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가 더 맵디매운 연상호식 사회비판

입력
2020.06.09 11:37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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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상호 감독의 데뷔작 '돼지의 왕'은 폭럭적인 내용과 사회비판적인 메시지로 국내 애니메이션에 대한 통념을 뒤집는다. 다다쇼 제공
연상호 감독의 데뷔작 '돼지의 왕'은 폭럭적인 내용과 사회비판적인 메시지로 국내 애니메이션에 대한 통념을 뒤집는다. 다다쇼 제공

정체불명 바이러스가 퍼진다. 사람이 사람을 물고, 물린 사람이 또 다른 사람을 문다. 전대미문 혼돈 속에서 약자는 여전히 약자이고, 강자는 약자를 더 짓밟는다. 애니메이션 영화 ‘서울역’(2016)은 약육강식 한국 사회를 서늘하게 비유한다.

연상호 감독의 ‘서울역’은 영화 ‘부산행’(2016)의 효시 같은 작품이다. 2015년 완성된 ‘서울역’을 본 투자배급사 NEW 관계자들이 좀비 소재 실사영화 연출을 연 감독에게 제안했고, 1,000만 영화 ‘부산행’ 탄생으로 이어졌다.

‘서울역’과 ‘부산행’은 이란성 쌍둥이 같은 관계지만 보는 맛은 다르다. ‘서울역’은 맵고 쓰고 진저리처지는 맛이다. 좀비 장르 법칙에 충실한 ‘부산행’은 좀 더 순하다. ‘서울역’은 주인공이 몸을 팔아야 여관비를 될 수 있는 잔혹한 현실을 그리지만, ‘부산행’은 등장인물들의 인간애와 가족애에 방점을 찍는다.

연 감독은 동정 없는 사회를 주로 그려왔다. 욕설과 폭력이 난무하고 가진 자가 못 가진 자를 지배하는 게 진짜 우리 사회라고 주창해 왔다. 청소년관람불가 애니메이션 영화 ‘돼지의 왕’(2011)으로 데뷔할 때부터 신랄한 사회비판 성향을 드러냈다. 영화는 중학 동창 3명이 겪는 학원폭력을 통해 빈부를 기반으로 고착화된 계층사회를 비판한다.

애니메이션 영화 '사이비'. 어느 범죄 영화 못지 않게 어두운 내용을 다룬다. NEW 제공
애니메이션 영화 '사이비'. 어느 범죄 영화 못지 않게 어두운 내용을 다룬다. NEW 제공

연 감독의 두 번째 애니메이션 영화 ‘사이비’(2013)도 마찬가지다. 역시 청불 등급을 받을 정도로 사회의 폭력성을 사실적으로 묘사한다. 가정폭력과 성폭력이 등장하고 육두문자가 수시로 오가는 이 영화는 사이비종교를 지렛대로 사회병폐를 들춘다. 교회 장로가 사기를 주도하고, 4대강 사업을 연상시키는 수몰이 주요 소재로 등장하는 점만으로도 지극히 시사적이다. 용산 참사를 모티프로 한 염 감독의 전작 ‘염력’(2018)과 궤를 같이 한다.

애니메이션 '돼지의 왕'은 살해된 한 여성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첫 장면부터 관객에 충격을 던지는 연상호식 연출법이 엿보인다. 다다쇼 제공
애니메이션 '돼지의 왕'은 살해된 한 여성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첫 장면부터 관객에 충격을 던지는 연상호식 연출법이 엿보인다. 다다쇼 제공
애니메이션 영화 '서울역'은 목에 큰 부상을 입은 한 노인의 모습을 비추며 시작한다. NEW 제공
애니메이션 영화 '서울역'은 목에 큰 부상을 입은 한 노인의 모습을 비추며 시작한다. NEW 제공

사회비판을 위해 연 감독은 직설법을 애용한다. 영화 도입부부터 충격적인 장면을 선보이곤 한다. 살해 당한 한 여성의 공포에 질린 얼굴(‘돼지의 왕’)로 영화를 시작하거나, 무언가에 목이 물려 피를 철철 흘리는 노숙자 노인의 모습(‘서울역’)으로 운을 뗀다. 폭력적인 유머를 곧잘 활용하기도 한다. “누가 화장실에서 이거 매너 없게 X을 싸고 지랄이야”(‘돼지의 왕’), “제가 또 이렇게 공손하게 대해드려야... (돌로 상대방 머리를 내려치고선) 니가 방심하지 새끼야!”(‘사이비’) 같은 대사는 재치 넘치지만 마냥 웃을 수 없다.

영화 '염력'은 초능력이라는 이색 소재로 재개발지역 강체 철거라는 한국 사회의 어둠을 들춘다. NEW 제공
영화 '염력'은 초능력이라는 이색 소재로 재개발지역 강체 철거라는 한국 사회의 어둠을 들춘다. NEW 제공

연 감독의 영화 속 공권력은 종종 무정하고 때론 무기력하다. 경찰은 위기에 처한 사람들을 좀비로부터 구하는데 무신경(‘서울역’)하거나, 억울한 철거민 대신 철거 용역 편에 서서 작전을 수행(‘염력’)한다. 바리케이드 앞에서 영혼 없는 시위 해산 권고 방송을 앵무새처럼 반복(‘서울역’ ‘염력’)할 따름이다.

7월 개봉하는 연 감독의 신작 ‘반도’는 ‘부산행’ 이후 4년 뒤 남한을 다룬다. 좀비 군단과 더불어 비인간적인 631부대가 등장한다. 총제작비(마케팅비 등 포함) 190억원 가량인 대작이니 대중성을 고려했을 듯하다. 순한 맛이라도 사회비판만은 매콤할 것이다. 연 감독의 이전 작품들처럼 말이다.

라제기 영화전문기자 wender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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