쇄 시절 우리나라 조판공들도 대통령(大統領)만큼은 꼭 클리셰를 만들어 두었다고 한다. 대통령을 태(太)통령이라고 실수를 한다면 넘어갈 수 있지만 만약에 견(犬)통령으로 실수한다면 그건 그냥 단순한 조판 실수로 봐주지 않을 가능성이 무지 컸기 때문이다. 클리셰는 컴퓨터 조판 시대에도 유용하다. 컴퓨터 상용구로 등록해 놓고서 작업 시간을 줄이거나 오자를 줄이는 데 편리하게 쓰고 있다.

인쇄소에서나 쓰이던 클리셰가 이제는 아무 데서나 관용구로 쓰이고 있다. 좋은 뜻은 아니다. ‘진부한 표현’ 또는 ‘대체로 일관되게 나타나는 공통적인 경향’을 뜻하는 말이 되었다. 맞춤옷이 아니라 기성품 같은 걸 말한다. 소설에서도 진부하고 정형화된 전개가 보이면 빤한 클리셰가 보인다고 비판한다. 하도 많이 쓰다 보니 새로움이 사라진 상황, 줄거리, 기법, 묘사, 수사법을 지칭한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클리셰는 편리한 장치라는 사실이다. 글을 쓸 때도 자신이 불후의 명작을 쓸 수 있는 대작가가 아니라면 풍부한 클리셰를 사용하는 것은 좋은 전략이다.

여름이 시작될 무렵이라면 칼럼 첫 문장으로 쓰기 좋은 클리셰가 있다. “그해 여름은 뜨거웠다.” 근사한 출발이다. 구글 검색 창에 위 문장을 치고 엔터키를 눌러보시라. 꽤나 많은 문학 작품들이 이 문장을 사용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유난히도, 어지간히, 무척이나 따위를 ‘여름은’과 ‘뜨거웠다’ 사이에 써도 된다. 또는 문장 뒤에 ‘위험하고도 미칠 만큼’이라고 덧붙여도 괜찮을 것 같다.

앞으로도 “그해 여름은 뜨거웠다” 같은 클리셰를 쓸 수 있을까? 이제는 끝났다. 우리는 이 멋진 클리셰를 다시는 사용하지 못할 것이다. 올해보다 훨씬 더 뜨거웠던 경험이 있어야 동감할 수 있는 문장인데 이젠 앞으로 영원히 그때의 여름보다 더 뜨거웠던 여름에 대한 기억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항상 새로운 올해 여름이 가장 뜨거운 여름이 될 것이다.

여름의 폭염 일수를 계산하는 법이 있다. 전국의 45개 지점을 미리 정해 놓았다. 그리고 45개 지점 모두에서 그날 최고 기온이 33도를 넘었을 때만 폭염일로 기록한다. 그러니 폭염일로 기록되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1980년대 폭염일은 평균 8.2일이었다. 그러니 아무리 더운 여름도 열흘만 견디면 됐던 것이다. 그런데 지난 10년 동안의 폭염일은 평균 15.5일이었다. 30년 사이에 두 배로 길어진 셈이다. (지난 2018년은 무려 32일이나 되었다.)

새로운 클리셰가 등장했다. “인류 역사상 가장 더운 ○월”이 바로 그것이다. “2019년 7월은 역사상 가장 더운 7월이었다.” “지난달은 역사상 가장 더운 5월이었다.” 작년 여름과 며칠 전에 본 신문기사 제목이다. 2019년 초여름에 ‘1880년 기상 관측 이후 가장 더웠던 20년’이 언제였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1998년과 2000년부터 2018년까지”라고 답했다. 중간에 1999년을 빼야 했다. 이젠 대답이 간단하게 바뀌었다. 그냥 2000년부터 2019년까지 20년이 지구에서 인류가 경험한 가장 더운 20년이다. 지금 같은 추세라면 항상 최근 20년이 같은 질문에 대한 답이 될 것이다.

유엔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는 산업화 이후 지구 평균 기온 상승 폭이 1.5도 높아질 경우 지구 기후환경이 비가역적으로 파괴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지난 5월의 기온 상승폭은 1.26도였다. 1.5도까지는 0.24도 남았을 뿐이다.

우리는 코로나19라는 험난한 파도에 올라타 있다. 곧 경기침체라는 더 큰 파도가 닥칠 것이다. 하지만 이런 파도는 기후위기라는 쓰나미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인류가 기후 위기를 극복하고 생존에 성공한다면 언젠가는 다시 “그해 여름은 뜨거웠다”라는 멋진 클리셰를 쓸 수 있을 것이다. 과연 그날이 올까?

이정모 국립과천과학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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