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특유의 빨리빨리 문화 덕에 커피믹스 세계 첫 개발”

입력
2020.06.09 04:40

#빠지다, 한국인의 탐닉 <1> 커피

최상인 동서식품 상무 “한국의 커피 문화 ‘커피믹스’와 뗄 수 없어”

최상인 동서식품 상무는 1987년 동서식품 연구소에 입사한 이후 마케팅, 홍보업무를 맡으며 올해로 33년째 동서식품에서 근무하고 있다. 동서식품 제공

우리나라에서 커피는 1945년 광복 이후 생활 수준 향상과 함께 다방 등을 통해 보급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전쟁 직전 100개도 안 되던 다방은 1950년대 후반 3,000여곳에 달할 정도로 호황을 누렸다. 그러나 당시 커피는 대부분 밀수품이었다. 정상 경로로 공급된 커피는 5%에 불과해 커피 유통은 국가경제 차원의 문제로까지 대두됐다. 결국 1970년대 국내 최초로 커피를 생산하는 계기가 됐고, 동서식품이 미국 제너럴푸드사와 기술 제휴를 맺고 ‘맥스웰하우스’ 커피를 생산하기 시작하면서 국산 커피의 대중화 시대가 열렸다.

최상인(58) 동서식품 상무는 “1961년 정부가 (다방의) 영업 정지에 이어 관련자 구속 방침까지 발표하는 등 외래 커피를 강력하게 단속하던 시기도 있었다”며 “그로부터 7년 뒤 정부가 수입금지 품목이던 커피를 제한 승인 품목으로 완화하는 조치와 함께 동서식품에 커피 제조 허가를 내리면서 국산 커피 역사가 시작됐다”고 설명했다.

최 상무는 식품가공학을 전공하고 1987년 동서식품 연구소에 입사해 현재 33년간 동서식품을 지키고 있는 임원이다. 연구소에서 12년간 제품 연구에 몰두한 그는 1999년 마케팅 부서로 옮겨 회사 경영에 기여했고, 2016년부터는 대외 홍보를 총괄하는 업무를 맡고 있다.

최 상무는 한국의 커피 문화는 “‘우리 회사의 커피믹스’와 떼려야 뗄 수 없다”고 강조했다. 1976년 세계 최초로 개발된 ‘커피믹스’는 출시 초기만 해도 등산이나 낚시 등 주로 야외 활동을 위한 아웃도어 제품으로 인식됐다. 그러다 1997년 외환위기를 기점으로 커피믹스 매출이 증가하기 시작했다. 그 무렵 냉ㆍ온수기의 사용이 확산되면서 간편성이 뛰어난 커피믹스 시장이 폭발적으로 팽창했다는 것이다.

1976년 동서식품에서 출시한 ‘맥스웰 커피믹스’. 동서식품 제공

“한국인 특유의 ‘빨리빨리’ 문화도 커피믹스의 흥행을 견인한 요인 중 하나입니다. 커피, 설탕, 프림을 티스푼으로 따로 넣어 섞을 필요 없이, 뜨거운 물만 있으면 간편하게 즐길 수 있다는 점은 급한 성격의 한국인들에게 큰 장점으로 작용했던 겁니다.”

커피믹스의 전성기는 끝이 없어 보였다. 2002년 커피 시장에서 커피믹스는 1위 품목이 됐고, 해를 거듭할수록 큰 폭의 성장을 이어갔다. 그러면서 가정이나 기업 사무실 등의 필수품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미국 커피 브랜드 스타벅스가 국내에 진출하면서 커피전문점의 수가 급증하고, 커피머신이 보편화하면서 커피 시장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우선 커피 원두에 대한 소비자들의 관심이 증폭됐다. 동서식품은 미래 시장의 성장동력으로 새로운 커피 제품을 개발해야 했다. 최 상무는 “기존에 없던 새로운 유형의 커피 개발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입맛이 까다로워진 소비자들을 위해 고품질의 원두커피 맛과 향미를 구현하는 연구가 이어졌다. 동결건조법과 함께 인스턴트 커피보다 상대적으로 낮은 온도와 압력으로 추출하는 새로운 추출법까지 활용됐다. 최 상무는 “국내 커피 소비량이 지속 증가하면서 소비자들의 커피 취향도 변화하고 있다”며 “기본적인 커피의 향이나 맛에서 더 나아가 원두의 품종, 산지, 로스팅 기법 등 커피에 대한 소비자들의 선택 기준이 세분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의 커피수요가 폭증하면서 동서식품 등 한국 업체의 원두 수입도 크게 늘었다. 2018년 기준 15만8,000여톤의 원두가 수입됐는데 이 가운데 절반 가까이를 동서식품이 수입했다. 깔끔한 맛과 풍부한 향으로 세계 최고급 원두로 손꼽히는 콜롬비아산 원두 역시 국내 수입량의 절반을 동서식품이 들여오고 있다.

최 상무가 33년간 지켜봐 온 한국의 커피 문화는 어떤 모습일까. “한국인에게 커피는 더 이상 단순한 기호식품이 아니라 하나의 문화이자 일상 속 습관으로 자리 잡았다. 가족이나 친구, 직장 동료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즐기는 커피 한 잔은 작은 여유를 선사하는 한편, 바쁘고 힘든 일상 속 피로를 풀어주는 작은 활력소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고 단언했다.

강은영 기자 kis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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