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창섭의 몸과 삶] 코로나 사회 속의 쓸개와 막창자꼬리

입력
2020.06.02 18:00
©게티이미지뱅크

꽤 오래전이었다. 데굴데굴 구를 정도로 배가 아파 밤새 고생을 했는데 아침이 되니 언제 아팠냐는 듯 멀쩡해진 적이 있었다. 검사 결과 쓸개와 콩팥에 돌이 있는 것을 알게 되었고, 얼마 후에 쓸개를 제거하는 수술을 받았다. 그리고 ‘쓸개 빠진 이’가 되었다고 농담을 하며 웃었던 기억이 난다.

쓸개는 간에서 만든 쓸개즙(담즙)을 보관하고 있다가 지방 성분이 많은 음식을 먹으면 샘창자로 내려 보내 소화를 돕는 역할을 하는 장기이다. 쉽게 말해 쓸개즙을 보관하는 택배회사의 물류창고라고 하면 될 것이다. 쓸개즙을 오래 보관하다 보면 굳어지는 것이 생기는데 그것을 쓸개돌 즉 담석이라 한다. 이 쓸개돌이 쓸개관을 통해 빠져 나갈 때 좁은 관을 비집고 지나가야 하기 때문에 엄청나게 아프다. 한 번 아파 본 사람은 쓸개를 통째로 제거하는데 아무런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막창자에서 삐져나와 있는 막창자꼬리(충수돌기)는 특별히 하는 기능이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 장기다. 여기에 생긴 염증을 일반인들은 보통 맹장염이라고 부른다. 맹장염을 그냥 두면 터져서 복막염으로 번지기 때문에 그 전에 빨리 떼어내는 것이 상책이다. 맹장염 때문에 수술을 하자고 했을 때 고민하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반면, 문제가 없어도 망설이지 않고 제거하는 것들도 있다. 대표적인 것이 음경꺼풀이다. 이것은 흔히 고래를 잡는다고 말하는 포경수술로 제거하는 음경의 끝을 덮고 있는 피부 주름이다. 음경꺼풀을 잘라내야 하는 이유로 흔히 드는 것이 청결유지인데, 가만히 듣다 보면 남자들은 모두 지저분하다는 것을 전제로 깔고 있는 것 같아 빈정 상한다.

쓸개와 막창자꼬리를 잘라내는데 별로 거부감을 느끼지 않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이들이 우리 몸에서 하는 일이 없거나 있다고 해도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콩팥에도 돌이 잘 생기고 요관을 통해 빠져나갈 때 무지무지하게 아프다. 그렇지만 콩팥돌 때문에 아프다고 콩팥을 떼어내지는 않는다. 콩팥이 없으면 목숨이 위태롭게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쓸개나 막창자꼬리에 아무 문제가 없는데도 제거하는 일도 있다. 예를 들면 남극으로 탐험을 가는 탐험가들은 의무적으로 막창자꼬리를 떼어냈다고 하고, 우주비행사들에게도 우주여행을 떠나기 전에 건강한 쓸개와 막창자꼬리를 제거하라고 권했다고 한다. 혹시라도 의사가 없는 곳에서 문제가 생기면 곤란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이유다.

이렇게 쓸개나 막창자꼬리나 음경꺼풀을 제거하는 수술을 하겠다고 쉽게 결정할 수 있는 또 다른 이유는 이런 수술이 거의 의료사고가 생기지 않을 정도로 안전하다는 것이다. 몸의 일부를 제거하는 수술을 별 고민 없이 결정할 수 있을 만큼 의학이 발전한 세상에 살고 있다 보니 우리 몸에 필요가 없거나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되거나 심지어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쉽게 수술을 하게 된다.

그런데 쓸개, 막창자꼬리나 음경꺼풀과 같은 것이 우리 생각대로 정말로 중요하지도 않고, 필요도 없는 것이라면 진작에 퇴화시켜 버렸을 것 같은데 왜 우리 몸은 그냥 가지고 있는 것일까? 별로 중요하지는 않아도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게 낫기 때문일 수도 있고, 사실은 우리가 잘 모르는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은 무엇인가가 중요한 작용을 하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최근 막창자꼬리의 기능에 대한 연구 결과는 매우 흥미롭다. 창자 안에는 엄청나게 많은 세균이 살고 있는데 그중에는 음식물의 소화에 도움을 주거나 소화기계통을 건강하게 유지하는데 도움이 되는 좋은 세균들도 많다. 면역 계통은 몸에 해를 끼치는 나쁜 세균을 찾아내 제거하는데, 막창자꼬리에 있는 면역 세포들은 반대로 좋은 세균들을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그러니까 막창자꼬리는 좋은 세균들을 안전하게 보호하는 일종의 보호구역으로 창자에 나쁜 세균이 넘쳐 문제를 일으키면 건강하고 좋은 세균을 공급하여 문제를 해결하는 역할을 한다. 내가 쓸개 빠진 사람이지만 어떤 음식도 가리지 않고 잘 소화시키는 이유가 아직 막창자꼬리를 떼어내지 않은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요즈음은 코로나19로 인해 모두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전문가들은 코로나 여파로 전 세계가 ‘대공황’ 이후 최악의 경기침체를 겪을 것이라고 전망한다. 이미 엄청난 수의 일자리가 사라졌고, 기업들은 생존을 위해 안간힘을 쏟으며 버티고 있다. 일부 기업은 필요 없다느니 제 역할을 못 한다느니 이런저런 이유를 내세워 구조조정이나 명예퇴직과 같은 방법을 사용하려 할지도 모른다. 그것이 최선의 선택이라면 힘들어도 그렇게 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만 피할 수 있다면 가능하면 우리 스스로도 잘 모르고 있었던 숨겨진 능력을 찾아내고 발휘하여 난국을 잘 극복할 수 있도록 모두가 서로 힘을 합하여 최선을 다했으면 한다.

코로나19가 쓸개에 돌을 만들고, 막창자꼬리에 염증을 일으켜서 우리를 괴롭히고 있고, 우리는 쓸개와 막창자꼬리를 떼어내는 것만이 유일한 선택인지 결정해야 하는 상황에 있는 것 같다.

엄창섭 고려대 의과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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