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문화] 윤달만의 행복을 아시나요?

입력
2020.06.04 04:30
27면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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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보기 어렵지만, 불과 10여년 전만 해도 윤달이 되면 홈쇼핑에서 수의(壽衣)를 팔고는 했다. 수의는 죽은 이가 입는 마지막 옷으로 윤달에 미리 장만해 놓으면 무탈하게 장수한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옷의 이름 또한 ‘목숨 수(壽)’자가 들어간 수의다.

달 중심의 태음력은 1년이 354일로 우리가 아는 365일보다 11일이나 짧다. 이로 인해 태음력을 사용하면 달력과 계절이 점차 엇박자를 놓게 된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약 3년에 1번씩 윤달을 넣어 뒤틀린 것을 바로잡는데, 이를 치윤법(置閏法)이라고 한다. 정확하게는 19년에 7번씩 윤달이 발생하니, 2.7년에 한 번인 셈이다.

윤달은 일반적인 달과 달리 +α로 추가되는 방식이다. 이 때문에 이를 규정하기 애매한 측면이 있다. 그래서 윤달을 ‘공달’ 즉 ‘빈 달’이라고 하며, 이와 관련된 다양한 세시풍속이 만들어지게 된다.

윤달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묏자리를 손보는 일이 아닐까? 전통적으로 우리 민족은 모든 달이나 날짜에는 각기 특징적인 에너지가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이것이 묏자리를 손대는 것처럼 집안의 큰일과 충돌하면, 집안이 몰락하는 등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인식한다. 마치 대기의 기운이 충돌하면, 천둥 번개가 치고 돌풍이 부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윤달은 +α이기 때문에 고유한 속성이 없다. 그러므로 안 좋은 일을 해도 어떤 문제가 발생할 수 없다. 이것이 윤달에 위험할 수 있는 일을 하는 배경이 된다.

그러나 윤달 풍속에는 나쁜 기운이 미치지 못한다는 소극적인 측면도 있지만, 비어 있으므로 좋은 것으로 채울 수 있다는 적극적인 부분도 존재한다. 수의를 장만하면 오래 산다는 것이나, 수릉(壽陵) 즉 미리 묏자리를 봐 놓으면 장수한다는 것 등이다. 요즘처럼 매장이 적은 시대에는 납골당을 미리 분양받는 것도 수릉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을까?! 글쎄다…

수의ㆍ수릉은 삶을 북돋는 방식이지만, 그럼에도 이 역시 죽음과 관련된다. 즉 우리의 윤달 풍속은 대부분 죽음과 연관되어 있는 것이다. 이는 삶보다 긴 죽음의 안식에 대한 인간의 추구가 작동된 결과이리라!

동아시아에서 2,000년을 함께한 불교 역시 윤달 풍속에 다양성을 부여한다. 죽음과 관련된 것으로는 예수재(豫修齋)가 대표적이다. 한글만 본다면, 예수님을 받드는 재례(齋禮)인가 싶지만, 한자를 보면 미리 공덕을 닦아 사후를 경건하게 준비하는 의식임을 알 수 있다. 다만 명칭이 절묘할 뿐이다. 하기야 성균관에서 공자께 제사를 올리는 석전대제(釋奠大祭)라는 이름을 보고, 석존 즉 붓다에 대한 제례(祭禮)인 줄 알았다는 분도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불교의 윤달 의례에는 죽음 말고도 삶을 풍요롭게 하는 것도 여럿 있다. 대표적인 것이 유서 깊은 전통사찰 세 곳을 참배하는 삼사 순례다. 이는 성지의 좋은 기운을 받아, 길함으로 윤달을 가득 채워 삶을 복되게 하려는 실천행이다.

또 스님들이 착용하는 의식복인 가사(袈裟)를 만드는 가사 불사도 있다. 가사는 예전에는 복전의(福田衣)라고 했었다. 즉 많은 공덕이 산출되는 복의 잭팟이라는 의미다. 때문에 윤달에 가사를 지어 올리면, 많은 공덕이 만들어져 삶이 풍요로워진다고 인식되었다.

태양력을 쓰는 오늘날 윤달을 기리는 분은 많지 않다. 그러나 삿됨을 여의고 즐거움으로 나아가려는 정신만큼은 태음력과 태양력을 관통하는 인간 삶의 본질이 아닐까!

자칫 남을 탓하기 쉬운 현대에, 윤달의 정신은 나와 이웃 모두가 복되고 풍요롭자는 행복의 외침이자 실천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때문에 윤달 풍속은 과거만이 아닌 오늘에도 유효한 가치이다. 인간의 행복 추구와 함께 윤달은 그렇게 또 미래로 흘러갈 것이다.

자현 스님ㆍ중앙승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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